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살며 생각하며>명장 李廣의 '말 없는 가르침'

바람아님 2016. 9. 24. 00:22
문화일보 2016.09.23. 12:40

김영수 중국 전문가

중국 한나라 초기의 명장 이광(李廣)은 말타기와 활쏘기의 명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문제(文帝)와 경제(景帝)를 거쳐 무제(武帝) 시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평생을 흉노와 전쟁을 치른 역전의 맹장이었다. 흉노는 이광의 용맹함과 지략을 두려워했고, 한나라 병사들은 누구나 명망 높은 이광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길 희망했다.


이광은 솔직담백했다. 자신이 받은 상은 모두 부하들에게 나눠주며 병사들과 함께 먹고 잤다. 40년 동안 여러 자리를 전전했지만, 평생 재산 따위를 모으는 일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아 재산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행군 중에 병사들이 모두 물을 마시기 전에는 물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병사들이 모두 먹지 않으면 밥 한술 입에 넣지 않았다. 병사들에게는 가혹하지 않고 너그럽게 대했다. 그는 말재주도 없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병사들은 기꺼이 그의 명령에 따랐고 그를 존경했다.


15년 만에 다시 찾은 명장 이광의 무덤은 처음 찾았을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현실이 그 사이 더 많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리라는 생각을 했다.
15년 만에 다시 찾은 명장 이광의 무덤은 처음 찾았을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현실이 그 사이 더 많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60이 넘는 고령을 무릅쓰고 흉노와의 전투에 참가했다가 수세에 몰렸고, 이 때문에 정치군인들의 박해를 받고는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당시 모든 장수와 병사는 비통하게 울부짖었고, 이 소식을 들은 일반 백성도 슬픔을 참지 못했다. 사마천은 ‘사기’(권 109) ‘이장군 열전’에서 이광의 일생을 소개한 다음, 맨 마지막에 이런 평가를 덧붙였다.


“세상에 전해오는 말에 ‘자기 몸이 바르면 명하지 않아도 시행되며, 자기 몸이 바르지 못하면 명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논어 ‘자로편’)고 한다. 이는 이광 장군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내가 이 장군을 본 적이 있는데, 성격이 소박해 촌사람처럼 말도 잘 못 했다. 그가 죽자 천하의 사람들은 그를 알든 모르든 모두 그를 위해 진심으로 슬퍼했다. 그의 충직한 마음씨가 정말 사대부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속담에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지만, 그 아래로 저절로 길이 생긴다’(桃李不言 下自成蹊 ·도리불언 하자성혜)고 했는데, 이 속담은 보잘것없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그 자체로 큰 것을 비유하는 말일 수도 있다.”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자신을 선전하지 않지만, 그 나무 아래를 지나는 사람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나무 아래에 자연스럽게 길이 생겨난다. 그것은 이 나무들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달고 맛있는 열매를 맺으며 묵묵히 사람들을 위해 공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떠벌려 자랑하지 않아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 것이다.


‘도리불언’은 통치술에서는 ‘말 없는 가르침’을 가리킨다. 통치술의 원칙에서 보자면 리더가 끊임없이 부하를 교육시키는 ‘말에 의한 교육’ 외에, 말하지 않고 부하를 깨우칠 수 있는 가르침도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몸을 원칙으로 삼아 병사들과 동고동락하고 운명을 같이하면서, 병사들을 자기 주위에서 단단히 단결하도록 주의를 환기하면 부하들은 불 속이라도 뛰어들고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한다. 통치 과정에서 청산유수와 같은 능란한 말재주로 지지를 얻는 것도 좋지만 떠벌리지 않고 ‘도리불언’의 방법을 채용해야만 대중을 제대로 설득할 수 있다.


부하들을 자기 몸처럼 아꼈던 명장 이광은 강직한 성품 때문에 늙도록 승진도 하지 못하고 정치군인들의 구박을 받았다. 이들은 이광의 사소한 실수를 구실 삼아 부하 병사들을 군법에 회부했다. 이광은 부하들을 위해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하고는,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혹리들에게 가혹한 심문을 당하는 것이 수치스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군인의 명예를 지켰다. 이런 이광을 사마천은 다른 정치군인들과 구별하여 ‘이장군(李將軍)’으로 높여 부르면서 그에 관한 열전(列傳)을 남겼다.


이광의 일생과 인품, 그리고 그의 죽음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일신의 영달에만 목을 맨 채 온갖 불법과 편법을 밥 먹듯이 하고, 잘못은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고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우리 지도층의 추한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지도층들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도덕 불감증이다.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보면 “사람을 가르치려면 반드시 부끄러움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부끄러움이 없으면 못 할 짓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언행이 남과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만 그릇된 언행을 일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계시를 받은 청나라 때의 학자 고염무(顧炎武)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청렴하지 않으면 안 받는 것이 없고(不廉則無所不取·불렴즉 무소불취),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不恥則無所不爲·불치즉 무소불위)”고 했다.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이 천지에 널리게 된 것은 부끄러움을 가르치지 않은(또는 않는) 우리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최근 사마천이 이광 장군을 두고 인용한 속담 ‘도리불언 하자성혜’를 거론하는 정치 지도자가 종종 눈에 띈다. 부디 빈말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평생 헛된 명예와 욕심부리지 않고 한 길을 걷는 고고한 인품을 가진 사람은 존경받을 수밖에 없다. 아랫사람을 자기 몸처럼 아끼고 넉넉한 가슴으로 품어주는 그런 사람은 스스로 뭐라 하지 않아도 오래도록 타인의 칭송을 받게 마련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광과 같은 지도자, 이광과 같은 군인을 갈망하고 있다. 그런 사람을 주변에서 좀체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