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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배병우] 믿을 건 가족뿐인가

바람아님 2016. 9. 23. 00:01
국민일보 2016.09.22. 17:37 

"국가는 실패, 가족이 모든 것인 한국.. 이웃과 연대·배려 없으면 희망 없다"
최근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보면서 속이 편치 않았다. ‘터널’을 보면서 배우 하정우의 호연과 탄탄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내가 굴 안에 갇힌 듯 답답했다. 이 영화가 세월호 사태에서 영감 받았음은 곧 알아챌 수 있었다. 고속열차 속에 좀비를 등장시킨 ‘부산행’을 보고 나서 딸은 재미있다고 했다. 하지만 ‘심란한 뉴스로 가득 찬 시절에 이처럼 유혈이 낭자한 영화를 봐야 하나’가 솔직한 심정이었다. 가장 불편했던 건 ‘가족이 모든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시종일관 이 영화의 동력은 가족애다. 주인공 공유와 마동석이 좀비에 맞서는 동기는 어린 딸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무능한 국가는 폐쇄된 공간에 갇힌 시민들을 구출하지 못한다. 피해자끼리의 신뢰도 바닥이다. 서로 의심한다. 극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가족 외에 소통하는 사적 모임, 이웃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 뒤 케이블TV에서 시청한 ‘해운대’도 그렇다. 여기서도 정부는 철저히 무능하다. 이혼한 아빠 박중훈이 자기를 희생하는 영웅적 행위를 하는 것은 딸을 위해서다. 지질학자로서 임박한 쓰나미를 경고하긴 하지만 결국 ‘가족이 최우선’이다. ‘터널’의 주제도 가족애이긴 마찬가지다.


영화가 사회구성원의 심리와 삶을 거울처럼 보여준다고 하면 과잉해석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허구이지만 현실의 반영이라는 이론은 유효하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최근 검사들의 잇따른 비리와 유력 신문사 주필의 추락과 맞물려 화제가 된 영화 ‘내부자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특히 10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히트 영화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코드’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요즘 영화가 드러내는 한국 풍경은 이렇게 묘사할 수 있을 듯하다. ‘터널이나 전염병 도는 공간처럼 어둡고 불안하다. 국가는 실패했고, 믿을 것은 가족뿐이다.’


박근혜 정부가 무능하고 신뢰 획득에 실패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가족마저 위태로운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가 실패했을 때 유일하게 믿을 것이 가족뿐인 공동체는 정상적인가. 친구나 이웃, 그리고 다른 사회적 관계망은 왜 위기의 한국인들의 뇌리에 떠오르지 않는 걸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더 나은 삶 지수’ 가운데 공동체지수는 이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 크다. 이 지수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친구나 이웃 등 사회적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을 가리킨다. 한국은 70%대 초반으로 최하위다. 지난해 조사대상 38개국의 평균은 88%인데 한국은 72%로 평균보다 16% 포인트나 낮다.


정부도, 이웃도, 친구도 믿을 수 없는 한국인은 그래서 가족 속으로만 달려가는 모양이다. 하지만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마당에 가족이 난공불락의 요새가 될 수 있는가. 필자는 부정적이다. 개인이 홀로 살 수 없듯이 이웃과의 연대가 없다면 가족도 홀로 설 수 없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가족 과 단절된 채 홀로 죽음을 맞는 고독사가 지난해 1200명을 넘어섰다. 올해 연이어 터진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벌어진 곳도 가정이다. 아동학대 살인사건 범인 대부분은 친부모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시민’의 개념, 시민의식의 각성이 시급하다는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의 주장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시민이란 ‘자기 생존’을 위해 ‘남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웃 없이 가족이 모든 것인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혈연과 지연, 학연을 벗어나 다른 사회구성원들과 배려와 협력, 나눔의 경험을 가져야 희망이 있다. 가족으로의 후퇴는 답이 아니다.


배병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