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 실린 '온달전(溫達傳)'은 김부식(金富軾·1075~1151)이 짓지 않았고, 신라시대 학자 김대문(金大問·?~?)의 '한산기(漢山記)'가 원전으로 추정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1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전국협의회 충북지회(지회장 윤수경)에 따르면 전날 오후 충북 단양군 단양읍 평생학습센터에서 개최한 20회 단양온달문화축제 기념 온달산성 학술회의에서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유적학과 교수는 '삼국사기 온달전의 역사적 실체 분석'이란 글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교수는 온달전에서 '후주(後周)의 무제가 군사를 보내 요동을 치니'란 구절에서 후주(951~960)는 고구려(기원전 37~668)와 존속했던 시대의 북주(北周·557~581)이고, '후주 무제'는 '북주 무제(560~578)로 봤다.
북주 무제 시기는 고구려 평원왕(559~590) 시기와 겹친다.
김부식이 12세기에 삼국사기를 지었다면 두 번째 주(周)인 북주라고 표기했을 테지만 후주라고 적은 것은 후주가 등장하기 이전에 온달전이 찬술됐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온달전에 등장하는 후주는 고구려 이후 등장하는 국가였다. 김부식이 온달전을 지었다면 고구려와는 시간적으로 도저히 병존할 수 없었던 후주를 거론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온달전이 고려시대에 저술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삼국사기에 소설문 형식의 글인 도미전(都彌傳)과 고구려 간첩승 도주(道琳) 이야기 2편의 원전이 신라 한산주 도독이었던 김대문의 한산기로 추정하면서 온달전도 김대문의 한산기에서 연유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온달전에서 온달 노모의 발언과 평강공주가 온달의 관을 운구하고자 위로하는 말이 4구체이고 김대문의 화랑 관련 글귀 역시 4구체로 빼어난 문장이었음이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봤다.
이 교수는 이와 함께 '광개토왕릉비문'의 '아단성(阿旦城)'은 서울 아차산성이 아니라 단양 온달성임을 거듭 확인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박물관 시굴조사에서 아차산성이 신라 성으로 드러났고, 아차산성 부근에서는 온달 관련 전설이 전무하지만, 단양을 비롯한 충북 일대에서 온달 관련 지명과 전승이 무수히 남아 있음도 들었다.
삼국사기 지리지는 고구려가 영춘(단양)지역을 차지한 이후 지금의 영춘면과 어상천면에 '을아단현(乙阿旦縣)'을 설치했고, 조선 전기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고구려의 을아단현으로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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