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조화로운 삶

바람아님 2016. 10. 11. 23:39
[J플러스] 입력 2016.10.07 07:51

은퇴 준비를 하며 읽은 글 중에는 19세기 폴란드 시인 노르비트가 쓴 글이 있는데요. 노르비트는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선 다음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먹고 살 것, 그리고 의미로운 것, 마지막으로 목숨을 바칠 정도로 재미있는 것 이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가 부족하면 드라마가 되고 두 가지가 부족하면 비극이 된답니다. 그러니까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루는 삶이 필요합니다.

아마 사람들마다 다 이런 생각을 무의적으로나마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다만 현대 윤리학자 피터 싱어가 지적했듯이 우리가 그걸 어줍잖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싱어는 그의 책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밝혔습니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방식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사리사욕이 최고의 가치를 가지는 삶의 방식, 윤리가 최고의 가치를 갖는 삶의 방식, 그리고 아마도 이들 양자를 절충한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겁니다.

이글을 보니 얼마 전 읽은 우화가 생각납니다. 주일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착한 일을 한 어린이는 죽어서 하얀 강아지로, 나쁜 일을 한 어린이는 검은 강아지로 태어난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가장 나이가 어린 토마스에게 물었습니다. “토마스야, 너는 어떤 강아지로 태어날 것 같으냐?” 토마스는 한창 망설이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아마 얼룩 강아지로 태어날 것 같아요.”

어디 토마스만 그렇겠습니까. 저도 만약에 그렇다면 얼룩 강아지로 태어나지 않을 까 싶습니다. 제가 착한 일을 했다기보다는 나쁜 일도 적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싱어도 사리사욕과 윤리가 상충할 때 적어도 가끔은 사리사욕이 이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만큼 우리 자신을 위해 살고, 또 어느 만큼 다른 사람을 위해 살 것인가요. 싱어는 각자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인가? 바로 이것이 궁극적인 물음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어떤 형태의 삶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가를 묻는 겁니다. 더 나이가 들어, 살아 온 인생을 되돌아보게될 때 '그렇게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 찾아야 합니다. 만약 그걸 찾을 수 있으면 후반생 인생설계가 좀 더 쉬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