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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한글, 21C 세계 최고 문자로 재탄생시키자

바람아님 2016. 10. 12. 07:46

(조선일보 2016.10.12 신부용 전 KAIST 한글공학연구소장)


신부용 전 KAIST 한글공학연구소장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정보화된 나라'로 평가받는다. 

많은 사람이 한글의 덕이 컸다고 생각한다. 

가장 과학적인 글자여서 정보화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20년 전부터 '한글을 세계 문자로 만들자'는 주장이 나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실제로 한 민간단체의 노력으로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쓰게 되었다.

'한국어'가 아닌, '문자'로서의 한글 이야기다. 한글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소리 나는 대로 쓰므로 표현력에서 월등하다. 

문맹이던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자마자 편지를 쓰고, 얼마 지나면 수필가로 등단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글은 24개 글자지만 자판에 12가지만 탑재해도 불편 없이 입력할 수 있다. 

훈민정음의 글자 만드는 공식을 응용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영어는 26개 자판이 다 있어야 하고, 중국어나 일어의 입력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요컨대 한글은 다른 문자보다 배우기 쉽고, 정보를 쉽게 표현하며, 빠르게 입력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검(劍)이 있어도 검술이 달리면 이길 수 없는 법이다. 

한글의 강점을 더욱 신장시키고 활용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은 한글을 '원천 기술'이라고 했다. 

또 많은 이가 한글을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재'라고 말한다.


이런 자랑스러운 호칭들이 허상으로 남지 않게 해야 한다. 

잘 개발해서 우리를 먹여 살릴 거대한 '언어 산업'을 일으키고, 세계의 언어 중심국으로 자리 잡게 해야 한다. 

한글이 세계 문자로 쓰이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언어 기술적 조건, 정치적 수용성, 그리고 소비자의 선택이다. 

우리는 둘째와 셋째 관문은 두드려보지도 않았고, 첫째 조건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 적잖다.


현재의 한글은 망해가는 조국 조선을 보면서 민족의 혼이라도 살려내야겠다는 일념으로 주시경 선생이 '속성형' 

혹은 '보급형'으로 정리해 만든 것이다. 이후 우리의 언어 정책은 현상 유지 혹은 보존에 있었다. 

이제 '보급형'에서 탈피해 새 시대를 이끌 문자 시스템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예컨대 영어의 'f' 'r' 'z'에 해당하는 사라진 문자를 복원해 활용하는 작업 같은 것이다. 

훈민정음은 그 시대 최고의 문자였다. 

우리가 이 시대 최고의 문자로 재탄생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