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한국에살며] 참회하지 않는 역사

바람아님 2016. 10. 13. 23:29
세계일보 2016.10.13. 00:23 

일본 국민 눈과 귀 가렸던 군국세력잘못한 과거 속죄부터 하는 게 순리
막내딸이 중학교에 다닐 때 일이다. 일제강점기를 배우는데 역사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전에 수업 중에 계속 고개를 숙이고 안색이 안 좋은 학생이 있어 나중에 알아봤더니 엄마가 일본인이었다. 그 다음해도 똑같이 한 학생이 수업 중에 안색이 안 좋아서 확인했더니 그 학생의 동생이었다. 혹시 여기에는 그런 학생이 없니?”라고 물어보셨다고 한다. 평소에 성격이 활달한 딸은 똑바르게 “그 두 학생은 제 오빠였어요”라고 대답해서 교실 안에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나중에 듣고 엄마 때문에 아이들이 밖에서 마음고생을 겪는구나 하는 미안함과 동시에 학생들의 안색까지 신경 써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가졌다.

한국 교과서의 근대사를 보면 그 부피와 자세함에 놀랍기만 하다. 일본 학교에서는 고대사부터 시작해 중세·근세·현대까지 가르치는데 뒷부분 근현대사까지 공부하기가 너무 벅차다. 역사는 당연히 외워야 할 것이 많은 과목이라 시험에 자주 나오는 고대·중세사는 다들 열심히 공부한다. 그런데 근현대사 진도가 나갈 때면 마지막 학기이고 수업시간도 모자라 프린트 정리만 한다거나 아예 생략해 버려 교과서를 완전 마스터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근현대사 공부는 소홀히 대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과 일본의 온도 차이는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요코야마 히데코 원어민교사

나는 학생 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 등 일제강점기가 되기 전 근대 대표적인 문학작가들이 왜 잇따라 자살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민족의 가까운 미래를 보는 힘이 있는 지식인들은 그곳에서 숨을 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전쟁 상황이 나빠질수록 국민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승리할 때까지 나라를 위해 헌신을 다하는 것만 요구했다는 것이다. 일본에 이런 상황이 올 것임을 예측한 일부 학자나 지식인은 체포를 당하고 감옥에 들어갔다고 전해졌다. 국민은 군부 말대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바쳤다. 사랑하는 아버지, 남편,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마지막에는 원자폭탄을 2개나 맞았다. 일반 서민들은 전쟁이 끝났어도 나라를 위해 헌신을 다했을 뿐 피해자라는 의식은 있어도 가해자라는 의식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말하고 싶은 역사도 있고 말하고 싶지 않은 역사도 있다. 역사라는 것은 배워서 민족의 근원을 알고 자존심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나라만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 여겨진다.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독재자가 될 때까지의 성장과정이나 사회적인 배경을 지금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는 역사시간을 고대·중세·근대 3단계로 나눠 공부하기에 근대사만 배울 시간이 따로 모자라는 일은 없다고 한다.


지금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일본 역사에 대해 TV나 신문을 통해 훨씬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아는 것만으로 끝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역사를 똑바로 보고 왜 그렇게 흘러 가버렸는지 깨달아야 한다. 잘못된 역사로 얽힌 현실의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보다는 고개 숙여 스스로 속죄하는 마음을 갖는 것부터가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요코야마 히데코 원어민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