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살며 생각하며>아아, 동십자각(東十字閣)

바람아님 2016. 10. 15. 09:44
문화일보 2016.10.14. 14:20

오세영 예술원 회원

경복궁 사거리는 서울의 중심, 그 중심에서도 중심이라 일컬어 손색이 없는 대한민국의 심장부일 것이다. 동서로는 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거쳐 독립문에 이르는 사직로, 남북으로는 궁의 동쪽 성벽을 따라 총리 공관과 청와대로 이어지는 삼청로가 상호 교차하는 바로 그 지점이다. 과거에는 만백성을 섬긴 나라님이 주석했고, 오늘에는 대통령과 총리가 국민의 안위를 지키고자 주야로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곳이니 어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으랴.

이곳은 또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인파를 이루는 장소이기도 하다. 내국인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역시 한 번쯤 이 거리를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교통의 요지라는 것은 둘째 치고, 우선 고궁과 정부의 중요한 기관들, 그리고 크고 작은 문화시설들이 여기저기 몰려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매일같이 벌어지는 대부분의 군중집회가 항상 이곳을 중심으로 해서 열리겠는가. 그러한 의미에서 이 경복궁 사거리는 대한민국의 민낯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리라.


그러므로 이 거리를 걷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감회는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경복궁을 바라보면서 공유하게 되는 5000년 문화민족으로서의 정체성, 정부 청사를 대면하면서 가슴 벅차오르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의 국민으로서의 자존감, 세종로 광장의 그날을 생각하면서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긍지, 그리고 이곳저곳 문화시설들을 기웃거리면서 경험하게 되는, 앞으로 세계의 미래를 이끌어 가야 할, 민족적 포부와 자신감 등….


그런데 이 상징적인 장소에 웬 건축물 하나가 버려져 우리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구겨버린다는 것은 정말 슬픈 풍경이다. 그것은 그 거리의 격에 맞지 않게 서 있는 이 건축물의 모습이 마치 번잡한 도시의 광장을 건너다 자동차의 홍수에 갇혀 버린 시골뜨기의 행색 같아서, 아니 행인에게 자비를 구하는 노변의 남루한 걸인(乞人) 모습 같아서 우리로 하여금 은연중에 회고하기 싫은 어떤 자조감 같은 것을 불러일으키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동십자각(東十字閣)’이라는 조선 시대 건축물이다.


그 자체만을 놓고 보면 매우 품위 있고 우아한 건축물이다. 당당한 아름다움이 국민적 자부심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한 문화재 중의 문화재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토록 초라해져 지금은 오히려 우리의 자존감을 훼손시키는 상징물로 영락해 버린 사연은 어디 있을까? 두말할 것 없다. 우리가 그를 그의 본래 위상대로 존중해주지 않으니 그 역시 우리의 자존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본래 ‘궁궐(宮闕)’의 ‘궁’은 임금의 거처를, ‘궐’은 궁의 출입문 좌우에 설치된 망루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경복궁 역시 건립 당시에 이 같은 동양 궁궐의 축조 원리에 따라 궁궐 담장의 동서 양쪽 끝에 궁 내외를 감시할 수 있는 망루를 각각 설치했다.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이다. 그런데 서십자각은 불행하게도 민족 항일기인 1923년 10월 5일, 일제가 조선부업품공진회의 개회에 맞춰 전차(電車)를 개통하면서 광화문과 영추문 사이의 전차선로에 끼이게 되어 헐리는 만행을 당한다. 광화문 앞에 서 있던 해태상 역시 제 위치에서 철거되었다. 하지만 요행히 동십자각만큼은 광화문 쪽에서 안국동으로 곧장 이어지는 직선 선로의 노변에 자리했던 까닭에 철거되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수난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동십자각도 이후 일제의 우리 문화 말살 정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926년 일제가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 청사(중앙청)를 완공하면서 광화문을 다른 자리로 옮기고 홍례문(弘禮門)을 헐고 궁성을 제멋대로 훼손할 때, 급기야 양 날개의 성벽을 모두 잃어 지금과 같이 길거리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동십자각이 경복궁 건립 당시의 위용을 잃은 채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게 된 것은 사실 일제와 맞서 나라를 지키지 못한 우리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요, 그 자체가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비춰 주는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치욕스러운 일제 강압 통치를 벗어나 당당히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우리로서는 경복궁을 원래의 위상대로 되찾아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경복궁의 외관에 해당하는 성벽과 동서 양 끝자락에 자리한 망루, 곧 서십자각과 동십자각의 제 모습 찾아주기만큼은 이제 시기적으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외부로 보이는 경복궁의 성벽이야말로 바로 대한민국의 얼굴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그 어느 민족이든 전통이 있는 나라라면 자연스럽게 물질적(시각적) 차원에서 보여주는 자신들의 얼굴을 갖게 마련이다. 중국에 가면 우리는 베이징(北京)의 자금성을 먼저 찾는다. 일본에 가면 도쿄(東京)의 궁성을 본다. 프랑스에 가면 에펠탑을 감상한다. 러시아에 가면 크렘린 궁에 압도당한다. 이탈리아에 가면 로마의 콜로세움에 경탄한다. 심지어 역사가 일천한 미국도 워싱턴에 가면 먼저 의사당을 둘러볼 것이다. 모두 그 나라의 위엄과 권위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얼굴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 온 외국인이 먼저 무엇을 볼 것인가. 예산이 없어서라고, 이미 개인 소유가 된 땅이라서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말자. 대한민국은 이미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육박하는 경제 대국이 아닌가. 이제 우리도 그에 걸맞은 얼굴 하나쯤은 가져도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