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28] 수염이 하나도 없는 이 남자, 어떻게 功臣에 올랐나

바람아님 2013. 8. 12. 08:08

(출처-조선일보 2012.10.14  손철주 미술평론가)




'전(傳) 김새신 초상'… 작자 미상, 비단에 채색, 153×81.3㎝, 1604년, 파주 93뮤지엄 소장.

틀에 박힌 초상화의 꼴이 있다. 머리에 번듯한 오사모를 쓰고, 가슴과 허리에는 벼슬의 높낮이를 알려주는 흉배와 각대를 두른다. 옷은 색깔이 다르더라도 깃이 둥근 관복(官服) 차림이라야 한다. 손은 소매 안에서 맞잡은 채 장식이 멋진 의자에 앉아 발은 여덟 팔 자로 벌리고 눈은 차분히 한쪽을 바라본다. 이런 형식으로 등장하는 모델이라면 그 정체가 뻔하다. 공신(功臣)들로 보면 된다.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이들은 여러 특혜를 누리는 영광에다 최고의 화가가 그린 초상까지 덤으로 받았다.

이 작품도 공신상(功臣像)이다. 흉배로 보건대 주인공은 문관 3품이다. 구름 사이로 꿩을 닮은 
백한(白鷳)란 새가 활개를 친다. 이색지게 보이는 카펫이 바닥에 깔렸는데, 조선 중기의 공신상에 흔히 나오는 치장이다. 얼른 봐도 표정이 음전하다. 제법 발그레한 입술을 힘주어 다무는 바람에 뺨에 서너 개 주름살이 퍼졌다. 눈빛은 초롱초롱하고 살빛은 고른 편이다. 그래서일까, 나잇살이 보이지 않고 배젊은 느낌이 든다. 한데, 코밑과 턱 아래가 민숭민숭한 게 좀 이상하지 않은가. 수염이 한 올도 없다. 이분, 내시다.


어떻게 내시가 공신이 됐을까.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조는 의주로 피했는데, 그때 호위하던 신하 80여 명이 '호성(扈聖)공신'이 됐다. 1등에 이항복, 2등에 류성룡 등 명신(名臣)이 있었고, 3등에 이례적으로 내시 24명이 뽑혔다. 3등 공신이던 김새신(金璽信·1555~1633)이 바로 이 초상 속의 내시로 전해진다. 김새신의 행적이 자세하지 않아 학자들은 아직 추정작으로 본다. 내시는 양반보다 수명이 길다는데, 김새신은 여든 가까이 살았다.

'내시 이 앓는 소리'란 속담이 있다. 매가리 없는 목청으로 지루하게 내는 소리를 뜻한다. 강해서 오래가기보다 오래가서 강한 것도 있다. 최초의 내시 초상으로 길이 남을 김새신의 묘는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 있다.


(참고1 - 흉배의 확대 이미지)


(참고2 - 백한(白鷳)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