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2016.12.12 03:16
이 세상에 오면 아무리 용을 써도 세파(世波)를 피해 갈 수 없다. 세파는 칼바람, 모래바람으로 오기도 하고 감방, 부도, 이혼, 암(癌)으로 오기도 한다.
세파에 시달릴 때마다 나를 포근하게 안아준 곳은 지리산이다. 지리산은 둘레가 500리나 되기 때문에 봉우리와 골짜기도 많고 숨어 살 곳도 많다. 만학천봉(萬壑千峰) 운심처(雲深處). 그 지리산 골짜기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절이 칠불사(七佛寺)이다. 그 옛날 가야국의 왕자 7명이 여기에 와서 도를 닦고 모두 부처가 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처음에 이 7명은 김해 장유에서 수도하다가 합천 가야산으로 옮겼고, 다시 창녕 화왕산, 그리고 와룡산에서 공부하다가 마지막에 칠불사 터로 온 것이다. 공부도 자기하고 맞는 터가 있는 것 같다. 아들 7명이 왕궁을 떠나 깊은 산에 가서 도를 닦으니까 부모 심정이 어찌 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아버지인 김수로왕이 7명 아들을 보기 위해서 절 근처에 머물렀던 동네 이름이 지금도 남아 있다. 범왕리(梵王里). 어머니인 허왕후가 자식들 보기 위해 머물렀던 마을 이름은 절 아래의 '대비(大妃)마을'이다.
도가에서는 지리산 전체를 청학(靑鶴)과 백학(白鶴)으로 보지만, 불가에서는 지리산 주봉을 반야봉으로 보고 반야봉을 문수보살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 본다. 그 반야봉 줄기가 내려와 700m 높이에 칠불사가 자리 잡고 있다. 주변 산세는 날카롭고 험한 바위 절벽이 보이지 않는다. 부드럽고 두꺼운 육봉(肉峰)들로 둘러싸여 있다. 쇠붙이가 안 보이는 고요와 평화의 터다. 2000년 전에 가야국의 옥보고 신선이 이 터에서 가야금을 타고 거처로 삼았던 이유를 알겠다.
칠불사 경내의 백호자락 끝에는 그 유명한 아자방(亞字房)이 자리 잡고 있다. 방 형태가 '아(亞)'자 모양으로 생겼다. 아궁이에 한번 불을 때면 100일 동안 온기가 유지되었다는 전설적인 온돌방이다. 신라 효공왕 때 구들도사인 담공선사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100일이나 따뜻했을까? 우리나라 '아궁(亞宮)이'라는 말의 기원은 칠불사 아자방의 아궁이가 아닌가 싶다. 아궁이의 '아'를 아자(亞字)라고 하면 말이다. 자궁(子宮) 다음에는 아궁(亞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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