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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1070] 七佛寺 亞字房

바람아님 2016. 12. 12. 23:48
조선일보 : 2016.12.12 03:16

조용헌
조용헌

이 세상에 오면 아무리 용을 써도 세파(世波)를 피해 갈 수 없다. 세파는 칼바람, 모래바람으로 오기도 하고 감방, 부도, 이혼, 암(癌)으로 오기도 한다.

세파에 시달릴 때마다 나를 포근하게 안아준 곳은 지리산이다. 지리산은 둘레가 500리나 되기 때문에 봉우리와 골짜기도 많고 숨어 살 곳도 많다. 만학천봉(萬壑千峰) 운심처(雲深處). 그 지리산 골짜기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절이 칠불사(七佛寺)이다. 그 옛날 가야국의 왕자 7명이 여기에 와서 도를 닦고 모두 부처가 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처음에 이 7명은 김해 장유에서 수도하다가 합천 가야산으로 옮겼고, 다시 창녕 화왕산, 그리고 와룡산에서 공부하다가 마지막에 칠불사 터로 온 것이다. 공부도 자기하고 맞는 터가 있는 것 같다. 아들 7명이 왕궁을 떠나 깊은 산에 가서 도를 닦으니까 부모 심정이 어찌 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아버지인 김수로왕이 7명 아들을 보기 위해서 절 근처에 머물렀던 동네 이름이 지금도 남아 있다. 범왕리(梵王里). 어머니인 허왕후가 자식들 보기 위해 머물렀던 마을 이름은 절 아래의 '대비(大妃)마을'이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에 있는 가락국 사찰 칠불사. 지리산 토끼봉의 해발고도 830m 지점에 있는 사찰로, 101년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다가 103년 8월 보름날 밤에 성불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조선일보 DB
도가에서는 지리산 전체를 청학(靑鶴)과 백학(白鶴)으로 보지만, 불가에서는 지리산 주봉을 반야봉으로 보고 반야봉을 문수보살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 본다. 그 반야봉 줄기가 내려와 700m 높이에 칠불사가 자리 잡고 있다. 주변 산세는 날카롭고 험한 바위 절벽이 보이지 않는다. 부드럽고 두꺼운 육봉(肉峰)들로 둘러싸여 있다. 쇠붙이가 안 보이는 고요와 평화의 터다. 2000년 전에 가야국의 옥보고 신선이 이 터에서 가야금을 타고 거처로 삼았던 이유를 알겠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에 있는 가락국 사찰 칠불사의 아자방. 아자방은 신라 때 금관가야에서 온 구들도사 담공선사가 만든 온돌방으로, 방안 네 귀퉁이에 70cm씩 높인 곳이 좌선처이며, 가운데 십자 모양의 낮은 곳이 행경처이다. 한번 불을 지피면 49일 동안 온기가 가시지 않았다고 한며, 100명이 한꺼번에 좌선할 수 있는 방으로, 건축 이래 한 번도 보수한 적이 없다. /조선일보 DB
칠불사 경내의 백호자락 끝에는 그 유명한 아자방(亞字房)이 자리 잡고 있다. 방 형태가 '아(亞)'자 모양으로 생겼다. 아궁이에 한번 불을 때면 100일 동안 온기가 유지되었다는 전설적인 온돌방이다. 신라 효공왕 때 구들도사인 담공선사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100일이나 따뜻했을까? 우리나라 '아궁(亞宮)이'라는 말의 기원은 칠불사 아자방의 아궁이가 아닌가 싶다. 아궁이의 '아'를 아자(亞字)라고 하면 말이다. 자궁(子宮) 다음에는 아궁(亞宮)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