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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교토와 도쿄의 책방 나들이

바람아님 2016. 12. 14. 23:31
조선일보 : 2016.12.14 03:11

교토에서 만난 어느 책방 손님 "책방에서 책을 사야 이곳을 더 오래 보죠"
내가 산 한 권의 책이 책방 사장님에게 용기가 돼 조금 더 오래 문 열 수 있다면

이현화 이봄출판사 편집부 실장
이현화 이봄출판사 
편집부 실장
얼마 전부터 출판계는 물론 책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 동네 책방은 '핫'한 장소가 되었다. 도서 정가제를 두고 찬반양론이 아직도 팽팽하지만, 동네 책방의 등장만큼은 누가 뭐래도 책의 지나친 할인 판매를 막는 도서 정가제 시행 덕분이다. 책 좋아하는 이들은 그런 책방의 출현을 반긴다. 나 역시 편집자이기 전에 독자이니, 내 맘에 드는 책을 모아놓은 동네 책방에 가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낸다.

올봄, 교토와 도쿄에 한동안 머물렀다. 교토 주택가의 숙소 가까이에 부부가 운영하는 책방이 있었다. 2층짜리 아담한 목조 주택 위층은 살림집, 아래층이 책방인 소박한 공간이었다. 오며 가며 시간 날 때마다 그 책방을 들렀다. 10여 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책방을 열었다는 머리 희끗희끗한 사장님은 언제나 무척 분주했다. 책방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책방이었지만, 많을 때는 열 명, 적을 때는 서너 명이 서가 어딘가에 서서 책을 훑어보고 있었다. 길가 쪽으로 커다란 창이 있던 그 공간은 창밖에서 볼 때나 안에 서 있을 때나 언제나 안온한 분주함이 흘렀다.

얼굴을 익혀 눈인사를 주고받게 되었을 무렵의 일이다. 그 책방에서 그림책 원화 전시회가 열린 날, 책방 사장님은 그림책 편집자를 내게 소개해주고 함께 차 한잔 하자고 했다. 책방 단골 몇 분도 동석했다. 출판사도 힘들고 책방도 힘들고, 갈수록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서 큰일이라는 걱정에, 전자책이 나오면 종이 책은 사라지는 거 아니냐 등등 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눌 법한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그런 이야기 끝에 나는 실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책방을 해서 과연 생활이 가능하냐"고 책방 사장님께 물었다. "교토 사람들은 책을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가 습관이 된 사람이 많습니다. 

일본에서 책방이 사라진다면, 아마 가장 마지막까지 책방이 남아 있는 도시는 교토가 될 겁니다." 할 말을 잃게 하는, 자기 고장에 대한 어마어마한 자부심이었다. "다음 세대에는 몰라도 아마 제가 책방을 하는 동안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도 덧붙였다. 이곳에 자주 온다는 손님은 "여기는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제대로 갖춰놓고 있어요. 옛날 책과 새로 나온 책이 골고루 있는 것도 좋지요" 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일부러 이곳에서 책을 사요. 여기서 책을 사야 우리 애들도 이 책방에서 책을 볼 수 있으니까요." 또 다른 손님은 이렇게 말했다. "책방에서 책을 사는 건 당연하지 않아요? 여기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잖아요. 취미가 아니라 생업이라고요."

[ESSAY] 교토와 도쿄의 책방 나들이
/이철원 기자
도쿄로 옮긴 후 '이곳 책방들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교토에서보다 훨씬 더 일삼아 여기저기 책방을 찾아다녔다. 도쿄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책방 밀집 지역에는 책방 안내 지도가 곳곳에 비치돼 있었고, 독서 관련 프로그램과 행사를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책방마다 특성이 확연해서 파는 책도 제각각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어디에나 언제나 책방에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체류를 마치고 돌아와 나는 다시 책을 만들고 있다. 책방을 들르는 일상도 그대로이다. 그사이 책방이 더 많이 생겼고, 가볼 곳도 많아졌다. 어느 책방을 가든 공간은 멋졌고 서가 구성도 참 좋았다. 향긋한 커피 향과 안락한 탁자는 기본이었다. 책방들이 운영하는 SNS에서 '비가 내려도, 책방은 문을 엽니다'라는 안내를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교토나 도쿄에서와 달리 책방 대부분은 비어 있었다. 책방에 가보면, 들고 나는 이들 중 채 10분도 머물지 않고 사진 몇 장만 찍고 나가는 모습을 종종 보곤 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책방 주인 얼굴에는 어떤 동요도 없었다. 이미 익숙한 풍경인 듯했다. 책방이 책이 아니라 이미지로 소비되는 느낌이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로 책방에 들르면 책 한 권은 꼭 사 들고 나온다. 교토 그 책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실은 내내 반성 모드였다. 책방은 책을 보는 곳이기도 하지만 책을 파는 공간이라는 걸 나부터도 잊고 살았던 듯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책방에 갈 때마다 교토에서 만났던 책방 손님 말이 생각난다. "이 책방에서 책을 사야 이곳을 오래 볼 수 있지 않겠어요?"

보고 싶은 책이 생기면 일부러 책방에 간다. 내가 산 책 한 권이 어쩌면 책방 사장님에게 점포 임대 계약을 연장해 이 자리에서 한번 더 해볼 용기를 내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다음 세대까지는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