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2016.12.09 03:08
"문에 매달리지 마세요. 뒤차 금방 옵니다."
매일 아침 만원 버스엔 스릴이 넘친다. 뒤차가 언제 오든 상관없다. 나는 이 버스에 올라타야 하니까. 겨울엔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기가 더 힘들다. 옷장 곰팡이와 세제, 전날 먹은 삼겹살에 향수까지 뒤섞인 쿰쿰한 냄새를 참아내며 후끈한 히터 바람을 얼굴에 꼼짝없이 맞고 서 있어야 한다.
회사 코앞에 살다 경기도로 이사한 지 1년쯤 됐다. 왕복 3시간 출퇴근. 남들은 어떻게 견디느냐고 내게 묻지만 익숙해지면 못할 일도 아니다. 사실 요즘은 퍽 재미를 느끼고 있다.
엊그제 지하철을 탔을 땐 한 할머니가 노약자석에 앉아 마늘 까는 모습을 봤다. 젊은이들은 슬금슬금 피했는데 또래 할머니들이 모여들었다. "손 다쳐요, 까지 마" "생각 없어져서 좋잖아요. 이거라도 안 하면 온종일 한숨만 나와" "그러게, 빨리 저세상 가야 하는데" "아, 건강한데 왜 벌써 간대요?"…. 처음 만난 할머니들이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는 마늘의 효능과 요리법 쪽으로 점점 흘러갔다.
한 달 전쯤엔 할머니 4명이 출근길 버스에 단체로 무임승차했다. "죄송해요. 한 정거장만 더 갈게요"라며 거듭 허리 숙여 인사하니 마음 약한 운전기사는 요금을 받아낼 수도, 손님을 내리게 할 수도 없어 속수무책 달릴 뿐이었다. 그날 퇴근길에도 어떤 아저씨가 등산복과 배낭에 달린 주머니를 뒤지며 교통카드 찾는 시늉을 하다가 목적지에 이르렀는지 쏜살같이 사라졌다.
매일 아침 만원 버스엔 스릴이 넘친다. 뒤차가 언제 오든 상관없다. 나는 이 버스에 올라타야 하니까. 겨울엔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기가 더 힘들다. 옷장 곰팡이와 세제, 전날 먹은 삼겹살에 향수까지 뒤섞인 쿰쿰한 냄새를 참아내며 후끈한 히터 바람을 얼굴에 꼼짝없이 맞고 서 있어야 한다.
회사 코앞에 살다 경기도로 이사한 지 1년쯤 됐다. 왕복 3시간 출퇴근. 남들은 어떻게 견디느냐고 내게 묻지만 익숙해지면 못할 일도 아니다. 사실 요즘은 퍽 재미를 느끼고 있다.
엊그제 지하철을 탔을 땐 한 할머니가 노약자석에 앉아 마늘 까는 모습을 봤다. 젊은이들은 슬금슬금 피했는데 또래 할머니들이 모여들었다. "손 다쳐요, 까지 마" "생각 없어져서 좋잖아요. 이거라도 안 하면 온종일 한숨만 나와" "그러게, 빨리 저세상 가야 하는데" "아, 건강한데 왜 벌써 간대요?"…. 처음 만난 할머니들이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는 마늘의 효능과 요리법 쪽으로 점점 흘러갔다.
한 달 전쯤엔 할머니 4명이 출근길 버스에 단체로 무임승차했다. "죄송해요. 한 정거장만 더 갈게요"라며 거듭 허리 숙여 인사하니 마음 약한 운전기사는 요금을 받아낼 수도, 손님을 내리게 할 수도 없어 속수무책 달릴 뿐이었다. 그날 퇴근길에도 어떤 아저씨가 등산복과 배낭에 달린 주머니를 뒤지며 교통카드 찾는 시늉을 하다가 목적지에 이르렀는지 쏜살같이 사라졌다.
아직도 지하철에는 유행 지난 셀카봉이나 방수 돗자리를 파는 잡상인이 가끔 보인다. "고추 말릴 때 좋고 비 오는 날 노인네 방바닥에 깔아줘도 좋아요." 서울 한복판에서 저 말 듣고 돗자리 사겠다는 사람이 나올지 걱정스러웠다. 짐 많은 할머니를 스쳐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짐을 대신 들고 계단을 오르는 여고생, 승객들이 타고 내릴 때마다 일일이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인사 건네는 버스 기사를 목격할 때면 멸종 위기 천연기념물을 발견한 것처럼 반갑다.
하루 1277만명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의 삶이 집약된 현장이다. 날마다 새롭게 열리는 배움의 현장이기도 하다. 혼술과 혼밥, SNS에 익숙한 젊은 세대도 버스와 지하철 속에선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몸으로 겪는다. 내가 속한 동네와 일터에서 평생 만날 일 없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과 잠시지만 한 공간에 머물며, 마늘 까는 할머니들처럼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는 법도 훈련한다. 하루 3시간 출퇴근길은 그래서 즐겁다. 앉을 자리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루 1277만명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의 삶이 집약된 현장이다. 날마다 새롭게 열리는 배움의 현장이기도 하다. 혼술과 혼밥, SNS에 익숙한 젊은 세대도 버스와 지하철 속에선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몸으로 겪는다. 내가 속한 동네와 일터에서 평생 만날 일 없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과 잠시지만 한 공간에 머물며, 마늘 까는 할머니들처럼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는 법도 훈련한다. 하루 3시간 출퇴근길은 그래서 즐겁다. 앉을 자리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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