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살며 생각하며>벼슬, 배운 다음에 해야 한다

바람아님 2016. 12. 16. 23:29
문화일보 2016.12.16 12:30
자산은 죽은 뒤 장례를 치를 비용이 없을 정도였다. 그와 관련해 남은 유적이라곤 지금 정저우(鄭州) 시를 흐르는 금수하(金水河)뿐이다.

김영수 중국 전문가

사마천은 법이 통치의 수단이나 도구가 되긴 하지만 인간의 선악과 공직의 청탁을 가늠하거나 결정하는 근본적인 도구는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 유력한 근거로 치밀한 법망을 갖추고도 통치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했던 진(秦)나라의 빠른 멸망과 가혹하고 치밀한 법망을 가지고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던 한(漢) 무제의 통치 사례를 거론했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법령이 정치의 도구이기는 하나 백성들의 선악(善惡)과 청탁(淸濁)을 다스리는 근본적인 제도는 아니다. 과거 천하의 법망이 그 어느 때보다 치밀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백성들의 간교함과 거짓은 도리어 더 악랄해졌다. 법에 걸리는 관리들과 법망에서 빠져나가려는 백성들로 인한 혼란이 손쓸 수 없을 만큼 극에 이르자 결국 관리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백성들은 법망을 뚫어 나라를 망할 지경으로 끌고 갔다. 당시 관리들은 타는 불은 그대로 둔 채 끓는 물만 식히려는 방식의 정치를 했으니 준엄하고 혹독한 수단을 쓰지 않고 어찌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권122 ‘혹리열전’ 중 사마천의 논평)


다음으로는 법의 기능과 이를 집행하는 관리들의 바른 자세에 대해서 말한다.

“법령이란 백성을 선도하기 위함이고, 형벌이란 간교한 자를 처단하기 위함이다. 법문과 집행이 잘 갖춰져 있지 않으면 착한 백성들은 두려워한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잘 수양한 사람이 관직에 오르면 문란한 적이 없다. ‘직분을 다하고 이치를 따르는 것(奉職循理·봉직순리)’ 또한 다스림이라 할 수 있다. 어찌 위엄만으로 되겠는가?”(권119 ‘순리열전’ 중 사마천의 논평)

법을 집행하는 공직자가 사사로운 욕심에 물들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법을 떠받들면 법의 근본적인 기능이 제대로 행사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컨대 공평하게 법을 집행하려는 관리의 의지와 자기 수양이 전제된다면 법은 얼마든지 너그러워질 수도 있다는 논리다.


사마천의 법 정신의 요점은 법 조문 자체의 엄격함이나 치밀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집행하는 공직자의 처신이 법조문을 가혹하게도, 너그럽게도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법을 집행하는 자가 법을 지킬 의지가 없다면 법조문이 아무리 많고 지독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나라의 법전을 철저하게 정비한 개혁가 상앙(商鞅)은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위에서 법을 어기기 때문이다(法之不行自上犯也)”(상군열전)라고 일갈했던 것이다.


법은 강제력이지만 그것이 철두철미 공평무사(公平無私)하게 집행된다면 통치와 백성들의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법도 어디까지나 인간 사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완벽에 가까운 법체계를 갖추고도 진나라가 일찍 망한 가장 큰 원인으로 ‘막힌 언로(言路)’를 꼽았다. 요컨대 법을 집행하는 자가 백성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저 가혹하게만 굴었다는 것인데, 이는 법 집행에서 유연한 융통성의 필요성을 함께 지적한 것이다.


‘순자’의 군도(君道) 편에 보면 “어지럽히는 군주는 있어도 어지러운 나라는 없다(有亂君無亂國·유난군 무난국). (잘) 다스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잘) 다스리는 법은 없다(有治人無治法·유치인 무치법)”는 대목이 눈에 띈다.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갖추어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으면 법과 제도는 유명무실해진다는 말이 아닌가.

처음부터 어지러운 나라는 없다. 못난 리더가 자리에 앉아 제도와 법을 어지럽히고,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자기들 멋대로 법을 유린(蹂躪)하기 때문이다. 법을 가장 잘 아는 자들이 법을 가장 많이 어기고 악용하는 까닭도 그 사람의 법 의식이 삐뚤어져 있고, 사사로운 욕심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최고 통치자에 대한 탄핵과 사법처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누구보다 법을 준엄하게 받들고 엄격하게 지켜야 할 사람이 법을 사유화하고 심지어 법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고 사익(私益)과 사욕(私慾)을 추구했던 정황들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시민들은 분노했고, 촛불을 높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수백만 시민은 놀라운 준법 의식과 실천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 엄중한 혁명적 상황에서 새삼 또 하나의 중대한 역사적 원칙 하나를 확인하게 된다. ‘벼슬을 하려는 자는 벼슬에 앞서 인간이 돼야 한다’는 너무도 상식적인 원칙 말이다.


춘추시대 중원에 위치했던 정(鄭)나라의 정치가 자산(子産)은 정치의 본질에 관한 성찰로서 “정권을 잡으면 반드시 인덕(仁德)으로 다스려야 한다. 정권이 무엇으로 튼튼해지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정권은 백성이 있음으로써 튼튼해진다. 그러면서 자산은 통치자를 비롯한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 갖춰야 할 전제조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녹봉(재력)과 벼슬(권력)은 자신을 비호하는 수단이 된다. 나는 배운 다음 벼슬한다는 소리는 들어 보았어도 벼슬한 다음 공부한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요컨대 자산은 정치를 하려는 사람은 먼저 배워라, 즉 사람이 되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렇게 말한다.


“백성과 나라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생사를 그 일과 함께할 것이다.”

지금 온 나라가 혼란스럽다. 국민은 촛불과 횃불로 누가 과연 사람(?)인지를 환히 밝히고자 한다. 자산과 같은 지도자가 수백만, 수천만 촛불과 횃불 정신을 통해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