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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역사 교과서, 게으른 우파 학자들이 졌다

바람아님 2016. 12. 19. 23:48
[중앙일보] 입력 2016.12.19 00:18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논설위원


의아했다. 대통령 탄핵을 이끈 촛불 명예혁명의 또 다른 이슈였던 국정(國定) 역사 교과서의 현장 검토본에 대한 관심이 이 정도뿐이라니…. 지난달 28일 오픈한 국정교과서 공식 홈페이지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방문한 국민은 지금까지 7만 명, 열람 횟수는 14만 번이다. 방문자 한 명당 두 권을 본 셈이다. 전국의 교원이 40만 명, 중고생은 340만 명, 8차 촛불집회 때까지의 참가인원이 80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방문자가 많지 않은 편이다.

원인이 뭘까. 교육부는 전자책 형태로 교과서(중 1, 2 역사와 고교 한국사)를 공개하면서 의견 제출은 반드시 본인 신분 확인을 거치도록 했다. 그런데 국정 자체가 정당하지 않으니 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거나, 열람도 인증이 필요한 줄 알고 착각한 게 아닌가 싶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모처럼 공론의 장이 섰다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듯 토론회를 연다. 보수가 밀리는 형국이다. 진보는 시민단체와 교육감들이 똘똘 뭉쳐 국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물고 늘어진다. 2013년 뉴라이트가 만든 검정(檢定) 교학사 교과서 사태의 판박이다. 검정의 편향성이 잡혔고, 내용도 알차졌다는 보수의 주장은 울림이 적다. 건국절 논란을 비롯해 안창호 직책과 김홍도 사진 등 오류가 속출한다. 교육부의 비호 아래 우파 학자들끼리 가속 페달을 밟아 집필한 결과다.

명망 있는 학자들에게 물어보니 자업자득이라 했다. 익명을 전제로 들은 얘기는 이랬다. “우파가 결국 졌다. 국정 기득권에 취해 게으름 피우다 좌파의 집중포화를 맞은 격이다. 조선시대 왕도 사초를 건드릴 수 없었는데 역사의 시계를 아버지 시대로 돌리려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동조한 업보다. 우파는 그간 아랫목에만 있었다. 박정희 정권이 1974년 국정으로 바꾼 덕에 30여 년간 특권을 누렸다. 국사편찬위원회·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고전번역원·동북아역사재단 등을 장악했고, 국정에 자신들이 쓴 내용이 들어가니 속으로 즐기며 방관했다.”

정곡을 찌르는 진단 같았다. 반면 좌파 학자들은 어땠는가. 한데로 밀려난 동안 치열하게 연구하고 제자를 키우며 와신상담했다. 그러다가 기회를 잡았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에 고교 한국근현대사가 검정으로 전환되고,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중등 역사 교과서가 완전 검정 체제로 바뀔 때 집필진에 대거 참여했다. 온실의 우파들은 집필 원고료가 300만원에 불과해 외면했지만 좌파들은 적극적이었다.

우에서 좌로의 이동은 그리 시작됐는데 웬일인지 검정 발행 당시 보수와 교육부는 모두 침묵했다. 북한이 독자 자주노선을 모색해 강력한 통치 체제를 확립했다거나,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를 부각시켰는데도 말이다. 무책임한 것 아닌가. 예전에 국정을 집필했었다는 학자는 “검정을 뜯어보고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졌어야 했는데 방심했다”고 개탄했다.

국정교과서는 절차의 정당성은 물론 내용면에서도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당대 최고의 필진을 구성해 최상의 콘텐트를 만드는 데 소홀했다. 검토본 서문에는 검정에 없던 설명이 들어가 있다. “과거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게 역사가의 책무”라고 주장한 독일 역사가 레오폴트 랑케의 사실(史實)과 객관의 역사와,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한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카의 해석과 주관의 역사관이다. 교과서는 “역사 기록이 정확한 사료를 토대로 재구성되었는지, 역사가의 관점이 균형 있고 적절한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는 게 역사 공부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과연 그렇게 썼는가. 그렇지 않다는 게 여론의 평가다. 이를 외면하면 또 한 번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국정 파동을 모든 교과서 업그레이드의 뼈아픈 교훈으로 삼는 역사학계의 대승적 자성이 필요하다. 소모적 갈등과 국론 분열 시한은 딱 연말까지다. 언제까지 자기 허물은 덮고 남만 삿대질하는 ‘이단공단(以短攻短)’을 하려는가. 23일 의견수렴이 끝나면 이준식 교육부 장관이 결단해야 한다. 결론은 자명한데 자꾸 말을 바꾸니 ‘교꾸라지(교육+미꾸라지)’라는 말까지 나온다. 민심이 답 아닌가.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