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남자의 눈물, 멸시의 대상이 아닙니다

바람아님 2016. 12. 22. 23:23
한겨레 2016.12.22 14:53

남편의 눈물을 가끔 목격한 40대 주부 “계속 모른 척해야 할까요”

Q) 40대 초반의 여성입니다. 저보다 8살 많은 남편과 결혼해 그동안 별다른 나이 차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남편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가끔 볼 때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척하면 당황하고 운 적이 없다고 잡아떼기까지 합니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그냥 남자들이 중년이 되면 호르몬 변화로 그러는 건지, 무엇보다 제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판단이 안 되는군요. 계속 모른 척해야 할지, 아니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A) 눈물이 흔한 계절입니다. 요즘 검찰청 앞이나 국회 청문회에서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의 주역들이 눈물을 펑펑 흘리는 장면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목격합니다. 그렇게도 권위적이고 빈틈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온정에 하소연하고 눈물샘을 자극하려 합니다. 상처받아 위로받고 싶은 쪽은 이쪽인데, 오히려 사건을 저지르고 상처를 준 쪽에서 눈물로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있으니 의아할 따름입니다. 재판 경험이 많은 판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법정에서 흘리는 눈물이나 흐느낌은 후회나 억울함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 부분 연기라고 합니다. 그 어떤 배우보다 우는 연기를 잘한다고 합니다. 절박하니까요. 이런 경우는 ‘악어의 눈물’입니다.


반면에 한국 남자들은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못합니다. 화장실에서 오랫동안 볼일을 제대로 못 보면 신진대사에 이상이 오듯, 감정 분출을 애써 참다 보니 ‘감정 분출의 변비’에 걸려 있습니다. 마음과 정서적인 이상이 오기도 합니다. 슬픔이란 상황을 대하는 리액션도 취약합니다.


“남자는 말이야…” 이 한마디로 한국 남자들은 눈물과 울음을 멀리해야 한다고 배워왔습니다. 눈물은 나약함의 상징이었습니다. 때문에 너무도 오랫동안 감당하기 힘든 무게를 오직 두 어깨 위에 조용히 지탱해오면서도 눈물도 흘리지 못했던 남자들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걷어차이고 밀려나는 신세이면서도 위로받고 의지하고 싶지만 울지도 못한 채 변비에 걸린 사람처럼 불편한 표정으로 그렇게 서성거려야 했습니다. 대학입시에 실패할 때나 군대에서 불합리한 일이나 얼차려를 받아도, 간신히 들어간 직장에서 인간적인 수모를 받아도 꾹꾹 참아야 했습니다.


최근 어떤 송년회 자리에서 여성들에게 어떤 장면에서 남자의 눈물이 가장 멋있어 보이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던 답변은 한 젊은 여성이 던진 이런 답변이었습니다.

“제가 그만 만나자고 했을 때, 그때 눈물 흘리는 남자의 눈물, 그때가 가장 멋있어 보이던데요? 하하하!”

그만큼 남자의 눈물은 희소성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남자들은 남자다움이라는 허풍 속에 살지만 나이가 들고 중년이 되면서 점차 감정의 헤픔 속으로 바뀌어갑니다. 눈물이 헤퍼집니다.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만 그런 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다가도 갑자기 눈물샘이 툭 터집니다. 망가진 수도꼭지처럼 주책없이 줄줄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직장을 잃었거나 자식의 방황을 바라보는 자신의 무기력함이 한심해서, 혹은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에서, 아니면 그저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이때 옆에서 불쑥 던진 한마디에 당황하는 존재 또한 한국의 가장들입니다.


“자기, 울었어?”

이 한마디를 듣지 않으려고 영화도 혼자 보러 가거나,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다 올라가고 음악이 끝나 조명이 켜질 때까지 남자들은 자리를 지킵니다. 흘린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는 겁니다. 노래방에 혼자 가서 익명성에 숨어 엉엉 우는 남자들도 가끔 있습니다. 중년이 되고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남자들의 몸에서 에스트로겐이라는 여성호르몬이 늘어나는 데 따른 현상으로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1780년 7월 초, 중국 사신을 따라나섰다가 툭 터진 요동 벌판을 바라보다 통곡하며 울음보를 터뜨린 연암 박지원의 당시 나이는 44살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칠정(七情)론과 울음의 의미를 말한 장면입니다. 반드시 슬퍼서만 우는 게 아니고, 사랑이 극에 달하거나 즐거움이 극에 이르러도 울음이 터져나온다고 말했습니다. 좁은 한반도에서 살다가 시야가 툭 터진 곳을 만난 조선 중년 남자의 울음이었습니다.


미국의 부부 관계 전문가에 따르면, 건강한 그리고 바람직한 부부 관계란 상대에게 눈물을 보여줄 수 있는 사이라고 합니다. 위로받고 의지하고 싶은 감정은 남자라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꾹 참고 있을 뿐이지요. 자녀가 결혼할 때 엄마보다 더 슬프게 우는 아빠를 우리가 때때로 목격하는 것도 아마 그런 연유일 겁니다.


고대 로마 시대 시인 호라티우스는 ‘만약 상대가 울기를 원한다면 네가 먼저 울어라’(Se vis me flere)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문학과 예술, 웅변에서 감정이입의 원리를 설명한 것이지만, 이는 부부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싶습니다. 배우자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기를 원한다면 그런 분위기를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의 가장들은 무한경쟁에 시달리느라 감정 표현의 백치들인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필요하다면 세상에서 가장 슬픔 음악이라는 오펜바흐의 ‘재클린의 눈물’이라는 첼로 곡도 들으며 분위기를 만들어도 좋을 겁니다.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쓰는 눈물은 물론 나쁘고, 헤퍼도 곤란하겠지만 남자의 눈물은 경멸과 무시의 대상은 결코 아닙니다. 남자가 울 때는 정말 울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내 남자가 실컷 울 수 있도록 그런 분위기를 한번 만들어줘 보세요. 더 돈독한 부부, 더 애정이 깊어지는 부부가 될 겁니다.


글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 iMBC대표이사·MBC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