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살며 생각하며>끌어안고 울 玉을 가졌는가

바람아님 2016. 12. 23. 23:37
문화일보 2016.12.23 12:20

방민호 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최근에는 소설의 해설을 가급적 쓰지 않으려 했다. 그래도 불가피하게 꼭 써야 할 때가 있다. 마음 편치 않은 가운데 그래도 소설 원고를 들고 다녀야 한다. 여기에 작품까지 좋지 않으면 해설을 맡은 게 후회마저 된다. 최옥정 작가의 ‘매창’은 그렇지 않은 경우였다.

매창(梅窓, 1573~1610)은 조선 중기를 살다간 기녀 시인으로, 37년이라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시조와 한시를 쓴 여성이었다. 이 여성을 그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텐데, 예를 들어 기생으로서의 사랑을 중심으로 리얼한 묘사에 집중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매창’은 그렇지 않았다. 무엇보다 작가는 매창의 외면이 아닌 내적 세계를 그렸고, 육체와 관능 대신에 마음 세계를, 정신적 가치 추구의 세계를 그렸다. 그리하여 작품에 유희경이라는 천민 출신 시인 및 허균이라는 희대의 문제적 인물과의 사랑, 그리고 교감이 드러나면서도, 그것은 요란하거나 어지럽지 않고 아름다우며 사유의 흐름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기꺼이 글을 준비하면서도 매창이라는 여인 자체에 관심이 가고, 그가 남긴 시편들을 새롭게 음미하고 싶은 욕심이 났다.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으로 시작되는 시조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가 쓴 수백 편 한시 중에 후세의 남성들이 그를 기려 책으로 엮었다는 ‘매창집’의 시편들도 나도 한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대학원생 시절부터 허경진 선생이 번역 한시집의 애독자였다. 허난설헌이며, 이달, 백광홍, 최경창 삼당 시인의 시들을 모두 그렇게 접했다. 삼당 시인들은 당풍을 따르는 시인들이라 해서 그런 별명이 지어졌다고 했다. 오래되어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당풍은 송풍과 달리 낭만적이고 세속 도피적이라 한 것으로 기억된다.

이번에도 나는 그가 번역한 매창 시집을 찾았고, 매창의 시 한 편 한 편을 읽으며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사랑과 아픔을 정곡을 찔러 토로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피어린 시들을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던 중 거기서 가슴 아픈 시 한 편을 발견했다.


‘세상 사람들은 피리를 좋아하지만 나는 거문고를 타네/

세상 길 가기 어려움을 오늘에야 비로소 알겠노라/

발 잘려 세 번이나 부끄러움 당하고도 임자를 만나지 못해/

아직도 옥(玉)덩이를 붙안고 형산에서 우노라’

이 시는 예술가 매창의 마음 세계를 너무나 잘 보여주었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매창은 거문고의 명인이었으며, 안타깝게 세상을 일찍 떠날 때도 거문고와 함께 묻어 달라 했다 한다.


그런 그의 시에는 남들과 다른 예술의 길을 가야 했던 매창의 고뇌가 잘 드러난다. 남들은 피리를 좋아하는데 자신은 거문고를 탄다? 이것은 그가 시류나 유행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나타낸다. 그는 기생이었다 해도 결코 만만한 여성이 아니었다. 술 취한 손님이 손목을 함부로 쥐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아무렇게나 택하지도 않았다.


이 시의 후반부 두 행에서 매창은 자신의 예술혼이 겪는 고통을 중국의 고사에 실어 통절하게 노래했다. 허경진 선생이 번역 밑에 소개한 주석에 따르면, 옛날 중국 초나라에 변화(卞和)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형산(荊山)에 갔다가 옥덩이를 주워 임금께 바치니 임금은 감정하는 사람에게 진품인지를 물었다. 감정사가 한갓 돌에 지나지 않는다 하자 왕은 화가 나 변화의 왼쪽 발을 잘라버렸다. 세월이 흘러 왕이 바뀌자 변화는 또 옥덩이를 바쳤고, 똑같이 감정을 시킨 새 왕은 그의 오른쪽 다리마저 잘랐다.

다시 세월이 흘렀다. 왕이 또 바뀌자, 변화는 옥덩이를 끌어안고 초산 아래서 사흘 밤낮을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했다. 왕이 사람을 시켜 자초지종을 듣고 옥 다듬는 이를 불러 그 옥덩이를 귀한 옥으로 얻었다.


매창의 시를 보면, 그는 변화와도 다르게 세 번 모두 부끄러움을 당하고도 아직도 고행의 산에서 옥덩이를 끌어안고 울고 있다. 변화가 겪은 두 번의 참담함을 넘어 세 번까지 부끄러움을 당하고도 자기의 옥을 끌어안고 울고 있다는 이 시는 매창이 얼마나 괴로운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이 시를 오래, 가만히 보았다. 조선 중기, 그가 살던 시대에는 임진왜란이 가로질렀다. 그의 사랑 유희경은 천민 출신으로, 난세를 만나 공을 세워 면천을 하려 했다. 설움 많은 서자 시인에게 글을 배우며 성장한 허균은 세상을 바꾸려는 뜻을 품고도 갈지자 행보를 했다.


매창은 남쪽 ‘변방’ 전북 부안에서 남자들의 세계를 ‘멀리’ 건너다보며 자신의 길을 갔다. 부안에만 머물러 살면서 그는 어떻게 담담하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는 거문고와 시를 벗하며 세속적인 길에 휩쓸리지 않는 삶을 상상할 줄 알았고, 자신의 상상력이 가리키는 길을 지킬 줄도 알았다.


세상에는 지극한 노력을 기울여 귀한 옥덩이를 빚어 놓은 사람이 많은 것을, 그러나 세상은 이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 문학작품만이 아니라, 깊은 경륜과 실력을 기른 사람도, 귀한 진실을 간직한 사람도 버림받기 일쑤다.

울어라, 매창이여.

서러움이 얼음 녹듯 풀릴 때까지.

문득 생각했다. 나는 과연 매창이 끌어안고 울던 옥덩이를 가졌는가. 그 귀한 옥덩이를 빚어낼 시간과 정성의 시간을 보냈는가.

올 한 해,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는데 벌써 세밑이다. 눈 크게 뜨고 나를 정시하고 싶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