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7-01-04 03:00:00
나는 아직 세간을 나 본 적은 없지만 이 작은 작업실을 얻게 되었을 때 꼭 그런 기분이 들었다. 처음 장만한 세간들은 책상과 의자. 그러곤 벽에 못을 치고 가느다란 괘종이 달린 시계 하나를 걸었다. 그래도 무엇인가 부족한 것 같아 테이블 위에 장만해 놓은 게 알람 기능이 있는 은색 탁상시계.
깨끗해진 책상 앞에 앉았다. 새 탁상달력을 놓고 나니 비로소 2017년이라는 게 실감 났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것일까 하는 진부한 말은 하지 않고 싶은데 그러기가 참 어렵다. 그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옛날 옛날에 시간을 피하는 데 자신이 가진 시간들을 다 쏟아부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구의 중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시간이 더디 흘러간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젊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은 산 위로, 더 높은 곳으로 집을 옮겼다. 그 높이가 지위의 상징이 되기도 했단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 ‘몇 초 빨리 늙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다행히 자신들이 왜 높은 데만 고집하고 있는지, 거기서 더 좋은 게 뭐가 있는지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 다시 평지에서 산책을 하고 미소 짓게 되었다. 그리고 차갑고 공기도 희박한 산꼭대기에 계속 남아 있던 사람들은 제대로 나이가 들기도 전에 앙상하게 늙어갔다는 이야기.
과학자이자 작가인 앨런 라이트맨이 과학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시간의 유형에 관해 쓴 짧은 소설들 중 한 편이다. 그 책 ‘아인슈타인의 꿈’은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시간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시계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 이야기로 새버렸다. 가차 없이 또 한 해가 시작되었기 때문인가 보다. 그동안 어떤 시간을 살았나. 게으른 천성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매우 느리게라도 ‘오늘’에 성실하고 싶다. 작업실을 얻고 알맞은 자리에 시계들을 가져다 놓을 때의 첫 마음으로. 지금도 똑딱똑딱, 저 시간의 둥근 본질은 내일로 흐르는 데 있을 것이다. 아무려나 내가 알기로 분과 초가 생긴 것은 시계가 발명되고 난 후라고 한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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