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文化/性 ·夫婦이야기

[세상 속으로] 늙어서 무슨 성교육? 얼굴에 붉은꽃 “성생활 땐 노화 방지” 설명에 웃음꽃

바람아님 2017. 6. 18. 13:16
[중앙일보] 입력 2017.06.17 01:00

성교육 받는 어르신들
경기도는 2013년부터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성교육사의 율동을 따라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경기도는 2013년부터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성교육사의 율동을 따라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나이가 들어도 성적 욕구는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성욕은) 오히려 건강하다는 증거예요. 그런데 성관계를 하는 것만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아요.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안아주고,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사랑의 표현이지요.”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별사랑마을 2단지 아파트 경로당. 염복순(65·여) 성교육사의 말이 끝나자 삼삼오오 모인 30여 명의 어르신의 얼굴에 ‘붉은 꽃’이 피어났다. 쑥스러운 듯 헛웃음 소리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PPT 스크린에 ‘성생활의 이점(노년기)’이란 제목이 떴을 땐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이가 들어도 성생활을 유지하면 면역력이 향상되고 스트레스도 줄어요. 통증 완화 효과도 있고. 남자들은 전립선질환을 예방할 수 있어요. 노화 방지와 수명 연장에도 도움을 준대요. 자신감도 생기고, 혈액순환에도 좋아요.”
 
염 성교육사의 설명에 누군가 “그럼 성관계가 만병통치약인 거냐”라고 묻자 폭소가 터져 나왔다.
 
강신숙(77) 할머니는 “처음엔 ‘다 늙어서 무슨 성교육인가’ 싶었는데 새로운 정보(?)를 많이 알려주니까 진작 받았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날 진행된 ‘노년의 아름다운 성(性) 꽃을 피우다’ 수업은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 수업은 60대 이상 어르신들에게 성생활을 장려하고 건전한 성문화를 알리는 이른바 ‘노인 성교육’ 차원에서 진행됐다. 노년기의 성변화와 성 건강, 남녀의 의사소통 방법 등을 알려준다.
 
남자아이에게 “고추를 따 먹는다”는 농담을 하거나 “예쁘다”고 입을 맞추고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소개한다. 상대방이 “싫다”고 거부하는 관계는 성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말해준다. 처음엔 민망해하며 얼굴을 붉히던 어르신들도 나중엔 성폭력의 기준이나 건강하게 성관계를 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질문하며 수업에 집중했다.
 
이재복(71) 할아버지는 “호텔에 같이 들어가도 여성이 거부하면 멈춰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젊었을 때랑 지금의 성범죄 기준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성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나 성 보조기구 등 좀 더 구체적인 설명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경기도는 2013년부터 노인 성 인식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노인복지관이나 노인대학·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노인 인구가 계속 늘고 있어서다. 올해 1월 말 기준 경기도 인구는 1272만8620명. 이 중에 65세 이상 노인은 138만2581명으로 전체 인구의 10.8%에 이른다. 2040년에는 경기도민의 28.5%가 노인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의학이 발달되고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활동적인 삶을 사는 어르신들도 늘었다. 동시에 성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12년 노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노인의 성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노인 10명 중 6명이 활발하게 성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35.4%는 성 매수 경험도 있었다. 발기부전 치료제 등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도 50.8%나 됐다.
 
하지만 노인의 성을 터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박카스 아줌마’로 대표되는 은밀한 성매수로 인한 성병 감염이 대표적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0년 118명이던 65세 이상 성병 감염자 수는 지난해 774명으로 555.9%나 증가했다.
 
노인 성범죄도 매년 늘고 있다. 강간이나 성추행·음란행위 등 성범죄로 경찰에 적발된 65세 이상 고령자는 2012년 702명에서 2013년 930명, 2014년 1086명, 2015년 1276명, 지난해 1445명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건전한 노인 성문화 확립에 대한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경기도가 나섰다. 지난 4년간 1156회에 걸쳐 3만8703명에게 성교육을 진행했다.
 
어르신들에게 전문적인 성 지식을 알리기 위해 성교육사와 성상담사도 육성해 현재 183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어르신들에게 성교육을 하는 것은 물론 원하는 노인들에게 성 상담도 해준다.
 
이은순 의정부시 신곡노인종합복지관 부장은 “남자 어르신들의 경우 ‘발기가 잘 안 된다’ ‘아내가 관계를 거부한다’는 등의 고민을 주로 토로하고 여성분들은 ‘욕구가 안 생긴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경기도는 매년 10월 ‘노인 성 문화 축제’를 열고 특강과 축하공연 등을 진행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노인 성 프로그램이 많이 생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주의적인 문화와 성에 대한 무지로 노년에 성 마찰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올바른 성 정보를 제공해 어르신들 사이에 건전한 성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유면 경기도 복지여성실장은 “노년층의 성문제는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세심하게 다가가야 하는 사안”이라며 “앞으로도 성범죄 근절과 함께 노인들이 건강한 성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S BOX] 싱글 어르신들 이어주는 황혼 미팅 인기
“미팅 언제 해요?”
 
요즘 경기도 연천군 노인복지관에는 어르신들의 이런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 여기서 말하는 ‘미팅’은 연천군이 2014년부터 운영하는 ‘두번째 프러포즈’ 프로그램.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이성친구를 소개해 준다.
 
매년 3월 시작하는 사업이 예산 문제 등으로 이달 중순으로 미뤄지자 어르신들이 독촉 전화에 나선 것이다. 참여 인원은 당초 30명이었는데 남녀 각 10명씩 20명으로 줄었다.
 
홍윤숙 연천군노인복지관 과장은 “할머니들은 대부분 65~70세인데 할아버지들은 75~80세라 참가자의 나이를 65~80세로 제한했는데 일부 어르신들이 ‘우리도 참여하게 해달라’고 항의해 참가 인원을 줄이는 대신 나이대를 85세로 확대했다”고 말했다.
 
연천군은 전체 인구(4만5900명)의 24%(1만1000명)가 노인이다. 이 중에 절반 이상이 홀로 산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노인 자살률도 매년 경기도에서 1~2위를 다툰다.
 
이런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팅을 주선한 것이다. 어르신들은 “말동무가 생겨서 좋다”며 만족감을 표시한다고 한다.
 
배승룡 경기도노인복지관협회 회장은 “노인 성 문제의 부작용을 줄이려면 무조건 숨기지 말고 차라리 양성화해 안전하고 건전한 만남의 장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원·남양주=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