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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불능’이라던 달리에게 친딸 있었나 … 3500억원 유산 때문에 관뚜껑 열렸다

바람아님 2017. 7. 23. 09:01
[중앙일보] 입력 2017.07.22 01:40

1942년 살바도르 달리의 생전 모습. [AP=연합뉴스]

1942년 살바도르 달리의 생전 모습. [AP=연합뉴스]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무덤이 사망 28년 만에 파헤쳐졌다.
 
스페인 카탈루냐 고등법원 관계자는 20일(현지시간) 법의학 전문가들이 달리에 대해 제기된 친자 확인 소송의 검증용 DNA 샘플을 얻기 위해 달리의 관을 열었다고 밝혔다.
 
1989년 84세의 나이로 별세한 달리의 시신은 그의 고향인 스페인 북부 피게레스의 한 극장 지하실에 묻혔다. 이 극장은 재건축돼 현재 ‘달리 시어터 뮤지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지역 관광 명소가 됐다.
 
AP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뮤지엄에서 1.5t가량의 석판이 제거된 뒤 달리의 유골과 유품이 있는 지하실 문이 개방됐다. 이후 30여 분 만에 관 뚜껑이 열렸다. 관을 열어둔 1시간20분 동안 판사와 법의학 전문가 3명, 조수 1명 등이 DNA 샘플을 채취했다. 이번 발굴은 달리의 친딸이라고 주장해온 필라 아벨 마르티네스(61)가 소송을 낸 데 따른 것이다. 마드리드 법원은 지난달 26일 그와 달리의 생물학적 친족 관계를 확인할 단서가 남아 있지 않다며 시신에서 DNA 채취가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자신이 달리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의 필라 아벨 마르티네스. [A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자신이 달리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의 필라 아벨 마르티네스. [AP=연합뉴스]

 
56년 피게레스에서 태어난 마르티네스는 2007년부터 자신이 달리의 친딸이라고 주장해왔다. 자신의 어머니가 50년대 초반 스페인 포트리가트 지방에 체류할 때 달리와 인연을 맺었다는 것이다. 몇 년 뒤 돌아온 모친은 다른 남성과 결혼한 뒤 마르티네스를 낳았다.
 
그는 친할머니로부터 자신이 달리의 친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할머니가 “너는 내 아들의 딸이 아니라 위대한 화가의 딸이다. 그래도 똑같이 사랑한다. 기인이었던 네 친아빠를 닮아 가끔 이상하게 행동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마르티네스는 AP통신에 “정의가 구현돼 매우 놀랍고 행복하다”며 “어머니의 기억을 존중하려는 소망이 이번 소송의 동기가 됐고 나는 알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BBC는 달리의 전기를 쓴 작가가 “달리는 늘 ‘난 성적 불능이야, 위대한 화가가 되려면 성적 불능이어야 해~’라고 말하곤 했다. 그가 아기를 만든다는 건 결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며 마르티네스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흘러내릴 듯한 시계가 담긴 그림 ‘기억의 지속’ 등 작품으로 유명한 달리는 20세기 가장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다. 1920년대 후반에는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콧수염을 다듬는 데 상당한 시간을 쏟는 등 기행도 이목을 끌었다.
 
 
20일(현지시간) 스페인 북부 피게레스의 ‘달리 시어터 뮤지엄’에서 인부들이 달리의 DNA 채취를 위해 관을 옮기는 모습. [AP=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스페인 북부 피게레스의 ‘달리 시어터 뮤지엄’에서 인부들이 달리의 DNA 채취를 위해 관을 옮기는 모습. [AP=연합뉴스]


달리는 생전에 부인과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소송 결과에 따라선 스페인 정부에 넘어간 수억 달러 상당 유산의 소유권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달리는 부인이 별세하고 7년 뒤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남긴 작품들은 스페인 정부에 유산으로 남겨졌다. 현재 가치가 3억3000만 달러(3500억원 상당)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현지 언론 엘파이스 영문판은 “마르티네스가 초현실주의 천재의 딸로 인정받으면 자신의 성에 대한 권리와 재산에 대한 권리, 저작권 사용료를 받을 자격이 있다”며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새로운 재판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채취된 DNA 시료는 스페인 국립독성물법의학연구소로 보내져 마르티네스의 DNA와 비교분석 작업이 이뤄질 예정이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