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11.10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이상주의는 공허하고 위험
'균형 외교'라는 이상론은 국제정치 현실 앞에서 無力
아시아 지역 패권국인 중국… 한국 종속시키려 실력 행사
中 공세 억지하는 전략 짜야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한·중·일 외교 삼국지가 뜨겁다. 트럼프의 체재 시간을 두고 신경전을 벌일 정도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 건너뛰기' 우려를 불식시키고 '한반도 운전자론'의 동력을 살리기 위해 진력했다.
날씨 문제로 성사되진 못했지만 한·미 대통령의 비무장지대(DMZ) 공동 방문 시도는 그 자체로 상징성이
컸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호하면서도 절제된 국회 연설로 문재인 정부에 화답했다.
굳건한 한·미 동맹을 재확인한 이번 정상회담의 전술적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전술적 차원의 미세한 행보는 전략적 사고라는 큰 그림이 전제되어야 분명한 의미를 갖는다.
거시적 국가 대전략이 확고히 구축되어야 미시적 전술들의 적합성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이상주의에 기운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노선을 현실주의적 국가 대전략으로 바꿔야만 나라의 앞날이 기약된다.
아름답고 정의로운 이상주의는 호소력이 크다.
그러나 현실감을 결여한 이상론은 공허한 데다 때로 위험천만하기조차 하다. 외교·안보 영역이 특히 그렇다.
외교·안보에서 발을 헛디디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예컨대 DJ의 햇볕정책은 남북 공존공영과 한반도 평화 체제로 가는 거대한 이상주의적 비전이었지만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개방과 개혁을 소화할 수 없는 북한 수령 유일 체제의 현실을 경시한 것이다.
그 결과 햇볕정책은 남북관계의 비정한 현실 앞에 좌초하고 만다.
악화 일로인 북핵 위기가 증명하는 그대로다.
미국과 중국을 같이 중시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균형 외교'도 일견 설득력 있게 들린다.
"미국과의 외교를 중시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도 더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균형 있는 외교를 하고자 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균형 있는 외교'론이다. 대미·대중 관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뿐 아니라
동남아와 EU로 한국 외교의 지평을 최대한 넓히겠다는 외교·안보 노선이다.
균형이라는 말 자체가 정당성을 동반하는 규범 언어인 데다 원론적으로 지당하기 짝이 없는 이상론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포장한 아름다운 수사(修辭)는 국제정치적 현실주의 앞에 철저히 무력하다.
중국은 세계의 강대국이자 동아시아의 지역 패권국(Hegemon)이다.
여기서 지역 패권국이란 아시아에서 중국과 국력을 겨룰 수 있는 경쟁국이 부재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세계 최강대국이자 서반구의 지역 패권국인 미국의 존재감이 사라지면 아시아가 중국 영향권 아래 들어가게 된다.
아시아 전체가 중국 천하가 되는 것이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분쟁이 증명하듯 중국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여
미국을 중국 세력권 바깥으로 내모는 데 전력투구한다.
1인 지배체제를 굳힌 시진핑의 중국 국가 대전략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세계만방에 선포했다.
일본의 아베가 굴욕 외교의 조롱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에 기울고, 상대적으로 소원(疏遠)했던 인도가 미국에 추파를 던지며,
동남아 국가들이 일제히 미국에 접근하는 이유는 다 국가 대전략의 산물이다.
패권국 중국이 자국의 안보를 침해할 위험성에 대한 선제적 대응 조치다.
우리는 중국 코앞에 있는 데다 북한 핵의 최대 피해자임에도 냉혹한 국제정치의 교훈을 무시한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역사적 통찰조차 외면할 정도로 태평하다.
패권국 중국의 민낯을 살짝 보여준 사드 사태를 봉합하는 데만 급급했다. 그러나 사드 보복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중국이 커지는 것에 비례해 한국을 길들여 종속시키려는 중국의 실력 행사는 더 잦아지고 난폭해질 게 분명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중국에 선사한 '3불(不) 발언'(사드 추가 배치도, 한·미·일 군사동맹도,
미국 미사일 방어 체계(MD) 참여도 없다)은 현실주의적 국가 대전략을 경시한 문재인 정부의 단견(短見)을
전 세계에 폭로했다. 그 결과 한국의 국가 이익이 영구히 손상되었다.
국제정치적 패권국 중국은 역사·문화적 중화제국주의의 유전자까지 과시한다.
지금 우리가 결연히 대처하지 않으면 한반도의 대(對)중국 2000년 종속의 역사가 재현될 수 있다.
게다가 공산당 일당독재의 중국은 시민적 자유와 인권, 민주적 다원주의와 법치주의가 부재한 나라다.
미국에 대한 저자세 외교에 분노하는 한국 진보와 민족주의자들이 중국엔 고분고분한 것도 기이한 현상이다.
미국이나 중국에도 단호히 '아니요'라고 할 수 있어야 주권국가다.
특히 중국의 패권적 공세를 억제하는 국가 대전략 위에서만 한반도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지속된다.
현실주의적 국가 대전략 없이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자유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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