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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의 상인 정신이 대한민국을 설계했다

바람아님 2017. 11. 17. 10:11

(조선일보 2017.11.17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김시덕의 종횡무진 인문학]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한국 역사 연구의 태두였던 이기백은 1999년에 발표한 '족보와 현대사회'에서 선언한다.

조선시대에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던 노비의 후손이 사라지고,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양반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한평생 성실 근면하게

산 청소부나 경비원이, 가짜로 족보에 올라간 그 누군가보다 더욱 존경스러운 조상이라고.


평안도 군인 집안에서 태어난 이기백의 선조는 성실한 삶을 살아 집안을 일으켜 세웠음을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비록 삼남의 어떤 집안들 같은 족보는 없지만, 이기백의 조상이 바로 한반도의

진정한 근대인이었다. 이기백은 평안북도 정주에서 평민의 아들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존경받는 종교지도자 함석헌 역시, 평안도에서 상놈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함경도에서 노비로 태어나 러시아령 연해주에서 자수성가한 최재형은, 안중근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을 후원하다가 일본에 살해되었다.


구한말에서 식민지 시기에 눈부신 삶을 살고 존경할 만한 자취를 남긴 사람 중에는, 조선왕조에서 천시받던 평안도와

함경도 출신의 '상놈들'이 많다. 김건우는 '대한민국의 설계자들'(느티나무책방 刊)에서 이렇게 말한다.

주자학을 중심으로 놓으면 평안도는 조선시대에 뒤떨어진 변경지역이었지만, 주자학의 논리에 반대하는 것이 '진보'라면

이들 지역은 가장 선진적이었다고.


한반도가 분단되자 한반도 북쪽에서 남쪽으로 탈출한 사람들을 '삼팔따라지'라고 한다.

그들은 가난하고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자신의 실력만으로 살아남고자 목숨 걸고 싸웠다.

그 과정에서 서북청년단은 남한 사람들을 죽였고 장준하는 남한 사람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선우휘는 어떤가. 그는 조선일보의 대표적인 우파 기자였던 동시에, 남한 진보진영의 대부인 함석헌·백기완·리영희 등을

후원했다. 그들은 오늘날의 우파·좌파 구분을 뛰어넘은 한국판 제3의 길을 걸었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대한민국은 조선왕조로부터의 전통이 계승되어 탄생한 나라가 아니다.

그 전통에 반대함으로써 탄생한 폭발력으로 전무후무한 70여 년의 역사를 만들어 냈다.

안창호가 말한 신민(新民) 즉 새로운 국민들이 만들어낸 신생국가 한국이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정치적 근대화를 이룩한 배경에는,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근대화를 함께

이룩할 수 있다고 믿은 이들 이북 출신 '상놈들'이 있었다.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이들의 존재는

잊히고 있지만, 나는 21세기 한국이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선인(先人)들이 바로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 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
지은이: 김건우/ 느티나무책방/ 2017/ 293 p.
340.911-ㄱ649ㄷ/ [정독]인사자실(2동2층)/ [강서]2층

목차

서장 해방된 청년들,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는 누구인가│‘세대’의 문제│‘남쪽’을 선택한 사람들

1 학병세대가 서 있던 자리
새 국가 건설의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가│장준하와 김준엽, 일본군을 탈출하다│

광복군의 적통, 우익 민족주의의 적자

2 장준하, 우익 반공주의에서 통일 지상주의로
임시정부 청사 난입 사건│우익 반공 국가주의의 선봉에 서다│반공에서 통일 지상주의로 이동하다

3 서북 지역주의와 도산 안창호
차별과 착취의 땅 서북에서 새로운 국가상이 싹트다│서북파와 기호파의 갈등│개인의 정신 개조를 통한 사회 변혁

4 월남 지식인들, 《사상계》를 만들다
장준하와 서영훈, 《사상》을 만들다│《사상》의 폐간과 백낙준의 후원│서영훈, 장준하를 떠나 적십자사로

5 《사상계》 그룹, 근대화의 모델을 제시하다
《사상계》 그룹, 서북 출신에 편중되다│《사상계》가 꿈꾼 근대화│미국의 지원과 유도

6 제2공화국과 국토건설본부의 구상
《사상계》, 현실로 뛰어들다│경제개발계획과 국토건설본부│5·16 이후의 경제개발계획은 독자적인 것인가

7 《사상계》 그룹의 와해와 대학의 변화
사상계 그룹, 미국과 군정의 중재를 시도하다│《사상계》 그룹의 와해│대학에 뿌리내린 국가의 감독과 통제

8 선우휘, 반공 국가주의와 지역주의 사이에서
작가이자 기자이자 군인│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은 지역주의자│“나는 형이고 너는 동생이다”

9 정권 참여 지식인들과 정치 참여의 논리
“무조건 반대냐, 건설적 협력이냐”│임방현의 근대화 인텔리겐차론│이데올로그가 된 지식인들

10 김교신과 무교회주의 기독교
일본 기독교의 지성, 우치무라 간조│《성서조선》과 무교회주의 신앙│노동자들의 아버지가 되다

11 류달영의 재건국민운동본부와 덴마크 모델
최용신 전기 집필과 우치무라 간조의 ‘덴마크 이야기’│‘동양의 덴마크’를 꿈꾸다│

재건국민운동본부 해체, 그 이후

12 오산학교의 무교회주의자와 지역공동체
함석헌, 오산학교에 무교회주의 신앙의 씨를 뿌리다│오산의 학병세대, 역사학자 이기백│

이찬갑, 주옥로의 ‘위대한 평민’│공동체의 기반, ‘조합주의’

13 국가주의 철학에 맞선 류영모와 함석헌
류영모.함석헌의 독특한 계보│김범부와 박종홍의 국가주의 철학│노장 사상에 입각한 국민 윤리 비판

14 한신(韓神)을 만든 김재준과 제자들
함경도와 북간도에 뿌리 내린 진보적 기독교│김재준, 기독교적 건국이념을 제시하다│

용정 은진중학교의 제자들, 강원용, 안병무, 문익환

15 통합의 중재자 강원용
세계교회협의회의 거물이 되다│크리스찬아카데미의 ‘중간 집단 교육’│해방기부터 비롯된 중도 지향의 삶

16 가톨릭의 학병세대, 김수환과 지학순
가톨릭의 혁명, 제2차 바티칸 공의회│추기경 김수환, 한국 가톨릭을 바꾸다│

지학순, 원주를 한국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만들다

17 마지막 지사형 언론인 천관우
자유 언론의 전통을 세우다│천재적 역사학자의 면모│쓸쓸한 말년의 삶

18 지식인들, 민족주의로 이동하다
국학계의 한국사 시대 구분 논의│‘한국적인 것’을 찾아서│민족주의, 아군과 적의 경계를 흩트리다

19 조지훈 대 김수영, 한국 인문 정신의 두 원형
조선 선비, 전통적 인문주의자 조지훈│보수주의자의 현실 정치 비판│급진적 자유주의자 김수영│

한국 인문 정신의 두 원형

20 한국 우익의 기원
한국의 정통 우익, 김준엽│친일로부터 자유로운, 그러나 제국이 키운 세대│

새 나라의 설계, 일본에서 미국으로│종교인들, 이념의 숨통을 틔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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