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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 (36) 마티스의 ‘원무’

바람아님 2017. 11. 13. 11:41

(경향신문 2011. 09. 07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 (36) 마티스의 ‘원무’


ㆍ텅 빈 충만의 춤

 
무엇을 할 때 자유를 느끼십니까? 무엇을 할 때 가슴이 뻥 뚫리고 호흡이 편안하신가요?

마티스의 ‘원무’는 춤을 출 때 자유로운 여인들을 그렸습니다.

한번 보고 나면 자꾸자꾸 떠오르고 자꾸자꾸 보고 싶은 연인 같은 그림입니다. 


그림은 참 단순합니다. 하늘과 땅과 춤추는 5명의 여인들! 색도 단순합니다. 푸른 하늘, 녹색의 대지,

신명 속에 있는 땅 색의 여인들!(앙리 마티스 ‘춤’. 1910년, 캔버스에 유채, 260x391cm, 에르미타주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왜 중세철학자들이 신적인 것일수록 단순하다고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직관이 뛰어나지 않으면 단순미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6) 마티스의 ‘원무’마티스의 스승은 모로입니다. 오르페우스를,

살로메와 요한을 그렸던 신비한 작가 모로,

기억하시지요? 무명(無名)의 마티스를 알아본

모로는 마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지요?

“마티스, 회화를 단순화시키는 작업을 해봐.

넌 그 일을 위해 태어났어.”

그 말은 마티스에게 눈이기도 하고 화두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은 ‘나’를,

심지어 ‘나’조차 확신하고 있지 못한 나를 알아봐

준 스승의 눈이 내 눈을 뜨게 한 거지요.

그렇게 자신감의 눈을 뜨는 건 중요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얻은

것이니까요. 그러나 실타래를 얻었다고

미궁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무르익어야 합니다.


마티스의 시간은 언제 무르익었을까요? 자신을 알아주던 모로가 세상을 떠나자 마티스는 세상에 혼자라는 느낌이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세잔의 그림을 보았을 때, 그때 마티스는 비로소 스승 모로가 던져놓은 말의 의미를 알아채고 환호합니다.

‘아, 그래. 군더더기는 필요 없어! 색이 넘칠 필요가 없어. 덕지덕지 장식을 입히지 말고, 직관이 명하는 대로 단순하게

그리면 되는 거야. 본질적인 것만!’ 세잔의 그림 곁에서 길을 찾은 거였습니다.

그가 평생 세잔의 그림 목욕하는 세 여인’ 끼고 살았다는 건 유명합니다. 


사실 마티스는 그림을 할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법률을 하고 있었지요.

그림이랄 수 있는 것을 본격적으로 그려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운명이 있나 보지요?

때로 운명은 고통을 통해서라도 자신을 보게 합니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법률가의 길을 걸으려는 마티스에게 맹장염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땐 맹장염도 치명적인 병이었나 봅니다. 1년 동안이나 요양을 해야 했으니. 20대에 1년은 얼마나 긴 시간입니까?

어머니가 길고도 무료한 요양 생활에 도움이 되라고 그림 도구를 사다 준 것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심심풀이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지요. 때로는 그런 우연들이 삶을 이끌어 가는데,

생각해보면 우연까지도 운명입니다. 아니, 어쩌면 우연이야말로 운명이 가장 좋아하는 숨바꼭질 놀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표면적으로 생각해보면 모로와 세잔은 마티스의 생에 끼어든 우연이었지요?

그렇지만 그들이야말로 마티스의 운명이고 축복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삶은 마티스에게서의 ‘스승 모로’ 같은,

친숙하지만 해독하기 힘든 암호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저마다의 운명으로 이끌어가는 기적인지도 모릅니다.


한번 보고 나면 가슴 깊이 새겨지는 저 그림은 어쩌면 우리 영혼 속에 새겨진 것을 비추는 거울이 아닐까요?

5명의 여인이 춤을 춥니다. 표정을 알 수 있는 것은 한 여인뿐이나 한 여인은 모든 여인이기도 하지요.

그들은 모두 일체감 속에서 무아지경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없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춤뿐입니다.

텅 빈 충만의 춤! 세상은 춤을 출 수 있도록 텅 비어 있지만, 춤을 출 수 있도록 움직임으로 꽉 차 있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춤을 춥니다.

하늘이, 대지가, 햇살이, 바람이,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들이! 



  마티스가 애장(愛藏)하던

세잔의 '목욕하는 세 여인'


여인들이 목욕하는 주제는 세잔이 즐겨 택한

것이다. '주제에서 모티브로, 상상되는 것에서

보여지는 것으로'라는 근대 회화의 움직임에서는
어긋나는 것이기는 하나 색채상으로는 역시

인상파 그것이며, 이 작품에 있어서도 청록의 짙은 색채가 매우 규칙적으로 삐딱하게 놓여져 있다.
전경인 지면이나, 풀, 수면은 터치가 옆으로

놓여져 있으며, 멀리 약간 보이는 푸른 하늘은

터치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좌우로 선 나무들이 피라밋 형으로 화면의 틀로서 작용한다. 그 중 두 여인은 물 밖에서 앉아 있기도 하고 선 채로 타올을 쥐고 있기도 한다.
중앙의 한 여인은 무릎까지 물에 잠긴 채 서있다. 세 사람의 머리는 각양각색으로서 인체와 풍경의 조화가 매우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경향신문(2011.1.02 ~ 2011.12.21)


< 명화를 철학적 시선으로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


(1) 반 에이크 ‘수태고지(경향신문 2011.01.02) 

(2) 클림트의 ‘다나에(2011.01.09)

(3) 벨라스케스 '거울을 보는 아프로디테'(2011.01.16)

(4) 샤갈의 ‘거울’(1915)(011.01.23)

(5) 안토니오 카노바의 '에로스와 푸시케'(2011.01.30)


(6) 루벤스 '잠든 에로스를 지켜보는 푸시케'(2011.02.06 20)

(7)수잔 발라동 '아담과 이브'(2011.02.13)

(8) 렘브란트 ‘탕자의 귀환'(2011.02.20)

(9) 루벤스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2011.02.27)

(10) 엘리후 베더의 ‘스핑크스의 질문자'(2011.03.06)


(11) 폴 고갱 ‘신의 아이'(2011. 03. 13)

(12) 고흐 ‘슬픔'(2011. 03. 20)

(13)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2011. 03. 27)

(14) 밀레의 만종(2011. 04. 03)

(15) 조지 클라우센 '들판의 작은 꽃'(2011. 04. 10)


(16) 렘브란트, 십자가에서 내려짐(2011. 04. 17)

(17) 레옹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2011. 04. 24)

(18)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2011. 05. 01)

(19)조르주 드 라 투르의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2011. 05. 08)

(20) 들라크루아의 ‘격노한 메데이아'(2011. 05. 15)


(21) 워터하우스의 아리아드네(2011. 05. 22)

(22) 티치아노의 ‘유디트’(2011. 05. 29 )

(23)이 시대의 오르페우스, 임재범(2011. 06. 05)

(24) 모로의 ‘환영’(2011. 06. 12)

(25)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2011. 06. 19)


(26) 클로드 모네 ‘임종을 맞는 카미유’(2011. 06. 26)

(28) 조르주 로슈그로스의 ‘꽃밭의 기사’(2011. 07. 03)

(29) 루벤스의 ‘삼손과 델릴라’(2011. 07. 10)

(30) 고흐의 ‘해바라기’(2011. 07. 17 18:10)


(31) 모네의 수련 연못 (2011. 07. 24)

(32) 르누아르의 ‘빨래하는 여인들’ (2011. 07. 31)

(34)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2011. 08. 10)

(35) 오처드슨의 ‘아기도련님’  (2011. 08. 17 )


(36) 렘브란트 ‘다윗과 요나단의 이별’  (2011. 08. 24 )

(36) 마티스의 ‘원무’ (2011. 09. 07)


(38) 앙리루소 ‘뱀을 부리는 여자’(2011. 09. 14 21:1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142117305&code=990000&s_code=ao080


(39) 앙리 루소 ‘잠든 집시여인(2011. 09. 2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212109455&code=990000&s_code=ao080


(40) 세잔의 ‘생 빅투아르 산'(2011. 09. 2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281932525&code=990000&s_code=ao080


(41) 폴 세잔 ‘수욕도’(2011. 10. 0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0051853345


(42) 번 존스 ‘코페투아왕과 거지소녀’(2011. 10. 1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0122100265


(43) 쿠르베 ‘상처 입은 남자’(2011. 10. 1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0191946195


(44)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2011. 10. 2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0262142355


(45) 밀레의 ‘접붙이는 사람’(2011. 11. 0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1021842215


(46) 뭉크의 ‘절규’(2011. 11. 09 21:0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1092103325


(47) 조지 프레더릭 왓츠의 ‘희망’(2011. 11. 1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1162051265


(48) 샤갈의 ‘떨기나무 앞의 모세’(2011. 11. 3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1302103105


(49) 고갱의 ‘과일을 들고 있는 여인’(2011. 12. 0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2072102435


(50) 브뤼겔 ‘베들레헴의 인구조사'(2011.12.2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2212057135&code=9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