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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정보 따로 수사 따로? 간첩 다 도망가겠네

바람아님 2017. 12. 10. 07:59

(조선일보 2017.12.09 남정욱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남정욱의 명랑笑說]


정부가 北이 쏜 ICBM을 CBM'급'이라고 하던데
도대체 뭐가 다른 건지


국정원은 '수사' 손 떼고 정보만 '수집' 하겠다고…
같은 걸 두 번 한다는 말?


[남정욱의 명랑笑說]연말 술자리가 뒤숭숭하다.

웃다가 침통했다가 무슨 조울증 환자 보는 것 같다.

어이없어 웃고 어이없어 말이 안 나온다.

넷이 앉아 비우고 채우고 건네고 술잔이 도는데 작년에 어머니를 여읜 석구가

중얼거린다. "우리 엄니 춥겠다." 옆에 앉아 있던 덕구가 한심하다는 듯 받는다.

"바보, 땅속이 더 따뜻해." 다들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데 이번에는

덕구의 푸념이다. 요새 다니는 치과 맞은편이 정신과인데 거기를 한번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자꾸만 든단다. 이 정부와 자기를 보면 둘 중 하나는

어디 외국에서 30년쯤 나가 살다 들어온 것 같아 하시는 말씀을 도무지

못 알아듣겠다는 하소연이다. 난독증이 와서 이제 신문도 안 본단다.

하긴 소생도 비슷하다. 대북 제재를 한다더니 난데없이 말미에 대북 지원 사업은

계속해 나가겠다고 하는가 하면 분명 ICBM을 쏘았는데 ICBM '급'이라고 한다.

대체 ICBM과 ICBM '급'은 뭐가 어떻게 다른 걸까.


화제는 국정원 수사권 폐지로 넘어간다.

정보 수집과 수사를 분리한다는데 이 역시 듣는 사람에게 난청증 의심 증상을 유발한다.

생각이 온통 야한 쪽으로만 뻗어있는 덕구가 나름 쉽게 설명한다.

"그건 남녀가 사랑에 빠질 때 밀당하는 사람 따로 있고 섹스하는 사람 따로 있다는 얘기야."

틀린 말 같지는 않은데 어디 가서 써먹기는 좀 곤란해 보인다. 내내 듣기만 하던 철구가 분통을 터뜨린다.

"그거 진즉에 했으면 나 안 잡혔어!" 철구는 골수 좌익 운동권 출신으로 이른바 '국보 빵잽이'다(철구를 처음 봤을 때

고정간첩인 줄 알았다). 1980년대 학번 중에 감옥 다녀온 인간이야 흔하고 널렸지만 거기도 '급'이 있다.

가두시위를 하다가 도로교통법으로 들어간 애들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들어간 애들은 국가보안법으로

들어간 애들 앞에서 바로 꼬리를 내린다. 한번은 철구에게 묻어 낯선 술자리에 따라간 적이 있는데 건배하면서 철구가 그랬다.

"잡범들은 빠지시고." 나중에 알고 보니 도교법과 집시법으로 들어갔던 애들을 잡범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운동권의 학벌주의와 별 차별은 알아줘야 한다).


간첩 사건의 증거는 회합 사진이나 공작금 수령 외에는 잡아내기 힘들다.

결국 회합이라는 죄명으로 잡아들여야 하는데 여기에 정보 수집과 수사 분리를 적용하면 황당한 상황이 발생한다.

완벽한 증거 없이 수사팀이 움직일 리가 없다. 게다가 증거라고 모아온 것도 자기들이 직접 하지 않은 이상 의심 가는 게

여럿이다. 혹시 기소를 했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기라도 하면 책임은 다 뒤집어쓰고 온갖 욕은 다 먹는다.

결국 절대 안 움직인다. 수사도 마찬가지다. 정보 수집이 끝나는 순간이 용의자가 북한으로 정보를 전송하는 순간이다.

이때 현장을 덮치는 대신 사무실로 들어와 보고서를 써야 한다.

눈앞에서 용의자는 웃으며 달아난다. 의욕이 생길 리 없다.

장담컨대 이 발상은 수사를 받아본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너 그때 안 잡혔으면 사람 안 됐다고 철구를 다독이며 계속 술잔을 비우는데, 이상하다.

빈 병은 느는데 오히려 취기는 달아난다.

비정상이 일상인 앨리스도 없는 이 이상한 나라에서는 이제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