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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의 영화 & 역사] 戰車… 남자가 매료되는, 남자를 닮은 무기

바람아님 2017. 12. 7. 09:45

(조선일보 2017.12.07 남정욱 작가)


[영화 '퓨리']

지루한 참호전 타개한 英 '마크Ⅰ'
독일 막은 蘇 'T-34'와 美 '셔먼'
히틀러가 독촉해 만든 '티거'
新병기 전차, 전쟁 양상 바꿔
강해 보여도 보병·지뢰에 취약… 겉으로 센 척하는 남자와 비슷


남정욱 작가남정욱 작가


미국 독립전쟁 영화를 보면 사방으로 총알이 핑핑 날아다니는데 병사들이 밀집 대형으로 진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간이 부어서가 아니다. 어차피 명중률도 낮은 소총이다. 진영을 흩뜨리는 것보다는 사상자가

발생하더라도 그렇게 진군하는 게 병력 통제에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밀집 대형을 끝낸 게 개틀링 기관총이다.

개틀링이라는 의사가 발명했는데 이유를 묻자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라는 알쏭달쏭한 답을 남겼다.

개틀링 기관총은 맥심 기관총으로 진화한다. 방아쇠만 당기면 총탄이 알아서 계속 나가는 총의 등장은 전쟁의 양상을 바꿨다.

덕분에 1차 대전은 대치하는 양측이 구덩이에 틀어박혀 소모전을 벌이는 참호전으로 전개된다.

이 지루한 양상을 타개할 비책으로 등장한 게 전차(戰車)다. 지루하다고 적게 죽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솜(Somme) 전투에서는 10㎞ 전진하는 동안 120만명이 죽거나 다쳤다.

1916년 9월 솜 전투에서 독일군은 그때까지 세상에 없었던 마름모꼴 강철 괴물을 보고 패닉 상태에 빠진다.

영국에서 개발한 '마크Ⅰ'이라는 전차는 참호, 철조망, 기관총이라는 악마의 3종 세트를 무력화하며 독일군에게 달려들었다.

속도가 느리고 고장이 잦았던 마크Ⅰ은 심리적인 압박으로 끝났다. 그러나 군 지휘관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음 세대의 전쟁에서는 저 괴물이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전차의 기원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이 끄는 이륜전차는 고대 전투의 핵심 전력이었다.

몽골의 쿠빌라이 칸은 네 마리 코끼리에 가죽을 씌워 전장에 투입했다.

임진왜란 때는 거북이 등딱지 모양의 공병용 전차가 등장하기도 했다(일본 측 무기).

현대 전차는 농업용 트랙터에 서스펜션과 엔진 등 자동차의 공학 기술을 더하고 360도 회전 포탑을 얹은 것이다.

참고로 캐터필러는 미국 홀트사에서 개발한 무한궤도의 제품명이고

탱크라는 이름은 영국이 새로운 병기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붙인 수조(水槽·tank)라는 암호명에서 유래했다.

1차 대전이 끝날 무렵 등장한 프랑스의 '르노-FT'는 현대 전차의 원형으로 차체 중앙에 선회 포탑을 부착한 현재와 같은

모습이다. 2차 대전 초반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스타일로 서유럽을 강타한 히틀러는 도취와 자만 끝에 동부전선도 열어젖힌다.

독소(獨蘇) 전쟁에서 하루 100㎞를 주파하던 독일 기갑사단을 멈추게 한 것이 소련 전차 T-34다

(6·25 때 38선을 넘어온 것도 바로 이 전차. 우리에게 '맨주먹 붉은 피'의 경험을 안겼다).

약이 바짝 오른 히틀러가 신제품 출고를 독촉해 나온 것이 전차의 대명사 티거(tiger)다. 어지간한 포탄은 다 튕겨 내는

100㎜ 전면 장갑에 88㎜ 전차포를 탑재한 티거는 이름처럼 전쟁터의 포식자였다.

등장 시기가 전세를 뒤집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지만.


[남정욱의 영화 & 역사] 戰車… 남자가 매료되는, 남자를 닮은 무기
/이철원 기자


전차의 능력은 공격력, 기동력, 방어력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가격, 그리고 제작과 정비의 용이함이다.

이 모든 것에서 황금비율을 찾아낸 것이 T-34였고 미국의 대표 전차인 셔먼도 이와 비슷하다.

T-34는 제작 공정이 단순해 여성이나 노약자도 생산 라인에 투입할 수 있었다. 수리도 현장에서 바로 가능했다.

반면 독일이 하루의 전투에 투입한 티거는 400대를 넘은 적이 없다. 나머지는 수리 중이었다.

전쟁은 결국 물량 싸움이다. 각기 5만 대 넘게 생산한 셔먼과 T-34에 반해 티거는 겨우 1900여 대를 만들었을 뿐이다.

영화 '퓨리'는 전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전쟁영화다.

티거와 셔먼이 당시 통용되던 공식 비율인 1대 4로 맞붙는데 그 긴박감과 재미는 전차에 대한 이해가 높을수록 동반 상승한다.

영화 속 티거는 놀랍게도 진짜 티거 전차다. 전 세계에 딱 한 대 남아 있는 구동이 가능한 유일한 탱크라는데 영화 촬영을 위해

박물관에서 모셔왔다고 한다. 신기해서 자꾸 돌려보게 된다.


남자들이 전차에 매료되는 건 그 강력함 때문이다.

센 것, 강한 것에 대한 로망은 죽기 전에는 남자의 머릿속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다일까. 조심스럽게 하나 더

보탠다면 남자는 전차를 닮았다. 전차는 무적이 아니다. 의외로 보병이나 대전차지뢰에 취약하고 하늘의 자객인 전투기에

걸리면 황천길 절반 진입이다. 강해 보이지만 약점이 많고, 포탄이라는 통증을 참아내며 묵묵히 나아가는 모습에서

남자들은 그 쇳덩어리와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하긴 전차의 모양 자체가 남성과 닮기도 했다.

실제로 마크 전차에는 수컷과 암컷 두 종류가 있었다. 수컷에는 대포와 기관총이 있고 암컷은 기관총만 달려 있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상징이 너무 절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