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20] '글로벌 신라'의 징표, 계림로 보검

바람아님 2018. 1. 3. 06:49

(조선일보 2018.01.03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경주 계림로 보검, 보물 제635호, 계림로 14호묘, 길이 36.8cm, 국립경주박물관.경주 계림로 보검, 보물 제635호, 계림로 14호묘, 길이 36.8cm,

국립경주박물관.


1973년 6월 12일 오후 4시쯤. 국립박물관 경주분관 강우방 학예사는 계림로(鷄林路) 발굴에

임하던 이종성 직원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3일 전 발굴을 시작한 14호묘에서

금제 허리띠가 출토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규모가 작은 무덤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반신반의하며 한걸음에 달려갔다.


무덤 주인공의 허리 부위에서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낸 황금 장식은 흙 속에 절반 이상 파묻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찬연한 금빛을 내뿜고 있었다.


발굴 소식은 삽시간에 경주시내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이튿날 한 신문에

'경주고분서 순금허리띠 발굴, 해방 후 처음'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되자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서둘러 유물을 수습, 박물관으로 옮긴 다음 흙을

말끔히 제거하니 허리띠가 아닌 황금 보검이었다.


이 보검은 '국보급' '신라 공예 문화의 정수'라는 찬탄을 한몸에 받았고 7월 25일 발굴된

천마총 금관과 쌍벽을 이루는 유물로 평가받았다. 발굴이 끝나고 연구가 진전되면서

이 보검은 신라산이 아닌 서역산으로 밝혀졌다. 그에 따라 '신라 금속공예품의 지존' 자리를

잃게 되었지만 그 대신 글로벌 신라의 징표로 더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발굴된 서역산 보검이 어떤 과정을 거쳐 머나먼 신라까지 전해졌는지

등 계림로 보검을 둘러싼 여러 의문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 보검은 5~6세기 신라인들이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교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수용한 새로운 문물이 신라의 잠재력을 일깨워 신라인 스스로

'덕업일신(德業日新) 망라사방(網羅四方)'이라는 담대한 지향을 세우는 데 촉매가 되었음을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