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18]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존재 증명한 송국리 銅劍
동검, 부여 송국리 석관묘, 국립중앙박물관, 길이 33.4㎝.
3년 전 공주 남산리 유적 발굴 현장에서 일했던 최영보씨가 도굴 위험이 있는 옛 무덤을 발견했으니 급히 와달라고 연락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의 야트막한 야산이었다. 최씨가 안내한 곳엔 돌판을 조립해 만든 무덤의 일부가 드러나 있었다. 파괴된 고분일 것이라 추측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표토를 벗겨 내자 곧 길이가 2.6m나 되는 석관묘의 뚜껑돌 윤곽이 드러났다. 마을 주민 20여명과 함께 뚜껑돌을 들어 올렸다. 무덤 속에 쪼그려 앉아 꽃삽으로 연방 흙과 돌을 제거하던 김 분관장은 마침내 한 무더기의 돌화살촉과 함께 사진에서나 볼 수 있었던 '특별한' 동검을 발견했다. 그는 차분하게 발굴을 계속했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마을 주민들은 모두 환호의 탄성을 터트렸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요령식동검(遼寧式銅劍)이 발굴되는 순간이었다. 주변에선 마제 석검도 출토됐다. 훗날 김 분관장은 "마치 무령왕릉 입구를 열었을 때 느꼈던 그 경이와 흥분이 재현되는 듯했다"고 회고했다. 같은 해 10월 8일. 국립중앙박물관은 유물을 공개했다. 한병삼 고고과장은 "마제 석검이 세형동검을 모방했다는 일본 학계의 주장은 근거가 없어졌으며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것"이라 설명했고, 주요 언론에는 '선사고고학 최대 발견'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존재 확증' '60년 만에 무릎 꿇린 일본 학설' 등으로 대서특필됐다. 주민 신고로 우연히 발굴된 동검 한 자루가 한국 고고학계가 품고 있던 고민을 일소했고, 국가사적 '부여 송국리유적'을 찾아내는 실마리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청동기문화의 기원 및 성격을 해명하는 신호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19] 명품 갑주, '메이드 인 가야'
2010년 6월 28일. 전북문화재연구원 조사단은 남원시 아영면 소재 월산리 고분군 발굴에 나섰다. 대형분 3기가 고속국도 확장공사 구간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중 M5호분은 주변이 밭으로 개간되는 과정에서 일부 훼손됐으나 잔존 봉분의 지름이 16.6m에 달했다. 철제 갑주, 남원 월산리 M5호분, 높이(투구) 29.5㎝, 국립전주박물관.
훑고 지나가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으나 석곽 양 단벽 쪽에 유물이 무더기로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벽석과 덮개돌이 무너지며 '안전 공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북쪽을 맡은 김규정 실장이 흙 일부를 제거하자 청자가 살짝 모습을 보였다. "고려청자?" 일순 당황했으나 곧 닭 머리 모양이 드러나 중국 남조(南朝)의 계수호(鷄首壺)임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가야 유적에서 발굴된 유일한 자기로, 월산리 M5호분이 5세기 후반에 만들어졌음을 알려주는 기준 자료가 됐다. 이어 남쪽에선 겹겹이 쌓인 가야 토기, 각종 마구와 함께 철제 갑주가 출토됐다. 투구는 위쪽이 고깔 모양이고 눈썹 사이 장식과 챙, 볼 가리개를 갖추고 있었다. 조사단은 국립전주박물관에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10월 24일. 이영범 학예사는 철기를 수습했고 1년 9개월 만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으며, "이 갑주에는 철기 제작에 사용되는 주요 기술이 모두 구현돼 있어 1500년 전 만든 것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라는 소회를 밝혔다. 근래 한·일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철의 왕국' 가야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갑주 가운데 상당수, 심지어 대가야의 왕도인 고령 출토품까지 왜(倭)로부터 수입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고분 속에서 갑주가 다량 발굴됐다는 점이 근거다. 그러나 남원 월산리 M5호분 출토품을 비롯해 근래 발굴된 가야 갑주에서 가야적인 특색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머지않아 '당대 최고 수준' 가야 갑주를 휘감은 베일이 벗겨지게 되리라는 기대가 차츰 높아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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