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美國消息

[강인선의 워싱턴 Live] 워싱턴 "백 투 노멀"… 일제히 北압박 모드로

바람아님 2018. 1. 30. 07:43
조선일보 : 2018.01.29 03:13


[현송월로 南 홀리고 열병식으로 뒤통수… 워싱턴, 고개를 저었다]

매티스 국방 "올림픽 대화만으론 중요한 문제들 다 다루지 못한다"
美 '일단 남북대화 지원' 분위기서 현송월·열병식 뉴스 나오자 급랭

매티스 美국방, 송영무 국방 만나 '비핵화 흩트리면 안된다' 메시지
"北, 평창 납치" "北의 올림픽 쇼" 美 대북 부처들, 본래 입장 복귀
올림픽·남북대화로 북핵 해결? 美전문가 대부분 회의적·냉소적

강인선의 워싱턴 Live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26일(현지 시각) "올림픽 대화만으론 대단히 중요한 문제들을 다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하와이에서 이날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 전 모두 발언에서다. AP통신은 매티스 장관이 '남북 간의 올림픽 대화가 북한 비핵화라는 국제사회의 일치된 목표를 흐트러뜨려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한국에 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국방장관 회담은 지난 5일 매티스 장관이 송영무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제안해 이뤄진 것이다.

앞서 미 재무부가 올 들어 첫 대북 추가 제재를 발표한 지난 25일, 재무부의 대북 제재를 전담하는 시걸 맨델커 차관은 우리 통일부 천해성 차관을 만나 평창올림픽 계기 북한 지원과 관련한 우려를 전달했다. 미 재무부 대북 제재 수장이 통일부를 방문한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3일 "북한의 술책에 속지 않을 것"이라며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했다.

송영무 국방장관(오른쪽)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26일(현지 시각) 미 하와이 태평양사령부에서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하와이서 만난 송영무 국방장관과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 - 송영무 국방장관(오른쪽)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26일(현지 시각) 미 하와이 태평양사령부에서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국방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정책과 관련, '최대 압박과 관여'라는 본래 입장으로 복귀하고 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백악관·국방부·국무부·재무부·중앙정보국(CIA) 등 북한 정책을 담당하는 거의 모든 부처가 나서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와 함께 "한국이 평창 이후 '대북 제재 국제 공조'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도 워싱턴 조야에서 커지고 있다. 김정은 신년사 이후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고 남북대화가 진행되자 "일단 한국이 안전한 올림픽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던 분위기에서 급반전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한 한반도 전문가는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백 투 노멀(Back to normal)"이라고 했다.

미국의 대북 분위기가 급랭한 것은 '현송월'과 '열병식'이 계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워싱턴에선 "한국이 평창올림픽에서 한반도기를 들든, 단일팀을 만들든 그것은 한국이 알아서 할 일이다. 북한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양보나 국제적인 대북 제재 기조를 거스르는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만 지키면 된다"는 목소리가 주류였다.

남북 해빙 무드를 타고 워싱턴의 긴장감도 다소 누그러지는 추세였다. 강경 발언은 줄어들었고, 워싱턴 싱크탱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평창 이후 북한이 어떤 요구를 들고 나올 것인가'에 모아졌다. 그중에서도 한·미 연합 군사훈련 추가 연기나 중단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집중했다.

남북대화 우려가 커진 미국의 기류
하지만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 현송월이 1박2일간 한국을 휩쓸고 다니며 뉴스의 중심이 되자, 한국인들이 '현혹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워싱턴의 한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평창올림픽을 북한 체제 선전장으로 통째 내주는 것은 돈보다 더한 것을 주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북한이 일정까지 변경해 열병식을 하겠다고 하자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이었다.

지난주부터 '북한의 평창올림픽 납치(hijack)'란 말이 등장했다. 보수 성향 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가 22일 온라인에 "북한이 올림픽을 납치했다"는 기사를 올렸다. 위클리 스탠더드는 "처음엔 평창이 평양과 발음이 비슷해서 올림픽을 보러 가다가 본의 아니게 평양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농담을 했다. 그러나 이젠 올림픽이 어느 도시에서 열리느냐에 관계없이 올림픽은 점점 더 '북한의 쇼'가 돼 가고 있다"고 전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중동 방문 직후인 23일 백악관 관리가 "펜스 부통령은 김정은이 올림픽을 납치하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통령 입을 통해 '올림픽 납치(hijack)'란 말이 나오자, 마치 '김정은의 평창 납치 경계 경보'가 울린 것 같았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북한 정책을 담당하는 핵심 인사들이 일제히 출격했다. 언론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22일 CBS 인터뷰에서 "북한 미사일 저지를 위해 비밀 작전을 하고 있다"고 했다.

워싱턴에서 올림픽과 남북대화가 북핵문제 해결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국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회의적(skeptical)'이거나 '냉소적(cynical)'이었다. 한국이 '선'을 넘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한국의 외교안보 담당자들은 미국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 "한국이 국제 제재 공조를 해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점을 설득하고 다녔다. 한국이 평창올림픽을 핑계로 비핵화 공조를 흐지부지해서 대북 압박의 힘을 빼는 일은 없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려는 남아 있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 신안보센터(CNAS) 아태안보소장은 "워싱턴에선 북한이 의미 있는 양보를 하기도 전에 압박 전략이 약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도 "문재인·트럼프 시대의 한·미 동맹은 예상보다는 좋은 상태지만 서로가 어디까지 자기 목표를 추구할지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미 테리 CSIS(전략국제문제 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북한이 평창에서 정상적인 나라인 것처럼 '이미지 메이킹'을 하려는 것을 보고 미국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