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2018.06.15. 15:48
[김민웅의 인문정신] 북-미 공동선언, 이렇게 읽는다
김민웅 경희대학교 교수 ( )
트럼프 모델 등장
마침내 "트럼프 모델"이 나온 셈이다. 물론 이것은 문재인-김정은 협력체제의 소산이기도 하다. 핵심은 "관계 정상화의 궤도 위에서 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 반대가 아니다. 그래서 북한과 미국의 이 합의는 포괄적이며 신속하며 안정적인 내용과 구도를 지니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을 일일이 검증하고 만족하면, 그 다음 관계 변화를 논의할 수 있다거나 꾀하겠다는 식이 아닌 것이다. 두 방식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걸까?
지난 6월 12일, 북한과 미국의 공동선언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관점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면, 이 선언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게 된다. 그런 까닭에 북한의 핵 폐기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없고, 2005년 6자 회담의 9.19 공동선언보다 후퇴했다는 식의 논평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논법에 묶여 있는 탓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에 대한 설득력 있고 정리된 설명을 할 책임이 있다.
무엇보다 큰 쟁점은 공동선언에 이른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해체/폐기"라는 뜻을 가진 이 용어는 군사주의세력인 네오콘의 영향 아래 있던 조지 부시 1기(2001년-2005년)에 등장한 개념이다. 이는 적으로 규정한 상대의 가장 강력한 무장력을 완벽하게 해체하겠다는 발상이자, 이라크와 리비아 모델에 적용된 내용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CVID가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해 지구상에서 멸절해야 할 공격목표로 내세운 네오콘의 정책이라는 점을 주목한다면 이 개념의 정당성은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주권국가의 무장해제를 겨냥하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국제법적으로는 패전국가에나 적용시킬 수 있는 방식이다. 더군다나 "악의 축" 개념이 폐기된 상태에서 이를 추진하기 위한 방식을 그대로 작동시키는 것은 모순이다.
CVID 먼저? 아니.
따라서 북한의 반발은 이미 예상되었던 것이다. 군사적 적대관계의 해소가 동시적으로 약속 내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 무장해제가 요구조건이 된다면,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는 사이에서 이에 고분고분하게 응할 국가는 없다. 게다가 CVID는 기술적 검증 과정의 복잡성과 검증기준, 검증내용에 대한 끊임없는 논란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이와 함께 검증이 진행되는 중에 발생하기도 하는 기준의 상향조정 가능성 등으로 해서 관계 정상화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장애요인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관계 정상화는 아랑곳없고 "너는 모든 무력수단을 포기하라"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강대국의 일방적 강제와 폭력과 다름없는 접근이다. CVID 개념은 미국의 패권적 군사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폐기논의가 필요한 실정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이 관계정상화의 의지는 앞세우지 않고 CVID를 관계 정상화의 우선적 조건이라고 계속 강조할 경우, 상호간 긴장과 충돌은 뻔하다. 또한 그 결과 핵문제 타결을 위해 벌어졌던 지난 시기의 합의와 합의의 무효화라는 악순환은 반복될 가능성만 커지게 된다. 이번 북-미 공동선언문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아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라는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검증방식의 기술적 논란이 원칙적 목표를 압도하지 않도록 했다. 또한 비핵화의 범위를 "한반도"라고 못 박아 한반도 내에 미국의 핵 반입도 배제하고 있다는 점도 간접적으로 내포하게 했다. CVID를 뺀 것이 아니라, 그 틀에 묶이지 않은 것이다.
관점의 전환
그뿐만이 아니다.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한반도 비핵화를 증진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 합의를 선언한다고 발표했다. 비핵화를 하면 신뢰하겠다는 논리가 아니라 상호신뢰형성의 과정이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논법이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먼저 친해지면, 상대를 가격할 무기를 들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라는 방향설정이다.
이제 공동선언의 전체적 파악으로 들어가 보자. 비핵화 논의는 전체 4항 중에 3항에 배치되어 있다. 이는 2005년도 9.19 공동선언 1항이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임을 만장일치로 재확인"으로 되어 있는 것과 대조된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4항에 가서야 비로소 언급된다. 그러나 북-미 공동선언의 1항은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평화와 번영을 위한 양국 국민의 바람에 맞춰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한다."이다. 순위가 다르다.
우선적 목표는 새로운 관계 수립이고, 이는 양국 지도자의 개인적 의지가 아니라 "평화와 번영을 위한 양국 국민의 바람"에 따른 국가적 조처라는 것이다. 뒤이은 2항은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로 되어 있다. 북한과 미국의 새로운 관계수립 그리고 지속적(lasting)이며 안정적(stable)인 평화체제(peace regime) 구축이 대원칙이다.
3항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전문에서 표현된 것처럼 이 틀 안에서 해결되어가는 관련 사안이다. (전문: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새로운 관계 수립과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견고한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한 사안들을 주제로 포괄적이고 심층적이며 진지한 방식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3항의 경우, 판문점 선언까지 포괄함으로써 남과 북의 자주적 의지와 적대적 상황을 끝내기 위한 방식을 담아냈다는 점은 특기할 만 하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이제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실해지는 것은 비핵화가 새로운 관계수립의 조건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수립이 비핵화를 이뤄내는 토대가 된다는 점이다. 관계수립은 상호신뢰구축에 바탕을 두겠다는 것이고 이에 필요한 이른바 관련사안의 또 다른 하나가 4항의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 전쟁 실종자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이다.
전쟁포로, 실종자의 유해 송환은 한국전쟁의 기억을 마무리하는 매우 중요한 조처다. 1차 적으로 미국 내 여론의 변화가 기대되는 일이자, 전쟁이 얼마나 많은 인명의 희생을 가져오는지를 확인하게 되는 역사적 절차이기도 하다. 또한 이 송환과정에서 북한과 미국의 협력이 이루어질 것이며 상호 애도의 과정이 있게 되면 적대적 관계의 예식이 종료될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이 전쟁을 넘어선 평화의 실체를 만들어내는 힘이 된다면 평화의 훈풍은 일시에 사라지는 바람이 아니게 된다.
공동선언의 정리 문장은 그래서 더더욱 소중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은 북미관계의 발전,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 번영, 안전을 위해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관계의 발전, 평화와 번영 그리고 안전이라는 이 핵심적 단어들은 비핵화논리에만 집중되어 있던 기존의 인식과 상황을 일거에 뛰어넘었다. 한반도 평화와 적대관계 청산의 틀을 중심으로 문제해결의 줄기를 잡아나간 것이다.
양 날개를 펼쳐라, 아시아-태평양 그리고 유라시아의 날개를!
이제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지겠는가? 돌아보면 이토록 조건이 좋을 수 있을까 싶다. 남과 북, 미국과 중국 모두 준비가 되어 있다. 더군다나 우리의 경우,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평화체제를 추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의 전면적 재구성이 이루어짐으로써 내부적으로도 단단한 지형을 형성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추진 의지가 역사적 동력을 얻게 된 것이다. 내년 2019년이 3.1 운동 100주년이라는 점을 이와 함께 떠올려본다면, 그로부터 촛불시민혁명에 이르는 역사가 평화의 여정에 제대로 시동을 걸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아시아-태평양 체제와 유라시아 체제의 중간에서 압박을 받아온 과거를 넘어, 두 체제의 합류지점이라는 존재감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양 날개를 활짝 펼치고 세계적 차원의 비상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남과 북이 한 몸이 되면 이 날개를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향해 새로운 평화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경이로운 미래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기회에 하나 덧붙이자면, 내부적으로는 남과 북이라는 표현이 옳지만 국제적 차원에서는 북-미가 아니라 북한의 공식 명칭을 존중하여 조-미 관계로 불러나가는 태도와 경험도 쌓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 상대의 호칭을 정확히 부르는 것은 신뢰를 쌓아가는 자세와도 통한다. 우리는 한-미 관계라고 하면서 상대는 북-미라고 한다면 그것은 북미(北美/North America)가 아닌 담에야 곤란한 방식 아닌가?
미래는 새로운 관점과 태도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지금껏 문제를 풀지 못한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해결의 의지가 없다는 것과 같다. 그런데 바로 그 방식은 문제를 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문제를 더 꼬이게 하고 더 많이 만들었다는 걸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른 미래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다른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할 것이다. 두 날개를 활짝 펴 비상하면 세상이 전혀 다르게 눈에 들어올 것이다.
하늘에서 보는 세계(bird's view), 그게 우리의 미래다.
김민웅 경희대학교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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