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中國消息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2] 수시로 얼굴 바꾸는 중국인

바람아님 2018. 7. 6. 06:35

(조선일보 2018.07.06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변검쉴 새 없이 얼굴에 덮인 가면을 바꾸는 중국 민간 예술이 있다.

얼굴 바꾸기라는 뜻의 '변검(變臉·사진)'이다. 서남부 쓰촨(四川)에서 생겨나

지금은 중국 서커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4대 기서(奇書) '서유기'의 대표 캐릭터 손오공이 늘 외치는 구호가 있다.

"변(變)!"이다. 난적인 요괴를 만났을 때 자신이 그를 압도하는 동물로 변신하기

위해 외치는 말이다. 소설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중국 민간에는 닥치는 변화에 먼저 대응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래서 '바람을 보고 키를 놀린다(見風使舵)' '때에 맞춰 적절하게 대응한다(臨機應變)'

'상황을 보고 일을 처리한다(見機行事)' '몸 잰 뒤 옷감 자른다(量體裁衣)'

'기회에 맞춰 이익을 취한다(投機取巧)' 등의 성어가 즐비하다.


고전도 이를 강조한다. '주역'은 사람이나 현상이 곤궁한 지경에 들었을 때 변화를 불러야 하고,

그래야만 오래 이어갈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적었다.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다.

모종의 상황에서 더 적극적인 변화를 꾀하는 변통(變通)의 사고방식이 나온 토대다.


1970년대 말 개혁·개방 이후 중국 남부 지역에서 유행했던 '위에서 정책을 내놓으면 아래에서는 대책을 내놓는다

(上有政策, 下有對策)'는 말 또한 이러한 융통성 넘치는 대응 방식의 흐름에 닿아 있다.


원칙에만 매달리지 않고 상황을 유연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이런 변통의 사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에는 넘쳐나서 문제다. "임기응변의 사고 때문에 사람들이 '원만해서 두루 통하는(圓通)' 지경을 넘어

'둥글둥글해서 교활(圓滑)'해져 문제"라는 중국 문화평론가의 지적이 눈길을 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문제 삼아 초강력 경제제재를 벌였다가 미국의 통상 압력이 거세지자

한국에 협력과 연대, 공동 대응 등을 제안하는 중국의 얼굴이 변검의 기예처럼 현란하다.

진짜 중국의 얼굴을 직시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