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核 놔두고 종전선언 연연할 거면 '3차 회담' 할 이유 없다
문화일보 2018.08.10. 12:20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 뒤 2개월이 됐지만 북한 핵(核) 폐기 가능성은 더 가물가물해졌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남북 대화와 협력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급기야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제3차 정상회담’ 조기 개최까지 가시권에 접어들었다. 미·북 입장 차이를 조정하고, 비핵화를 견인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주장하지만, 지난 8개월 동안의 대화 국면과 북한 전략을 되돌아보기만 해도 본말전도의 위험한 발상이다. 이란을 방문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9일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핵 지식을 보존하겠다”고 했다. 이것만 봐도 비핵화 진정성 주장을 그대로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런 와중에 북한 요청에 따라 남북 당국은 13일 판문점에서 고위급 회담을 갖는다. 북한은 9일 회담을 제의하면서 ‘판문점 선언 이행 점검’과 ‘정상회담 준비와 관련된 문제’라는 2대 의제를 내놨다. 정부는 당일 그대로 수락했다. 청와대 안팎에서 8월 정상회담 개최설까지 나도는 것에 비춰보면, 고소원(固所願)이었을 것이다. 현 상황의 본질인 비핵화를 의제에 포함시키기 위한 노력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이날 저녁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까지 열었다. 북한 석탄 반입으로 한국이 유엔 제재 무력화(無力化)에 앞장서는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아도 미봉책으로 일관하며 몇 달 동안 NSC 회의조차 열지 않았다. 청와대의 주된 관심이 어디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남북 대화 자체를 기피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대화가 본질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당면한 핵심 의제는 북핵이 돼야 한다. 지금 북한이 정상회담을 들고나온 것은, 미국의 비핵화 요구를 우회하려는 것이다. 북한 정권 창건일인 9월 9일을 앞두고 문 대통령을 들러리로 세우려는 의도도 없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선(先)종전선언으로 비핵화 협상 동력을 마련하자는 논의가 구체화하고 있다고 한다.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종전선언은 유엔군 존립 기반을 흔들고, 나아가 주한 미군은 물론 한·미 동맹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핵 문제를 우회하면서 종전선언을 논의할 생각이면 그런 남북 정상회담은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
[사설]南 종전선언·남북화해 집착이 北 비핵화 이탈 부추긴다
동아일보 2018.08.10. 03:01
북한 노동신문은 어제 ‘종전선언 발표가 선차적 공정이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무슨 일이나 목적을 달성하는 데서는 순서가 있는 법”이라며 “이제는 조미(북-미)가 종전선언이라는 단계를 밟아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성의 있는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만 종전선언이 가능하다는 미국의 입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이런 북한의 태도로 인해 미국 내에서는 비핵화 회의론이 점증하고 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8일 “미국은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의 첫걸음조차 떼지 않은 채 종전선언이라는 보상을 달라는 북한의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다. 종전선언은 그 의미와 파급력으로 볼 때 비핵화 열차가 궤도에 올라 그 누구도 멈추기 힘든 수준으로 진행되는 시점의 보상이라고 보는 게 맞다. 4월 판문점 회담에서 연내 종전선언에 합의했지만 그것은 그 선언문에 함께 담긴 비핵화를 전제로 한 것이다. 북한은 싱가포르 회담 직후만 해도 종전선언에 집착하지 않았으나 7월 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3차 방북에서 비핵화에 대한 북-미 간 입장 차이가 크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직후부터 종전선언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종전선언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애착을 감안할 때 이를 요구하는 게 한미 간의 틈을 벌리는 전술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청와대는 종전선언이 한반도 관련 당사국들 간의 신뢰와 화해 구축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와 비핵화의 동력이 돼 주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했을 것이나 방향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종전선언이 북한의 버티기 빌미가 된 것은 비핵화에 목표를 집중하지 않고 남북관계 진전에 힘을 쏟는 문 대통령의 방향 설정이 만들어낸 부작용 중 하나다. 북한산 석탄 밀반입 논란도 그 산물일 수 있다. 남북관계 진전이 정권의 최우선 순위로 여겨지니까 관련 당국 실무자들이나 기업들도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에 안이한 태도로 임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북핵의 최우선 당사자인 한국이 국제 제재의 구멍이 아닌가 의심받는 처지가 됐다. 테드 포 미 하원 외교위 테러리즘비확산무역 소위원장이 8일 한국 기업도 세컨더리 제재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한 것이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의 통화 내용을 공개한 것 등은 모두 미국이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석탄 의혹은 관세청에 맡겨둔 채 9월 유엔에서의 종전선언 성사를 목표로 물밑 외교 노력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현 시점에서 미국을 설득해 종전선언을 먼저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은 미 의회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가능하지도 않고, 한국의 안보와 국익에 바람직하지도 않다. 비핵화가 궤도에 오르면 이에 비료를 더하듯 종전선언이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지만 현 단계에서는 더 이상 매달릴 일이 아니다. 견고한 한미 공조를 토대로 북한이 비핵화 시간표와 핵물질 리스트를 제출하도록 설득하고 압박하는 게 궁극적으로 종전선언과 평화체제를 앞당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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