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8.08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성장과 발전 멈춘 채 市場의 조화·조정 없이 '보이는 주먹'이 판을 쳐
主犯은 우리 사회 내 증오 부추기는 정치권… 똑같은 보복 겪을 수도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이 나라는 마약 중독자, '멋대로 되라'주의 노동자, 노조 경찰, 혁명적 고위 관료, 미혼모,
몽유병자 대통령, 팝아트 성직자, 빈정대는 저널리스트, 백만장자 외국인, 공산주의자 관료,
난교를 부추기는 성(性)의학자, 재앙만 예견하는 미래학자, 너무 관대한 판사 그리고
이혼한 부모들의 수중에 들어갈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만화가 볼린스키가 1981년에 한 이 말은 마치 40년 뒤 대한민국 모습을 예견한 듯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미쳐서 돌아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는 최빈국 상태에서 출발하여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고, 제3세계 국가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어낸 모범 국가였다. 그러나 이제 그와 같은 빛나는 성취는 온데간데없고 나라 전체가 어두운 심연을
향해 곤두박질치려 한다. 성장과 발전을 멈춘 대한민국은 모든 면에서 기이한 발작 증상을 보이고 있다.
전(前) 대통령은 '통일이 대박'이라는 근거 없는 허언을 반복했지만 돌아온 북한 반응은 핵미사일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협박이었다. 현 대통령은 판문점 회담과 싱가포르 협상을 통해 조만간 평화통일을 이룰 것처럼 약속했지만,
현 상황은 누가 봐도 평화도 아니고 통일과도 거리가 멀다.
북한이 다시 핵미사일을 만들고 있다는데 어떻게 종전(終戰)과 경제협력이 가능하단 말인가.
우리 모두 바라 마지않던 1인당 GDP 3만달러 목표를 이루었다고 기뻐하던 것도 잠시, 이제는 과연 이 정도 수준을 계속
유지하는 게 가능할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서민들의 경제 사정은 퍽퍽하기 그지없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노동시간을 줄여서 모두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데에는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터이다.
문제는 그게 힘으로 밀어붙여서 되느냐는 거다.
무리한 정책이 오히려 중소기업을 힘들게 하고, 공연히 영세 기업인과 노동자, 알바생들 간 싸움만 붙인 꼴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조화롭게 시장을 조정하는 대신, '보이는 주먹'이 판을 치고 있다.
소득 주도 경제성장이 쉽지 않다면 성장을 통한 소득 증가라는 고전적 방식을 가미하여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중이다.
달리 표현하면 '(한국) 사람은 다른 (한국) 사람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모든 인간관계가 다 틀어졌고, 서로 물어뜯지 못해 안달이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사랑하는 대신 증오의 폭언을 퍼붓는다.
몰카 사건을 공정히 수사하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는 어느덧 "우리 목소리를 무시하면 지나가는
한남(한국 남자) 69명을 무작위로 살해하겠다"는 살벌한 도발로 변질했다.
부모 자식 관계마저 한없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은 대략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막상 존속(尊屬) 살인율이
세계 1위라는 말을 들으니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자살률은 세계 최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에 도달한 지 오래다.
이쯤 되면 우리 국민은 장기적 집단 자살 과정에 들어간 셈이다.
어느 중학교 교실에서 있었던 '평범한' 이야기를 소개해 보자.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자 앞줄에 앉은 녀석이 느닷없이
물었다. "선생님은 유재석이 좋아요, 강호동이 좋아요?" 별생각 없이 강호동이 좋다고 답하자,
그 녀석이 몸을 돌려 뒤의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늙은 것들은 다 강호동이야!"
나라가 망하려면 말부터 망한다더니 딱 그 꼴이다.
이런 학생을 야단치려 하면 "CC TV 녹화되는 데에서 하시죠" 하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학교에서 고작 할 수 있는 건 문제 학생에게 벌점 주는 건데, 그러면 며칠 후 학부모가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나서
벌점을 취소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는 세상이다.
미래 한국인은 요즘 한국인보다 훨씬 더 거칠고 공격적이고, 그때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정글 만리'가 될 것 같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모두 서로 시기하고 증오한다. 왜 그렇게 되었으며, 이 큰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정확한 진단을 할 자신은 없지만,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고 싶다.
정치권이 나서서 우리 사회의 증오를 부추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자신만 정의롭고 상대방은 악(惡)이라는 위선에서 출발하여 정치 행위를 하다 보면
몇 년 후 똑같은 보복 사태를 겪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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