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9.27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궁한데 궁한 것은 탐욕 때문이다. 궁하지만 궁하지 않은 것은 의리에서 궁하지 않아서다.
궁하지 않은데도 궁한 것은 어리석음 탓이다. 궁하지 않은데 궁하지 않은 것은 예의에 궁하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군자는 가난해도 의리를 알고, 부유해도 예법을 안다
(窮而窮者, 窮于貪. 窮而不窮者, 不窮于義. 不窮而窮者, 窮于蠢. 不窮而不窮者, 不窮于禮.
是故君子貧而知義, 富而知禮)." 명나라 사람 팽여양(彭汝讓)이 '목궤용담(木几冗談)'에서 한 말이다.
궁함을 헤어나지 못함은 탐욕을 억제하지 못해서다. 노력하지 않고 일확천금만 꿈꾼다.
의리를 붙들면 물질이 궁해도 정신은 허물어지는 법이 없다.
잘살면서 늘 궁하다 느끼는 것은 내면의 허기 탓이다.
넉넉하면서도 구김살이 없는 것은 예(禮)를 지녔기 때문이다.
사람은 빈부를 떠나 예의의 바탕을 지녀야 한다.
예의를 잃고 보면 가난한 사람은 천하게 되고, 부유한 사람은 상스럽게 된다.
예의를 간직하니 가진 것이 없어도 남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재물이 많아도 사람이 격이 있어 보인다.
예의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이다. 빈천은 자꾸 위쪽으로 넘으려 하고, 부귀는 아래쪽으로 넘으려 든다.
넘으려다 못 넘으니 원망이 쌓이고, 넘지 말아야 할 것을 넘는 사이에 교만해진다.
한 대목 더. "행실이 깨끗한 사람은 저자에 들어가서도 문을 닫아걸고,
행실이 탁한 사람은 문을 닫아걸고서도 저자로 들어간다(行潔者入市而闔戶, 濁行者闔戶而入市)."
내 몸이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고, 내 마음이 있는 곳이 더 중요하다.
복잡한 도회 안에서도 내면이 고요히 가라앉아 있다면 닫힌 방 안에 앉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깊은 방 안에 도사려 앉아 있더라도 욕망이 들끓으면 저잣거리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나 같다.
이 말을 받아 이덕무는 "글을 읽는다면서 시정의 마음을 지닌 것은, 시정에 있으면서 능히 글을 읽음만 못하다
(讀書而有市井之心, 不如市井而能讀書也)"라 하고,
또 "문 나서면 온통 욕일 뿐이요, 책을 열면 부끄러움 아님이 없네(出門都是辱, 開卷無非羞)"라 했다.
투덜대기만 하고 부끄러움을 잊은 세상이다. 안으로 향하는 눈길이 필요하다. 책을 더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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