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펴낸 박희병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20년간 연구… 집필만 6년 걸려 "연암과 추사가 존경한 문인화가"
![18세기 화가 이인상을 연구한 박희병 서울대 교수.](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810/01/2018100100174_0.jpg)
박 교수는 손꼽히는 연암(박지원·1737~1805) 연구의 권위자다. 고전 문학과 사상사 관련 책을 여러 권 냈다. 이번 책으로 서화(書畵)까지 손을 뻗었다. 박 교수는 "문학, 사상사, 예술사는 통합적으로 연구해야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다"면서 "이번 책은 내가 오랫동안 주장해 온 '통합 인문학'을 실천한 예"라고 했다.
이인상은 겸재(정선·1676~1759)나 단원(김홍도·1745~?)에 비하면 유명하지 않다. 하지만 그는 한 세대 후배인 연암과 추사(김정희·1786~1856)가 모두 존경했을 만큼 뛰어난 문인이자 예술가였다. 박 교수는 "청(淸)에 당한 남한산성의 수치를 오랫동안 기억한 18세기 전반의 문제적 지식인 집단(단호그룹)을 대표하는 인물이 이인상"이라며, "그림과 글씨의 법도를 완전히 습득한 후 이를 뛰어넘어 예술가가 갈 수 있는 데까지 간 경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구룡연도(九龍淵圖)'를 예로 들었다. 이인상이 1752년 금강산 구룡연을 그린 그림이다. 얼른 보기엔 그리다 만 그림 같다. 이인상은 화제(畵題)에서 그 이유를 밝혔다.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 뼈[骨]만 그리고 살[肉]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빛깔과 광택)을 베풀지 않았다.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것)가 중요해서다.' 박 교수는 "군더더기나 부귀공명 같은 이름은 필요치 않다는 올곧은 자세를 나타낸 것"이라며 "겸재가 호방하고 활달한 필치를 보여준다면 이인상은 신념을 지키고 세상과 맞서는 비장한 미감(美感)을 준다"고 했다.
![병든 국화를 그린 이인상의 그림 ‘병국도(病菊圖·왼쪽 큰 사진)’는 원래 만년의 작품으로 간주됐지만, 박희병 교수는 이를 23세 때 작품으로 추정했다. 오른쪽 글씨 ‘야화촌주(野華邨酒·위)’는 ‘들에 핀 꽃, 농가에서 빚은 술’이란 뜻이고, ‘막빈어무식, 막천어무골(莫貧於無識, 莫賤於無骨)’은 ‘식견이 없는 것보다 가난한 것은 없고, 뼈가 없는 것보다 천한 것은 없다’는 의미다.](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810/01/2018100100174_1.jpg)
'뼈'는 이인상 작품을 이해하는 핵심어다. 이인상 글씨 중 '막빈어무식(莫貧於無識), 막천어무골(莫賤於無骨)'이란 글이 있다. '식견이 없는 것보다 가난한 것은 없고, 뼈가 없는 것보다 천한 것은 없다'는 뜻이다. 박 교수는 "이인상은 모든 생명 존재와 인간의 정수가 뼈에 있다고 보는데, 그의 그림과 글씨에는 내면의 기골이 느껴진다"면서 "추사 글씨에는 졸(拙·기교를 부리지 않음)을 잘 구현하겠다는 교(巧·기교)가 있는 반면 이인상의 글씨에는 그런 의식도 없고 그런 의식을 버려야 한다는 의식도 없다"고 했다.
이인상의 예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소순기(蔬筍氣)'. 채소나 죽순 같은 기운이란 뜻이다. 박 교수는 "겸재나 추사의 작품이 기름진 산해진미(山海珍味)라면 이인상의 작품은 기름기 쫙 빠진 자연 채소"라며 "동아시아로 넓혀 봐도 독자적인 미학 현상을 보여주는 예술가"라고 했다.
책은 20년 연구의 결과물이다. 1998년 이인상 문집인 '능호집'을 번역하기 시작해 3년 후 마쳤고, 2005년 후손가에 소장된 초본(草本) 문집 '뇌상관고'를 발견하고 면밀히 검토했다. 10여년간 이인상의 그림과 글씨를 보기 위해 주요 미술관과 개인 소장자를 찾아다녔다. 문집과 실록 기록, 그림과 글씨를 넘나들면서 이인상이 작품을 언제 왜 그리고 썼는지 밝히고 그의 내면과 시대 배경을 치밀하게 고증했다.
책에는 새로 찾아낸 그림 2점을 더해 모두 64점을 실었다. 서예 작품은 100여점을 발굴해 131점을 다뤘다. 각 권 부록에는 이인상의 것으로 잘못 알려진 그림과 글씨를 싣고 이유를 밝혔다. 유명 미술관 소장품도 위작으로 판정했다. 박 교수는 "오랫동안 이인상 작품을 보았더니 진품 여부를 금세 알 수 있다"면서 "미술사가는 위작이란 말을 하지 않는다지만 나는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본 그대로 밝혔다"고 말했다.
'文學,藝術 > 고전·고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의 걸크러시]〈2〉대원수에 오른 소설 속 여인 (0) | 2018.10.04 |
---|---|
[조선의 걸크러시]〈1〉치마 속 쇠도리깨를 감춘 ‘다모’ (0) | 2018.10.03 |
[정민의 世說新語] [486] 궁이불궁 (窮而不窮) (0) | 2018.09.27 |
[정민의 世說新語] [484] 지족보신 (知足保身)/ [485] 봉인유구 (逢人有求) (0) | 2018.09.21 |
[정민의 世說新語] [483] 인품훈유 (人品薰蕕) (0) | 2018.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