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정민의 世說新語] [483] 인품훈유 (人品薰蕕)

바람아님 2018. 9. 7. 07:21
조선일보 2018.09.06.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송나라 때 구양수(歐陽脩)는 후진들의 좋은 글을 보면 기록해두곤 했다. 나중에 이를 모아 '문림(文林)'이란 책으로 묶었다. 그는 당대의 문종(文宗)으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지만, 후배들의 글을 이렇듯 귀하게 여겼다. 송나라 오자량(吳子良)은 자신의 '임하우담(林下偶譚)'에서 이 점이 바로 구양수가 일세의 문종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이라고 썼다.


구양수는 '여유원보서(與劉原父書)'에서 "왕개보(王介甫)가 새로 쓴 시 수십 편을 얻었는데 모두 기이하고 절묘해서, 시도(詩道)가 적막하지만은 않음을 기뻐하며 그대에게 알려 드리오"라고 썼다. 또 '답매성유서(答梅聖兪書)'에는 "소식(蘇軾)의 글을 읽으니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나더군요. 통쾌하고 통쾌합니다. 이 늙은이가 마땅히 길을 비켜주어서 그가 두각을 드러내도록 해야겠습니다. 너무 기쁩니다"라고 적었다. 구양수는 좋은 글을 보면 이처럼 기뻐했다.


명나라 때 호종헌(胡宗憲)이 모곤(茅坤)에게 '백록표(白鹿表)'를 보여주었다. 모곤이 놀라 혀를 차며 말했다. "이것은 우리 당형천(唐荊川) 공이 아니고는 절대로 지을 수 없는 글일세." 당형천은 자신의 스승이었다. 뒤늦게 이 글을 서문장(徐文長)이 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말을 이렇게 바꿨다. "애석하구나. 말세의 나약함에 지나지 않는다." 말 속에 서문장을 질투하는 마음이 절로 드러났다.


나가노 호잔(豊山長野·1783~1837)이 '송음쾌담(松陰快談)'에서 두 사람의 다른 태도를 적고 나서 이렇게 썼다. "구양수와 모곤에게서 인품의 훈유(薰蕕)가 다름을 볼 수 있다. 내가 모곤의 문집을 읽어보니 훌륭한 작품이 한 편도 없었다. 서문장의 하인이 되기에도 부족했으니, 질투하는 마음을 막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 옛사람이 말했다. '비방은 질투에서 생겨나고, 질투는 이기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다(毁生於嫉, 嫉生於不勝).' 이 말이 참으로 옳다." 훈(薰)은 향기 나는 풀이고, 유(蕕)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풀이다.


남에 대해 말하는 태도에서 그 사람의 그릇이 드러난다. 아랫사람의 좋은 점을 취해 자신을 발전시키는 사람이 있고, 아랫사람을 무시하고 짓밟아 제 권위를 세우려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