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0.06 어수웅·주말뉴스부장)
[魚友야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미로 같은 을지로 뒷골목의 한 생태찌개 집에서 소주 한잔을 했습니다.
마주 오는 사람은 어깨가 서로 부딪혀야 지날 수 있는 좁은 골목길. 낡은 공구상과 옛 철공소들 사이
식당 자체도 경이지만, 손님 상당수가 20~30대 젊은 세대라는 데 한 번 더 놀랍니다.
타일·도기와 세면대·양변기를 파는 가게를 따라 한 블록 걸어가면 와인 바가 나옵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옛 인쇄소 건물의 3층. 이런 곳에? 하고 의문을 가지는 순간, 2층 계단참부터
진입이 막히더군요. 빈자리 기다리는 손님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은 을지로와 종로 등 도심에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122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계획을 확인했죠.
'서울의 미친 집값'을 잡겠다는 아이디어도 백화제방이고요. 선의는 이해하지만, 과연 설득력 있는 대안일까요.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을 쓴 경제 전문가 김동조씨는 이런 말을 트위터에 썼습니다.
"혁신도시로 공공기관을 이전할 때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는다. 땅을 가진 사람들은 보상을 받아 부자가 된다. 건설업자도 돈을 번다.
하지만 생산성은 추락하고 정작 도시는 구도심을 시작으로 쇠락한다."
전주로 옮긴 국민연금의 핵심 인력은 이탈했고, 세종시로 옮긴 KDI(한국개발연구원)에는 예전처럼 최고 인재가
모이지 않죠. 엘리트만 그런가요. 방세와 생활비는 반값 아래고 월급도 70~80%는 맞춰주겠다는데도,
욕심 있는 젊은이들은 지방 도시를 떠나 서울로 집결합니다.
우리는 서울이 '매력 자본'이라는 사실을 종종 망각합니다.
산업화 시대에는 새 건물 지으면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지금은 다르죠. 요즘 화제의 책으로 '도시의 승리'가 있습니다.
하버드대 경제과 교수인 저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새 건물은 도시의 문제를 치유하지 못한다.
경제 규모에 비해 과도한 주택과 인프라는 결국 도시를 쇠퇴시킨다"고 했습니다.
소설가 홍형진의 최근 에세이 제목은 '다들 서울에서 살길 원한다'입니다.
혁신의 대부분은 인간의 교류에서 시작하고, 그 기회는 사실상 대도시에만 존재하더라는 체험담이죠.
생태찌개 집의 소주 멤버는 시인과 공연 기획자였습니다.
도시의 승리 : 도시는 어떻게 인간을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하게 만들었나? 전 세계 도시의 흥망성쇠와 주요 이슈들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통찰을 전함으로써 대한민국 도시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하게 해준다. 이 책은 2011년 2월 미국에서 출간 즉시 아마존,《뉴욕타임스》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도시에 대한 놀라운 통찰과 정책적 제안을 내놓은 책”(《뉴욕타임스》) “경제학과 역사를 매끈하게 연결하며 도시가 ‘우리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한 걸작” (스티븐 D. 레빗,『괴짜경제학』저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
홍형진/ 8월 10일 ·
“여기선 250만 원, 서울에선 200만 원을 준다고 해도 애들이 서울로 간다. 여기서 일하면 월급은 더 많고 집이랑 물가는 더 싼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천안의 공대 교수인 사촌 형님이 내게 이리 말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위기를 맞은 지방대에선 취업률이 굉장히 중시된다. 형님 역시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물어다주느라 열심인데 기껏 좋은 자리를 알선해줘도 반응이 시큰둥할 때가 많단다. 대부분 서울로 가길 원한다는 것. 그는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천안에 눌러앉는 편이 한결 안정적으로 삶을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서울의 집값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문화 인프라 등이 서울에 몰린 점 또한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봤다. 1년에 극장도 몇 번 안 가는 게 현실이니 꼭 관람하고픈 공연이 있으면 가끔 서울을 오가는 정도로 충분하다는 것. 서울과 천안은 1호선 전철로 연결되어 있으며 KTX로는 한 시간 거리다.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생각이 어떤지 물어봤다. 그러자 8:2 정도로 서울에 기울어졌다. 다들 젊은 세대여서인지 천안의 학생들과 비슷한 선택을 했다. 적은 월급, 비싼 집값과 물가, 긴 통근시간, 치열한 경쟁 등에도 서울을 택한 것이다. 아예 딱 잘라 ‘고작 50만 원 차이면 무조건 서울’이라고 답한 친구도 있다. <도시의 승리>는 왜들 그러는지를 이야기해주는 개론서 같은 책이다. 저자가 하버드 경제학과 교수이니만큼 풍부한 사례와 통계를 활용해 다각도에서 조목조목 짚어준다. 세세하게 소개하긴 어려우니 주제만 축약하면 얼추 아래와 같은 이야기다. ‘혁신이라고 불리는 변화의 상당수는 인간의 교류에서 비롯된다. 대도시는 바로 그 교류를 극대화해주는 공간이다. 우수한 역량의 인력이 한데 모여 교분을 쌓고 배움을 주고받는다. 이곳에 거주하며 일한다는 것은 인적 자본에 투자하는 것과 같다. 크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대도시에만 존재한다.’ 당장 나만 봐도 그렇다. 나는 10분만 걸어가면 부천이 나오는 서울 외곽에 거주한다. 용무가 있어 도심을 오갈 때면 왕복 한 시간 반은 기본이고 세 시간 가까이 걸릴 때도 있다. 마음 같아선 도심 가까이 살고 싶지만 거긴 집값이 너무 비싸 아직은 무리다. 일단 여기서 버티며 큰 성공을 노리는 입장이다. 그렇게라도 내가 서울에 들러붙어 있는 이유는 빤하다. 글, 스토리텔링, 언론 분야 전문가의 대부분이 서울을 근거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곳을 벗어나면 정보를 긴밀하게 교류하기 어려워지고 그것은 작가인 나 자신의 성장을 저해한다. 집에 틀어박혀 안 나온다고 해서 업자들과 일절 소통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필요한 이야기, 유익한 자리가 있을 때면 왕복 세 시간 거리도 기꺼이 오간다. 우리나라는 업종을 막론하고 (대기업 공장 정도를 제외하면) 우수 인력의 서울 집중도가 유난하다. 인적 자본에 투자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다음 단계를 도모할 수 있는 계기와 기회가 서울에 밀집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의 소득은 빈한하고 환경은 각박할지라도 이후를 꿈꿀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란 소리다. 서울의 집값이 외곽마저 꾸준히 오르는 건 결국 이런 이유 아닐까? 어떻게든 서울에 붙어 있고 싶으니까 오르지 않겠나. 여기에 더해 페친 최준영 박사님은 공정성과 공평함, 여성친화적 문화 등을 기대할 수 있는 그나마 합리적인 공간이 서울과 수도권이라는 점도 지적하셨다. 인맥과 연고의 영향력이 덜해서 자기 실력으로 붙어볼 만한 공간이고, 여성을 둘러싼 환경 또한 지방보다 우호적이라는 게 골자다. 이 역시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키우는 이유임에 분명하다. 지방은 남초, 서울은 여초 공간으로 변화하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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