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1.06 팀 알퍼 칼럼니스트)
궂은 날씨부터 버스 지연까지 투덜거림은 영국인들의 '취미'
사계절 금수강산 긍지 가득한 한국인들과는 지극히 대조적
애정 어린 맞장구를 갈망하는 연약한 심리는 두 국민 공통점
팀 알퍼 칼럼니스트
만약 영국에서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이런 방법을 시도해 보라.
우선 버스 정류장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서서 이렇게 말한다.
"이 나라의 버스 시스템은 최악이네요. 버스는 정시에 도착하는 법이 없어요."
즉시 누군가 흥분을 하며 당신의 불평에 맞장구를 치기 시작할 것이다.
"나도 버스를 30분도 넘게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러다 두 대가 같이 오겠죠." 그리고 누군가는 "맞아요,
또 버스는 너무 오래되어서 계속 고장이 나요"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한국의 버스 정류장에서 큰 소리로 한국의 버스에 대해 불평을 한다면, 예상 가능한 반응은 곁눈질 가득한
싸늘한 정적일 것이다. 최악의 경우 사람들의 공격적인 투덜댐과 맞서야 할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와 반대로 행동해본다면 매우 다른 반응을 얻게 될 것이다. 영국 사람들 앞에서 영국 날씨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면 그들은 당장 의심이 가득한 눈길로 빤히 쳐다보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 이상한 사람이 도대체 뭘 원하는 거지?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어.'
반면 내가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갑자기 한국의 날씨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으면 한국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괜찮은 외국 양반이네'라고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불평불만은 영국인들의 국민적인 취미이다.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타인이나 다른 나라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즐기지 않는다.
세련되지 못하고 오만하게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많은 영국인이 내심 불타는 애국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는 것을 교양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자랑을 늘어놓거나 아첨하는 것은 영국 사람들에게 저속하게 들린다.
만약 잉글랜드가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다면, 오직 영국의 절반만이 우승을 축하할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우승을 축하하는 이들에 대해 불평을 할 것이다. 소소한 것이라도 영국인들에게 칭찬을 하고 지켜보라.
그들은 벌게진 얼굴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불편함으로 몸을 꼬기 시작할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이와 반대로 한국인들은 한국에 대한 칭찬을 좋아한다.
자기 자신이나 자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한다는 의미를 가진 '셀프 디스'는 한국에서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개념이다.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에서 30년을 거주한 한 미국인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 나라의 뚜렷한 사계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항상 말해 준다면 한국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그의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이렇게 칭찬을 건네는 것은 한국에서 친구를 만드는 쉽고 빠른 지름길이다.
반대로 한국인들 앞에서 한국에 대한 불평불만을 줄곧 늘어놓는 서양인들은 대부분 한국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다가
1~2년 후 한국을 떠난다. 나 또한 이런 서양인을 여럿 보아왔다.
그러나 한국인들과 영국인들이 어리석은 건 아니다. 이런 아첨과 디스의 효과에도 한계는 있다.
만약 이방인들이 계속 한국의 날씨에 대해 칭찬을 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흥미를 잃을 것이다.
영국에서도 마음껏 영국을 비난할 수 있겠지만, 만약 다른 나라를 두둔하기 시작한다면 보이지 않는 선을 넘은 것이다.
"영국 음식은 정말 형편없어." 여기까지라면 영국의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지지자를 만날 것이다.
하지만 "영국 음식은 정말 형편없지만 한국 음식은 맛이 뛰어나"라고 이야기한다면 분노와 경멸,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왜 이렇게 영국 사람과 한국 사람은 양분화된 것일까? 영국 사람들의 자기 비하는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이나
'간절한 애원'에 가깝다. 누군가가 당신의 셀프 디스를 듣고 "아니야. 당신은 사실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야"라든지
"버스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버스를 사랑해"라고 말해주기를 간절히 애원하는 것이다.
반대로 지독한 한여름의 더위와 뼛속까지 시린 혹독한 겨울에 시달려 온 한국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이런 날씨를
진정으로 좋아한다는 말을 듣기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국 사람들이 불평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칭찬을
갈망하는 것이다. 어쩌면 한국 사람들과 영국 사람들은 다른 증상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병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애정이 듬뿍 담긴 보살핌으로 치유될 수 있는 '연약한 자아(自我)'라는 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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