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1.10. 14:01
"사람이 먼저" 차도 막아선 ‘인생 샷族’
‘점프 샷’ ‘만세 샷’ ‘인생 샷’에 국립공원 몸살
계곡 양치질, 쓰레기 투기, 불법 주정차 여전
"차가 도로 전세 냈어요? 사람이 먼저지. 사진부터 찍읍시다."
단풍이 절정을 이룬 지난 3일 전북 정읍시 내장산 국립공원, 등산객들이 도로 중앙선을 밟고 서서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차도에 들어가지 마시고 질서를 지켜달라"는 안내방송이 반복해서 나와도, 달려오던 차들이 놀라 서면서 경적을 울려도 이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더 좋은 구도를 잡기 위해 아예 차도에 엎드려 누운 사람도 있었다. 일행들은 ‘점프 샷’을 위해 도로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인생 샷’(인생에 남을 정도의 걸작 사진)을 찍는 건 젊은 층만이 아니었다. 50~60대 장년층들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인생샷’에 체면을 내치고 있었다.
◇위험해도 사진이 우선…목숨 건 인생 샷
양팔을 큰 대(大)자로 쭉 뻗어 찍는 것은 ‘만세 샷’이라고 한다. 단풍나무를 밟고 올라간 뒤, 가지 위에서 만세 샷을 시도하는 등산객도 눈에 띄었다. 양손으로 나뭇가지를 아래로 당겨 만세 샷을 찍기도 했다.
인생 샷을 건지기 위해 출입금지 구역을 넘나드는 것은 예사였다. 내장산 탐방로 옆 둑은 대표적인 ‘포토존’이다. 이곳은 발을 잘못 디디면 4m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하는 위험한 장소다. 그러나 사진이 잘 나온다는 이유로 이날 등산객들은 좁은 공간에 모여서 북적거렸다. 사진사 정모(47)씨가 "위험하기는 하지만 멋진 사진 찍는 게 우선"이라면서 "여기는 개천 한가운데가 나와서 사진이 기가 막히게 찍힌다"고 말했다.
무질서는 결국 사고로 이어진다. 지난달 27일 내장산 국립공원 주차장에서는 승용차가 보행자를 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실족·추락·조난 사고는 3941건이다.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 유형도 1174건에 달했다.
2011년 5월 춘천 오봉산에서는 박모(63)씨가 기념사진을 찍던 도중 실족해 절벽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2015년 전남 보성군 오봉산 전망대에서는 나무에 기댄 채 포즈를 취하던 김모(46)씨가 추락사했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사진 촬영 시 화면에 시선을 뺏겨 절벽 등 위험 지역을 인식하지 못해 발을 헛디디는 경우가 많다"며 "위험한 장소에서 사진 촬영은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계곡 양치질, 쓰레기 투기, 불법 주정차…웬만해선 막을 수 없어
무단 주정차는 단풍철 국립공원의 고질(痼疾)이다. 주말마다 국립공원 입구는 인생 샷을 찍으려는 등산객, 불법 주정차 차량들로 시장통을 방불케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6일 현재 주차장 공간 확대를 요청하는 청원 글이 12건 올라와 있다.
지난 주말 설악을 찾은 등산객 김모(36)씨는 "초입부터 불법 주정차 차량이 길을 막고, 등산로 곳곳에는 쓰레기 냄새가 진동해서 아주 지쳤다"면서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보면서도 남탓하기 바쁜데, 그 이전에 모두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웬만해서는 그들을 막을 수도 없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이나 다른 등산객이 말리면 곧장 길거리 싸움으로 번지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산 국립공원을 다녀온 허승준(33)씨는 불쾌한 경험을 했다. 만취한 상태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등산객들에게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고 말한 것을 계기로 시비가 붙었기 때문이다. 허씨는 "산악회원들인지 모르겠는데 ‘어디 젊은 놈이 버릇없게 어른에게 그러냐’고 호통치더라"라면서 "국립공원 직원들도 그 사람들이 무서워서 함부로 말리지도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내장산 국립공원 사무소 관계자는 "하루에 관광객이 3만명씩 몰려 늘 인력이 부족하다"며 "‘안전수칙을 지키라’고 당부해도 대부분은 따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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