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날아가 공격하는 것이 하늘을 진동시키는 우레와 같다는 대포알이다. 하지만 대포의 역사에서 비격진천뢰의 의미는 우레 같은 소리보다 서양에 앞선 폭발탄이었다는 데 있다. 중국에도 진천뢰가 있었다. 그것은 수류탄과 같이 불을 붙이는 것과 거의 동시에 폭발하는 것이었다. 그런 폭발이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폭발하기 때문에 대포에서 쏠 수 있는 비격진천뢰는 조선의 독창적인 무기로 1591년 선조 때 이장손이 개발했다.
▷비격진천뢰는 조선이 임진왜란 초기의 패배를 딛고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 비격진천뢰가 전북 고창군 무장읍성에서 11점이 새로 발견됐다. 과거 발견된 비격진천뢰 6점은 모두 폭발한 뒤 탄피만 남은 상태로 발견됐다. 사용되지 않고 내부에 화약이 그대로 남아있는 비격진천뢰 11점의 발견은 획기적이다. 이틀 뒤인 11월 19일은 1598년 이순신 장군의 순국(殉國)과 노량해전 승리로 임진왜란이 끝난 날이다. 그 420년 뒤인 7주갑(周甲)에 발견됐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임진왜란 직후 명청 교체기인 17세기 전반 만주족 수장 누르하치가 요동의 요충지인 명의 영원성 공략에 번번이 실패한 것은 명이 포르투갈에서 수입한 대포인 홍이포 탓이 컸다. 이 홍이포가 인조 이후 조선에서도 제작돼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사용됐다. 위력적이라는 홍이포도 대포알 자체는 폭발하는 것이 아니어서 19세기를 거치면서 급속히 발달한 양이(洋夷)의 화약식 대포 앞에 무릎을 꿇는다. 임진왜란 당시 비격진천뢰가 얼마나 첨단무기였는지 짐작이 가면서 이를 더 발전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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