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8.12.31. 03:00
적폐청산-언론억압-사법부 무력화.. 선출된 非자유주의 독재자의 공식
이러자고 '나라다운 나라' 외쳤나
장애인 폄하 의도는 없었지만 집권당 비판을 가짜뉴스로 보는 인식도 드러났다. 여당 대표가 ‘포용’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새해 초 문재인 대통령이 밝힐 ‘포용국가’ 국정비전의 허구성을 폭로했는데 박수가 나왔다니, 자살골에 환호하는 집권세력 수준이 걱정스럽다.
민주주의의 첫발이 1인 1표라면, 자유주의의 첫발은 권력의 제한이다.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국가의 차이는 두려움 없이 권력자를 비판할 수 있느냐에 있다. 이건 겁 많은 나의 주장이 아니라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가 10일 ‘남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 우파 권위주의에서 좌파로?’ 토론회에서 나온 얘기다.
퍼시픽포럼의 타라 오 연구원은 “한국 정부가 전투적 언론노조를 통해 MBC와 KBS 이사진을 퇴진시키고 새 사장을 앉혀 정치적 반대자들을 제거했다”며 이를 적폐청산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일 뿐이다. 다수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소수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법치(法治)이고 이것이 보장되는 체제가 자유민주주의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을 구속시킨 한국 정부는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고 했다. 이른바 진보 정부가 북한이 원하는 한미동맹 폐기 수순으로 가고 있으니 좌파 정부와 우파 정부 중 어느 쪽이 국가안보에, 한국 민주주의에 위협적이냐는 지적도 나왔다.
미 정부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의 비판 언론 옥죄기를 특히 우려하는 것은 남북관계와의 연관성 때문이다. 이해찬은 행사장에서 “머지않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답방하는 중요한 시기가 온다”며 “내년에 남북 평화체제를 만들어 내고 그 힘으로 2020년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 하나의 천기누설이다. 진보세력의 ‘20년 집권’ 비결이 민생 아닌 김정은에게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마침 어제 온 김정은의 따뜻한 친서에 반색을 하는 모습이다. 그러니 이 정부는 과연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을 원하느냐는 의문까지 제기되는 거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국민의 적’이라 욕하는 판에 미국이 한국 걱정할 자격 있느냐고 반미좌파는 코웃음 칠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엔 백악관의 CNN 기자 출입정지 조치에 즉각적 해제를 명령한 미 연방법원이 존재한다. 사법부의 대통령 권력 견제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미국에 비하면, ‘재판 거래 의혹’을 빌미 삼아 촛불정신 받들라는 대통령 앞에 사법부 수장이 적극 협조를 맹세한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는 곤고(困苦)하다.
“자유민주주의 시대는 끝났다.”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지난 3월 선언했듯, 2018년은 자유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이 울린 해였다. 21세기의 비(非)자유주의 독재자는 쿠데타로 집권하지 않는다. 대중의 분노나 위기를 이용해 구원자 같은 카리스마로 선출되고, 공포의 적폐청산 속에 조용히 언론자유와 독립적 사법제도를 무너뜨리고는, 개헌이나 선거법 개정으로 영구집권을 꾀하는 것.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지난 9월 분석한 자유민주주의 붕괴 공식이 헝가리, 폴란드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들어맞는다는 현실에 소름이 돋는다.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도덕성과 정의(正義)를 코에 걸고는 자유민주주의를 모독하는 데는 인간에 대한 신뢰마저 잃을 것 같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이들 비자유주의적 권위주의 정권이 워낙 뻔뻔스럽게 해먹는 바람에 결국은 무너진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천만다행히도 문 대통령은 미국까지 ‘정권의 2인자’로 알려진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을 경질할 작정이라고 한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문제로 오늘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는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도 문책 경질하기 바란다. 문재인 정부에 아직 희망이 있음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나의 행복이 모두의 행복이 되길 바란다”는 문 대통령의 성탄절 덕담도 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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