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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 노영민은 '孫절매' 직언할 수 있나

바람아님 2019. 1. 28. 09:39
동아일보 2019.01.27. 21:47
김순덕 대기자
손혜원 의원은 억울할 것이다. 투기(投機)란 ‘시세 변동을 예상해 차익을 얻기 위해 하는 매매거래’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엔 나와 있다. 그의 가족과 참모의 가족, 그리고 남편이 이사장인 문화재단에서 목포 구(舊)도심 건물과 땅을 집중 매입한 건 맞다. 그러나 차익을 얻기 위해 산 게 아니면, 투기라고 할 순 없다고 나는 본다.


이곳에 자신의 100억대 나전칠기 컬렉션을 넣은 박물관을 만들어 국가에 기증하는 게 처음부터의 계획이었다는 말도 진심일 것이다. 근대문화유산공간을 ‘힙’하게 살려내 세계적 핫플레이스로 키울 전문가를 투기꾼으로 몰다니, 죽어도 결백을 밝히고야 말겠다는 투지도 이해할 만하다.

그럼에도 자기는 선의(善意)이고 비판은 모두 악의(惡意)라는 손혜원의 태도는, 불편하다. 그 자신감의 근거를 전 국민이 알고 있어서다.


손혜원 힘의 원천엔 ‘언론 기사만 읽지 않는 SNS 사용자(사실상 국민 모두)가 있다’고 의원실은 자부하지만 그것만으론 어림없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괜히 초선 의원의 탈당 자리에 호위무사로 나섰겠나. 성공한 여성의 자기 확신이 아무리 강해도 “투기, 피감기관에 대한 압력 행사, 이해충돌 등 한 가지라도 걸리는 게 있다면 그 자리에서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며 검찰 수사를 자청할 ‘멘탈 갑’은 흔치 않다. 대통령 부인의 절친(절친한 친구)이 아니라면 말이다.


지금의 검찰이 손혜원의 위법 탈법행위를 제대로 밝힐 것으로 보는 국민도 많지 않다. 손혜원은 가족 친지가 목포 부동산을 사들이던 2017년 10월 31일 국정감사에서 “공예 관련 예산을 내년에 어떻게 쓸지…공모전을 해봤으면 하는데…제가 문화재재단과 박물관재단 등 4개 단체장과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발언대로 이듬해 1월 문화재청이 근대역사문화공간 공모에 들어갔고 8월 목포를 선정했지만 손혜원이 “압력을 넣은 바 없다”고 주장하면 그만이다.


부친의 독립유공자 서훈이든, 문화계 인사 문제든 손혜원이 실제로 압력을 가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인상 한번 안 썼어도 그가 대통령 부인의 절친임을 아는 사람들이 알아서 기었다면 공직자의 이해충돌 금지 의무는 무력해진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아는 손혜원이 이를 의식하지 못할 리 없다. 다만 공인의식만 부족한 그는 “공직자로서 처신이 신중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언했고, “지금까진 이익 본 게 없어 공직자로서 이해충돌도 없다”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손혜원은 근대역사문화공간 지원금으로 박물관을 세우고, 기부체납 명분으로 사실상 주인이되 자원봉사자로 기록되는 평생의 명예를 거머쥘 판이다.

권력자 측근이 논란을 일으킨 이번 사태에 대해 청와대는 지난주 “아무리 대통령 배우자의 친구라 할지라도 현역 국회의원이어서 감찰이나 조사 자체가 월권”이라고 굳이 선을 그었다. 검찰 역시 모든 혐의를 덮는 식으로 알아서 처리해버리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는 더 추락할 것이 뻔하다.


정무적 판단에 능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나서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손혜원이 등장하는 순간 사람들은 대통령 부인을 떠올리는 상황이다. 탈당 기자회견 때 손혜원이 원내대표의 어깨에 손을 척 얹는 장면에서 박근혜 대통령 때 남자 비서관이 휴대전화를 셔츠에 닦아 건네자 척 받아드는 최순실이 연상됐다는 소리가 나온다. 그때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최순실을 내치도록 대통령에게 직언했더라면 나라의 명운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손혜원의 문화 사랑, 목포 사랑은 공직자만 아니라면 미담이고 표창감이다. 다만 공인의식이 부족하니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본업으로 돌아가도록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건 비서실장만이 할 수 있다. 조용히 대통령 부인에게 절교를 당부하는 것도 방법이다. 설 연휴 고향 민심은 손혜원과 최순실과 비교하며 악화될 공산이 크다. “손혜원은 안 된다”고 서둘러 손절매(損切賣)하지 않을 경우 숙명여고 출신을 둘러싼 루머가 향후 정권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모양새가 걱정스럽다면 노영민이 빠지면서 공석이 된 중국 대사로 내보내는 건 어떤가. 어차피 전임자처럼 한-중 관계 개선 같은 큰일에 신경 쓸 상황도 아니다. 이참에 손혜원이 중국 나전칠기를 연구한다면 목포에 들어설 나전칠기 박물관의 격이 높아질지 누가 아는가.


김순덕 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