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2.27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나름 화가)
취향·관심 구체화된 공간은 '나'이자 '문화'
진짜 하고 싶은 일 하려면 '내 공간' 있어야
그 공간 유지하려면 나만의 콘텐츠 필요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나름 화가
섬의 내 작업실 '미력창고(美力創考)'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다.
낡은 미역 창고 개조 공사가 너무 오래 걸렸다. 돈도 생각보다 훨씬 많이 들어갔다.
아주 지친다. 매일 섬에 들어간다.
폐선 처리 직전의 낡은 여객선 손님은 거의 매번 나 혼자다. 오늘도 나 혼자 배를 탔다.
요즘 안팎으로 심란한 일들이 겹쳐 마음이 아주 힘들다.
이어폰을 꺼내 슈만의 피아노 콰르텟 '안단테 칸타빌레'를 듣는다.
첼로 소리가 맑고 푸르고 차가운 바다와 참 잘 어울린다.
'행복과 불행은 언제나 함께 온다'는 그의 말처럼 묘하다.
'행복할 때'와 '슬픈 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니 '기쁘다고 너무 날뛰지 말고 슬프다고 처지지도 말라'는
뜻이라 생각하며 위로받는다.
배가 막 출발하려는데 젊은 여인들이 우르르 탔다. 이 배에서는 도무지 볼 수 없었던 우아한 여인들이다.
객실 바닥에 퍼질러 앉기에는 몹시 불편한 옷차림을 한 여인들에게 내가 다 미안해진다.
이어폰을 빼고 가만히 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옆 섬 초등학교의 음악 교사 면접에 간단다.
순간 내 '의식의 흐름'은 지리산 계곡물보다 빨라진다.
'하루 세 번 섬에 가는 배니까 여선생과 마주칠 확률은 33퍼센트 이상이다.
아, 그럼 수염을 길러야 하는 건 아닐까?
배를 타면 일단 스케치북부터 꺼내고 있는 것이 좋겠다. 파이프 담배를 무는 건 어떨까?
젠장, 너무 진부해!'…
옆 섬에서 여인들은 죄다 내렸다. 배에는 다시 나 혼자다.
급쓸쓸해지며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하는 생각에 슬퍼진다.
'지난 50년'은 밀려 살았으니 '앞으로의 50년'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교수를 그만둔 지 벌써 8년째다.
일본에서 미술전문대학을 마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여수로 들어왔다.
다시 여수 남쪽 끝의 섬으로 들어간다며 옆 섬에 여선생이 온다는 소식에 이토록 가슴 설렌다.
도대체 이러는 내 '궁상'의 본질은 뭘까?
'여수는 나비다' /그림=김정운
찾아냈다. '공간 충동'이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음악을 들으려면 '내 공간'이 있어야 한다.
내가 정말 하기 싫은 일, 그러니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일'(미치도록 싫은 일이다),
'저녁마다 TV 채널 돌리며 등장인물 욕하며 늙어가는 것'(아, 이건 정말 끔찍하다)을 피하려면 '내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 허접한 외로움을 담보로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바로 '내 공간'이었다.
'무소유'를 주장하고 실천한 법정 스님은 자신이 평생 버리지 못한 욕심이 하나 있었다고 고백했다.
'깨끗한 빈방'에 대한 욕심이다. '공간 욕심', 즉 '공간 충동'만큼은 법정 스님도 어쩌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독어에 '슈필라움(Spielraum)'이란 단어가 있다.
'놀이(Spiel)'와 '공간(Raum)'이 합쳐진 단어는 우리말로는 '활동의 여지' '여유 공간'으로 번역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다.
한국 사내들이 이토록 분노에 가득 찬 이유는 바로 이 '슈필라움'의 부재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차만 타면 절대 안 비켜주는 거다. 내 앞의 공간을 빼앗기는 것은 '내 존재'가 부정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밤 그 꾀죄죄한 '자연인'을 넋 놓고 보는 거다.
외로움과 궁핍함을 담보로 얻어낸 그들의 '슈필라움'이 부러운 거다.
'자연인' 앞에서는 '그것도 돈 있어야 한다!'는 '게으른 정당화'가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구의 근대 부르주아 출현 이후 생긴 가장 큰 주거상의 변화는 '남자의 방(Herrenzimmer)'의 출현이다.
취향과 관심이 공간으로 구체화되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덴티티는 '공간'으로 확인된다. '공간'이 곧 '나'다. '공간'이 곧 '문화'다.
'공간 충동'을 지속적으로 충족하려면 그 공간에서 추구할 수 있는 의미와 내용이 있어야 한다.
내 나름의 콘텐츠가 있어야 그 공간도 유지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미역 창고'에서 앞으로 10년간 해야 할 일의 계획도 세웠다.
우선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를 번역, 해설하고 각 노래에 맞는 그림을 크게 그리려고 한다.
24개나 되는 곡에 해당하는 그림을 그리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그게 끝나면 슈만의 '시인의 사랑'도 그렇게 할 거다.
이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은 많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둘 다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다.
게다가 난 '마스크'도 된다. 당분간은 큰 문제없다. 외로움도 곧 견딜 만해질 듯하다.
바람만 불어도 귓등이 귀를 덮는 내 친구 문창기가 '섬이 미래'라는 내 말에 흥분해
아무것도 없는 옆 섬 절벽 땅을 덜컥 샀기 때문이다. ('팔랑귀'가 성공한다! 바로 행동한다.)
후배 허태균 교수도 이제 거의 다 넘어왔다.
끝으로 하나 더. 천국에서는 '바닷가 해 지는 이야기'만 한다.
'남 욕하는 이야기' '돈 버는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여수 남쪽 섬의 내 '미력창고' 앞에서는 매일 해가 진다.
동해 바다나 제주 바다의 석양과는 차원이 다르다. 수평선이 한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는 처음에만 멋있다.
'와' 했다가는 이내 심드렁해진다. 눈길을 둘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비처럼 생긴 여수'의 바다는 다르다. 섬들이 무지하게 많아 시선을 멈추기가 힘들다.
갯벌에 물이 드나드는 모습만 보고 있어도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난 천국에서도 말이 참 많을 것 같다!
('김정운의 여수만만'은 오늘로 마지막이다.
그동안 '뜬금없는 여수이야기'를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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