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氣칼럼니스트/김순덕칼럼

[김순덕의 도발] 공부 잘한 여자들이 왜 회사에선 죽을 쑬까

바람아님 2019. 3. 8. 09:23

동아일보 2019.03.07. 14:00


먼저 오해 마시길. 내가 학교 때 공부 잘했다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죽 쑤고 있다는 얘기도 아니다. 이건 그냥 이 몸이 뉴욕타임스를 보다 눈이 번쩍 띄어서 빌려온 제목으로 봐주시면 고맙겠다.


여학생이 공부 잘하는 건 세계적 현상

학교 공부는 대개 여학생들이 더 잘한다. 중고교 뺑뺑이에서 남녀공학을 받으면 딸 있는 집은 좋아하지만(남학생들이 내신 밑바닥을 깔아준다나) 아들 둔 집에선 곡소리가 난다. 성별 대학진학률도 2017년 남자 65.3%, 여자 72.7%로 벌어졌다.

미국은 더하다. 2018년 전체 학위 취득자 중 여성이 학사 57.3%, 석사 58.8%, 박사 52.9%였다. 퍼센트로 쓰니 감이 안 오는가. 남자 학사·석사·박사 100명당 여자가 각각 134명, 143명, 112명이다(똑똑한 여자들이 결혼하기 힘든 주요인이기도 하다)!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미국서 대학 나온 여자가 남자보다 많아진 것이 1982년부터였다. 석사는 87년부터 추월했다. 그럼에도 S&P 500 기업 중 여자 최고경영자(CEO)는 5%에 불과하다. 그 똑똑한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왜 사회에 나가선 학교 때만큼 못 하는 걸까.


여자는 완벽주의를 추구한다

성차별? 유리천장? 육아 부담? 그런 뻔한 얘기를 하려면 시작하지도 않았다.

열심히, 성실하게, 완벽하게! 학교에서 여자가 남자를 앞설 수 있었던 이런 특성들이 사회에선 되레 여자들 발목을 잡는다는 게 임상심리학자 리사 다무어의 주장이다.

‘SKY캐슬’을 떠올리면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예서와 공동수석으로 고교에 입학한 남학생 우주는 성적이 좀 떨어져도 여유만만, 외모는 물론 성격도 좋은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다.

드라마 ‘SKY캐슬’에서 공부 잘하는 여학생 예서와 성적은 떨어져도 성격 좋은 남학생 우주. 출처 드라마 SKY캐슬 캡처

반면 예서는 1등 아니면 의미가 없는, 재수 없이 잘난 여자애다. 예서와 전교 1, 2등을 다투는 혜나는 성취욕도 예서 뺨친다. 이를 굳이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특히 학업에서 자기 지향의 완벽주의가 높다’가 된다(논문 ‘남녀청소년의 완벽주의가 사회불안에 비치는 영향’).


남녀 차이는 Competence 아닌 Confidence Gap

이런 여자가 사회에 나가면 왜 실력을 발휘 못 하느냐고? 바로 그 안달복달, 악착같은 완벽주의 때문이다. 이건 영어로 해야 어감이 사는데, 남녀 차이는 컴피턴스(competence·능력)가 아니라 컨피던스(confidence)에 있다는 거다. 컨피던스 갭(confidence gap)!

컴피턴스와 컨피던스는 겉에선 구분하기 어렵다. SKY캐슬의 우주 같은 남자는 너무 드라마틱하다. 실제론 남자는 그냥 자신만만한 것뿐인데 능력 있다고 인정받아 승진 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여자는 난 아니야, 이걸로는 부족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면서 늘 자신 없어 한다. 그 바람에 있는 실력마저 보여줄 기회를 잃고 남자들한테 밀린다는 거다.

우리나라는 모르겠고, 외국엔 이걸 확인해주는 연구 결과가 참 많다. 심지어 최근엔 ‘왜 그렇게 무능한 남자들이 리더가 되는가(Why Do So Many Incompetent Men Become Leaders)’라는 책까지 나왔다(남자가 썼음).


남자의 자신감이 리더십으로 오인돼

심리학자인 토마스 차모로-프레무지크(Tomas Chamorro-Premuzic)는 40개국 산업계 리더들을 조사한 결과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거만하고, 남을 잘 조종하며,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했다. 문제는 이것이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종종 오인된다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무능한 남자들이 리더가 되는가’라는 책(오른쪽)을 쓴 심리학자인 토마스 차모로-프레무지크. 출처 토마스의 홈페이지

추락하는 정·재계 리더를 보시라. 오만, 남을 조종하는 교활함, 위험으로 돌진하는 무모함. 리더를 정상에 올려놓았던 바로 그 성향 때문에 망조가 들지 않던가.

그래서 다무어는 여학생들 부모에게 “너무 악착같이 공부하도록 두지 말라”고 조언했다. 매번 열심히, 성실하게, 완벽하게 해야만 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 믿음을 키우기 어렵다.

남자들은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는 전교 1등을 해도, 부장이 돼도 이 자리가 내 것이 아니고, 언제 굴러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내 앞에 있는 남자가 ‘허당’일 수도

드라마 속 예서의 부모들은 개과천선했다. 하지만 나는 똑같이 조언했다가 뒷감당할 자신 없다(자신감 부족 맞다 ㅜㅜ). 자신감이라는 것도 근육처럼 키울 수 있다는데 그것도 잘 모르겠다(위험감수 잘 못 한다 ㅠㅠ).


▲ 캡틴 마블 역의 배우 브리 라슨은 “젊은 여성들에게 자신감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다만, 지금 내 앞에서 잘난 척하는 저 남자도 실은 8할이 ‘허당’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사는 데 도움이 될 듯싶다.

때로는 착한 것보다 착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듯, 자신 있는 것보다 자신 있어 보이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다. 마침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다.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