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9.02.18. 03:00
막강 정보경찰 수사권 결합되면, 일제 뺨치는 '칼 찬 순사' 우려
검찰은 정치적 수사에 저항해야
지난주 그는 ‘5·18 망언 3인’의 징계를 결정한 김영종 윤리위원장에 대해 “평검사 시절 현직 대통령 앞에서 대통령의 과거 잘못된 행위를 당당히 지적해 ‘이쯤 가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말을 들었던 분”이라고 했다. 다시 들여다보니 그때도 문제는 검찰개혁이었다.
평검사들은 첫 검찰 간부 인사 직후 참여정부에 과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줄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따졌다. 검찰의 중립성을 흔드는 것은 권력이라는 의미로 김영종 검사는 “노 대통령도 당선 전 부산동부지청장에게 청탁전화 한 적이 있다”고 폭로했다. 그러자 대통령이 “막가자는 거지요”라며 노기(怒氣)를 보인 것이다.
당시 노 대통령은 “검찰은 권력기관이기 때문에 문민통제가 필요하다”고 코드인사를 강조했다. 이런 믿음은 문재인 정부에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2017년 5월 28일까지 3쇄가 나온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는 “검찰은 행정부인 이상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을 수행해야 하고, 이를 위한 방법은 인사권과 지휘권밖에 없다”며 이는 정치적 중립과 관련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사 앞에 장사가 없는 법이다.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댓글 수사 와중에 박근혜 정부에서 불명예 사퇴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도 “정권의 눈치를 보며 권력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하는 것은 인사권 때문”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권력이 말을 잘 들으면 승진시키고 안 들으면 좌천시키는 인사로는 ‘정치검찰’을 키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
채동욱 사태에 반발해 좌천됐다 지금은 ‘적폐 수사’에 온몸을 던지고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차기 또는 차차기 검찰총장으로 주목받는 것만 봐도 안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에 대해 문 대통령이 ‘자신의 행위가 수사 대상’이라고 한 발언은 검찰 가이드라인으로 적용되는 조짐이다. 결국 정권을 둘러싼 비리 수사에 검찰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행태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얘기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권력으로부터 검찰의 중립성을 어떻게 보장하느냐에 맞춰져야 옳다. 15일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는 여기 비춰 보면 턱없이 미흡하다. 문 대통령은 “올해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비뚤어진 권력기관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버리는 원년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 말에 반대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검찰에선 “친일 잔재를 청산하겠다면서도 오히려 전횡을 부리는 것이 현 정부”라는 거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실이 최근 공개한 경찰청 정보국 정보2과 업무보고를 보면 현 정부 1년간 청와대 요청으로 정보경찰들이 수행한 인사검증이 무려 4312건이었다. 일제강점기 ‘칼 찬 순사’처럼 정보경찰들이 법적 근거도 없이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 및 복무 기강’, 언론 종교와 사회단체 등 민간 영역의 민심 동향까지 감시했다는 내용은 공포스럽다. 참여연대가 “인권 침해, 민간인 사찰 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해 대대적인 개혁이 단행돼야 할 사안”이라고 논평까지 냈을 정도다.
청와대가 내놓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 등의 개혁안대로 검찰의 경찰 통제도 없이 경찰 정보권과 수사권이 결합한다면, 일제강점기처럼 ‘칼 찬 순사’가 활보하는 거대한 경찰국가가 탄생할 공산이 크다. 중국처럼 전 국민의 생각과 행동이 감시받는 ‘감시 자본주의’로 변질될 수도 있다.
검찰이 정권의 주구(走狗)로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하지 않으려면 ‘검찰을 생각한다’를 봤으면 한다. 저자들은 노 대통령의 비극을 검찰 탓으로 돌리며 ‘참여정부가 끝난 뒤 검찰이 충분히 정치적으로 중립화되었다면 반대파 제거를 위한 정치적 수사에 저항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에는 헌법과 법률, 인권이라는 무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은 지금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국민의 검찰’로 살아남으려면 정치적 수사에는 헌법과 법률, 인권의 무기를 쳐들고 저항하기 바란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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