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9-02-13 14:00
“피라미드를 보고 높이나 풍광을 쓰면 잘해야 기행문이다. 왜 고대 이집트는 피라미드를 만들었을까. ‘왜’를 물으면 기사의 차원이 달라진다. 이집트문명을 파고들게 되는 거다.”
한국의 석학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오래전 우리 회사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다른 내용은 다 잊어먹었는데 이 대목만은 생생하다. 그 뒤론 내 글이든, 남의 글이든 ‘왜’를 쓰지 않은 글은 밍밍하고 답답했다.
이젠 피라미드가 왜 만들어졌는지 너무 많이 알려져 내가 더 쓸 말은 안타깝게도 없는 듯하다. ‘사실 피라미드 자체는 사자(死者)가 영생을 누리려는 헛된 허영심에서 만든 약간 어처구니없는 유적’. ‘문명 이야기’를 쓴 윌 듀랜트의 평가는 심플하고도 명쾌하다.
군부독재로 귀결된 ‘이집트의 봄’
내 관심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다른 곳 다른 인종은 고인돌이나 매만지던 5000년 전, 이토록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나라가 이집트였다. 그 파라오의 왕국이 어떻게 멸망해 2000년 이상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일까.
1952년 쿠데타로 공화국을 세운 뒤 군부독재를 계속한 것까진 이해할 수도 있다(우리도 겪었으니까). 2011년 튀니지에 이어 ‘아랍의 봄’을 만개시킨 이집트가 어떻게 1년 만에 다시 군부독재를 불러들일 수 있단 말인가.
구글 직원인 와엘 고님이 경찰에 맞아 죽은 청년을 추모하는 코너를 페이스북에 만든 것이 혁명의 시작이었다. 2011년 1월 25일 ‘경찰의 날’, 광장엔 경찰의 가혹행위를 규탄하는 수만 명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5선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다음 대선에 아들을 내보내 대통령직을 물려줄 참이었다. 28일 금요일 예배 후 벌어질 시위를 막으려 전날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불통시키는 꼼수를 부렸지만 악수(惡手)였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진 시민들이 꾸역꾸역 시내로 몰려온 것이다.
국민을 또 분노시킨 대통령의 적폐청산
시민혁명의 관건은 군(軍)이다. 대규모 탈옥과 약탈 사태가 터지고, 친정부와 반정부 시위대는 유혈 충돌했다. 그러나 군은 시민에게 발포하지 않았다. 결국 18일 만인 2월 11일 무바라크는 손을 들었다.
군 최고위원회(SCAF)가 권력을 맡아 개헌과 총선이 실시됐다. 2012년 6월 탄생한 최초의 민선 대통령은 무슬림형제단 계열 정당인 자유정의당의 무함마드 무르시였다.
대체로 여기까지 기억하고 넘어간 독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집트의 봄’은 튀니지와 달리 아름답게 마무리되지 못했다.
적폐 청산! 무르시는 혁명세력에 대한 전임 정권의 범죄를 재조사하겠다며 대통령 자신에게 초법적 권한을 부여했다. 11·22 헌법선언이다. 이슬람 권력을 강화한 건 물론이다.
軍은 진정 국민의 편이었나
이젠 이란처럼 이슬람독재로 가겠단 말이냐. 경제난과 부정부패까지 계속되자 대통령 취임 1년인 2013년 6월 30일에 맞춰 퇴진 요구 시위가 격화됐다. 마침내 군이 나섰고 압둘팟타흐 시시 국방장관은 무르시를 연금했다.
최고헌법재판소장이 임시대통령에 취임해 새 정부에 주단을 깔아주었다. 최고행정법원은 자유정의당 해산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2014년 6월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이 군복을 벗은 시시다. 자그마치 96.91%의 압도적 지지였다. 이유가 뭔지 아는가. 친(親)무르시 세력의 대선 보이콧이다(그래서 야당의 보이콧은 바보짓이라는 거다).
투표율은 50%도 안 됐지만 당선은 당선이다. 시시는 신헌법에 따라 선거법을 고쳐 우호적 의회를 구성했다. 이들 착한 의원들이 2018년 시시가 재선에 성공하자 바로 3선 개헌 채비에 들어갔다.
카이로대학 석사 가이드 “왕국이 공화국보다 낫다”
이번 여행을 안내해준 바다위 아나니는 카이로대학에서 고대 이집트의 유일한 여왕 하트셉수트를 전공한 석사 출신이었다(청년실업률 33%인 이 나라에선 고용창출을 위해 현지인 가이드를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
그도 2011년 카이로 도심 타흐리르 광장에서 무바라크 퇴진을 외쳤다. 그러나 민선 대통령을 탄생시킨 지 1년도 안 돼 국민은 쿠데타를 요구했고, 군은 응답했다.
그럼 민주주의는 개뿔이냐? 내가 심통 맞게 묻자 바다위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왕국이 공화국보다 낫다”고 말했다. 무능한 정치인보다는 태양신 같은 파라오가 차라리 낫다는 의미였다. 그 심정, 이해는 한다.
스트롱맨을 원하는 밀리터리 DNA
‘아랍의 봄’ 이후의 반동, 무르시 퇴진을 지켜본 뉴욕타임스 특파원 데이비드 커크패트릭은 “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 편에서 개입해달라고 국방장관을 쳐다보기 시작했다”고 썼다. 지난해 나온 ‘군의 손아귀에’라는 책에서다.
그렇다고 쿠데타를 원한 건 아니라고 시민들은 주장했다고 한다. 웃기는 소리다. 그럼 군이 총을 들고 나와서 춤을 추겠는가.
“폭력과 테러에 맞설 권한을 위임해달라”는 당시 국방장관 시시의 호소에 수백만 시민은 지지시위까지 벌였다. 파라오의 역사 속에서 내리 군부정부 아래 살아온 이집트 사람들에게 밀리터리 DNA가 박힌 걸까. 8월 14일 군은 진압에 나섰고 1000여 명의 시민들이 희생됐다.
그렇게 정권을 잡은 시시 정권은 과거 군부독재 뺨친다. 삼권분립(三權分立)은 사라졌다. 비판언론도 거의 없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도 스트롱맨을 좋아해 시시를 견제할 파워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13일 596명 전 의원이 참석하는 국회 개헌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이 가뿐히 동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소한 2024년까지 군부독재가 계속되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선출된 권력 흔들면 민주주의 흔들린다?
이집트 국민이 다음 선거까지 기다렸다 무르시 정권을 응징했다면 다시 군부독재 밑에 신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선출된 정부를 자꾸 흔들어대다간 민주주의까지 박살난다는 게 리버럴신문 뉴욕타임스의 지적이다.
하하. 순진한 소리다. 군을 불러낼 단초를 제공한 것은 무슬림형제단이었다. 살뜰하게 챙겨주는 복지서비스에 홀딱 넘어갔지만 이들은 자신만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권위주의적, 폐쇄적 근본주의 집단이다.
고대 이집트의 멸망도 종교 때문이라고 듀랜트는 분석했다. 이슬람교는 아니지만 거대한 신전에 공물을 가득가득 채우느라 백성은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신을 모시는 신관이라고 성스럽기만 한 게 아니다. 그들도 절대권력에 부패하는 인간이었다.
이슬람 근본주의 무르시는 초헌법적 행정명령으로 적폐청산을 하겠다며 사법부와 전쟁까지 불사했다. 3년 더 지켜보기만 했다면 이집트를 이란 같은 신정(神政)국가로 체제변혁시켜 중동과 아프리카의 지정학을 확 바꿔놨을지 모를 일이다.
여기서 ‘탈레반’으로 불리던 청와대 운동권 참모들을 떠올리고 싶진 않다.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가 넘으면 쿠데타 시도조차 일어날 수 없다고 새뮤얼 헌팅턴은 강조한 바 있다. 아무리 종교재판처럼 적폐청산을 몰아붙인대도 이집트 같은 사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다만 극우적 국가주의의 세계적 부상을 지적한 미 스탠퍼드대 신기욱 교수의 신동아 2월호기고는 소개하고 싶다.
dobal@donga.com
한국의 석학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오래전 우리 회사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다른 내용은 다 잊어먹었는데 이 대목만은 생생하다. 그 뒤론 내 글이든, 남의 글이든 ‘왜’를 쓰지 않은 글은 밍밍하고 답답했다.
이젠 피라미드가 왜 만들어졌는지 너무 많이 알려져 내가 더 쓸 말은 안타깝게도 없는 듯하다. ‘사실 피라미드 자체는 사자(死者)가 영생을 누리려는 헛된 허영심에서 만든 약간 어처구니없는 유적’. ‘문명 이야기’를 쓴 윌 듀랜트의 평가는 심플하고도 명쾌하다.
군부독재로 귀결된 ‘이집트의 봄’
내 관심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다른 곳 다른 인종은 고인돌이나 매만지던 5000년 전, 이토록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나라가 이집트였다. 그 파라오의 왕국이 어떻게 멸망해 2000년 이상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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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ixabay
1952년 쿠데타로 공화국을 세운 뒤 군부독재를 계속한 것까진 이해할 수도 있다(우리도 겪었으니까). 2011년 튀니지에 이어 ‘아랍의 봄’을 만개시킨 이집트가 어떻게 1년 만에 다시 군부독재를 불러들일 수 있단 말인가.
구글 직원인 와엘 고님이 경찰에 맞아 죽은 청년을 추모하는 코너를 페이스북에 만든 것이 혁명의 시작이었다. 2011년 1월 25일 ‘경찰의 날’, 광장엔 경찰의 가혹행위를 규탄하는 수만 명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5선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다음 대선에 아들을 내보내 대통령직을 물려줄 참이었다. 28일 금요일 예배 후 벌어질 시위를 막으려 전날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불통시키는 꼼수를 부렸지만 악수(惡手)였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진 시민들이 꾸역꾸역 시내로 몰려온 것이다.
국민을 또 분노시킨 대통령의 적폐청산
시민혁명의 관건은 군(軍)이다. 대규모 탈옥과 약탈 사태가 터지고, 친정부와 반정부 시위대는 유혈 충돌했다. 그러나 군은 시민에게 발포하지 않았다. 결국 18일 만인 2월 11일 무바라크는 손을 들었다.
군 최고위원회(SCAF)가 권력을 맡아 개헌과 총선이 실시됐다. 2012년 6월 탄생한 최초의 민선 대통령은 무슬림형제단 계열 정당인 자유정의당의 무함마드 무르시였다.
대체로 여기까지 기억하고 넘어간 독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집트의 봄’은 튀니지와 달리 아름답게 마무리되지 못했다.
적폐 청산! 무르시는 혁명세력에 대한 전임 정권의 범죄를 재조사하겠다며 대통령 자신에게 초법적 권한을 부여했다. 11·22 헌법선언이다. 이슬람 권력을 강화한 건 물론이다.
軍은 진정 국민의 편이었나
이젠 이란처럼 이슬람독재로 가겠단 말이냐. 경제난과 부정부패까지 계속되자 대통령 취임 1년인 2013년 6월 30일에 맞춰 퇴진 요구 시위가 격화됐다. 마침내 군이 나섰고 압둘팟타흐 시시 국방장관은 무르시를 연금했다.
2013년 7월 이집트 시민들이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광장에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의 축출을 반기며 환호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최고헌법재판소장이 임시대통령에 취임해 새 정부에 주단을 깔아주었다. 최고행정법원은 자유정의당 해산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2014년 6월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이 군복을 벗은 시시다. 자그마치 96.91%의 압도적 지지였다. 이유가 뭔지 아는가. 친(親)무르시 세력의 대선 보이콧이다(그래서 야당의 보이콧은 바보짓이라는 거다).
투표율은 50%도 안 됐지만 당선은 당선이다. 시시는 신헌법에 따라 선거법을 고쳐 우호적 의회를 구성했다. 이들 착한 의원들이 2018년 시시가 재선에 성공하자 바로 3선 개헌 채비에 들어갔다.
카이로대학 석사 가이드 “왕국이 공화국보다 낫다”
2011년 2월 ‘아랍의 봄’ 시위로 퇴진한 5선 대통령인 호스니 무바라크(왼쪽)와 2012년 6월 최초의 민선 대통령으로 선출된 무함마드 무르시(가운데), 2014년 대선에서 당선된 압둘팟타흐 시시. 동아일보 DB
이번 여행을 안내해준 바다위 아나니는 카이로대학에서 고대 이집트의 유일한 여왕 하트셉수트를 전공한 석사 출신이었다(청년실업률 33%인 이 나라에선 고용창출을 위해 현지인 가이드를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
그도 2011년 카이로 도심 타흐리르 광장에서 무바라크 퇴진을 외쳤다. 그러나 민선 대통령을 탄생시킨 지 1년도 안 돼 국민은 쿠데타를 요구했고, 군은 응답했다.
그럼 민주주의는 개뿔이냐? 내가 심통 맞게 묻자 바다위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왕국이 공화국보다 낫다”고 말했다. 무능한 정치인보다는 태양신 같은 파라오가 차라리 낫다는 의미였다. 그 심정, 이해는 한다.
스트롱맨을 원하는 밀리터리 DNA
‘아랍의 봄’ 이후의 반동, 무르시 퇴진을 지켜본 뉴욕타임스 특파원 데이비드 커크패트릭은 “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 편에서 개입해달라고 국방장관을 쳐다보기 시작했다”고 썼다. 지난해 나온 ‘군의 손아귀에’라는 책에서다.
그렇다고 쿠데타를 원한 건 아니라고 시민들은 주장했다고 한다. 웃기는 소리다. 그럼 군이 총을 들고 나와서 춤을 추겠는가.
“폭력과 테러에 맞설 권한을 위임해달라”는 당시 국방장관 시시의 호소에 수백만 시민은 지지시위까지 벌였다. 파라오의 역사 속에서 내리 군부정부 아래 살아온 이집트 사람들에게 밀리터리 DNA가 박힌 걸까. 8월 14일 군은 진압에 나섰고 1000여 명의 시민들이 희생됐다.
그렇게 정권을 잡은 시시 정권은 과거 군부독재 뺨친다. 삼권분립(三權分立)은 사라졌다. 비판언론도 거의 없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도 스트롱맨을 좋아해 시시를 견제할 파워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13일 596명 전 의원이 참석하는 국회 개헌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이 가뿐히 동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소한 2024년까지 군부독재가 계속되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대통령 3선을 노리는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 카이로=AP 뉴시스
선출된 권력 흔들면 민주주의 흔들린다?
이집트 국민이 다음 선거까지 기다렸다 무르시 정권을 응징했다면 다시 군부독재 밑에 신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선출된 정부를 자꾸 흔들어대다간 민주주의까지 박살난다는 게 리버럴신문 뉴욕타임스의 지적이다.
하하. 순진한 소리다. 군을 불러낼 단초를 제공한 것은 무슬림형제단이었다. 살뜰하게 챙겨주는 복지서비스에 홀딱 넘어갔지만 이들은 자신만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권위주의적, 폐쇄적 근본주의 집단이다.
고대 이집트의 멸망도 종교 때문이라고 듀랜트는 분석했다. 이슬람교는 아니지만 거대한 신전에 공물을 가득가득 채우느라 백성은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신을 모시는 신관이라고 성스럽기만 한 게 아니다. 그들도 절대권력에 부패하는 인간이었다.
이슬람 근본주의 무르시는 초헌법적 행정명령으로 적폐청산을 하겠다며 사법부와 전쟁까지 불사했다. 3년 더 지켜보기만 했다면 이집트를 이란 같은 신정(神政)국가로 체제변혁시켜 중동과 아프리카의 지정학을 확 바꿔놨을지 모를 일이다.
“포퓰리즘 못 떨치면 극우정권 온다”
여기서 ‘탈레반’으로 불리던 청와대 운동권 참모들을 떠올리고 싶진 않다.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가 넘으면 쿠데타 시도조차 일어날 수 없다고 새뮤얼 헌팅턴은 강조한 바 있다. 아무리 종교재판처럼 적폐청산을 몰아붙인대도 이집트 같은 사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다만 극우적 국가주의의 세계적 부상을 지적한 미 스탠퍼드대 신기욱 교수의 신동아 2월호기고는 소개하고 싶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기간 내내 과거와 싸우면서 포퓰리즘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면 사회분열과 대립만 커지고 경제는 파탄날 것이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는 무능한 좌파 정권이라는 오명을 피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로 인한 대가는 대척점에 선 극우 정권의 탄생이 될지도 모른다.’
대선까지 3년이 너무 긴가. 합법적 방법은 있다.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현 정권 출범에 이집트 사법부가 적잖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시시의 독재를 막을 자는 양심적 법관들밖에 없다고 포린어페어즈지는 강조했다. 한국은 어떤가.
대선까지 3년이 너무 긴가. 합법적 방법은 있다.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현 정권 출범에 이집트 사법부가 적잖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시시의 독재를 막을 자는 양심적 법관들밖에 없다고 포린어페어즈지는 강조했다. 한국은 어떤가.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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