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9-02-01 14:35
뮤지컬 ‘마틸다’는 경이롭다. 마틸다 역을 맡은 열 살 안팎 꼬마 여주인공의 당찬 노래와 연기를 비롯해 아이들(아이돌이 아니다) 뮤지컬 배우들이 무대를 장악하는 걸 보면, 쟤들이 자라서 전부 방탄소년단이 되는 게 아닐까 경탄을 금치 못한다.
기자(記者)라는 종족의 못 말리는 속성이, 보면 쓰고 싶다는 거다. 작년 9월부터 공연해 볼만한 사람은 다 본 작품이지만 마틸다의 피아노 같은 목소리(그냥 부드러운 소리가 아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처럼 맑고도 강한 터치가 느껴지는 소리다)가 계속 맴돌아 안 쓰고는 못 배기겠다.
노래만큼 놀라운 건 번역이다.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가 만든 뮤지컬을 아시아에선 처음, 비(非)영어권에서 처음으로 공연하면서 혀와 귀에 찰싹 달라붙게 번역한 내공은 부러울 정도다. 아이들이 영어 알파벳이 적힌 큐브를 순서대로 교문에 끼워 넣으며 부르는 노래 스쿨송을 “오 그랬쩌요 에이(A)구. 근데 지금부터 삐(B)지고 울지는 마라. 반항할 시(C) 죽이는 블랙코메디(D)…” 식으로 우리말로 기막히게 바꿔냈다.
마틸다 부모도 아들을 기대했다
네 살 반부터 시작해 여섯 살짜리 초등학생으로 그려지는 마틸다는 세살 때 신문으로 글자를 배운 영재 소녀다. 사기꾼 기질이 농후한 아빠와 춤에 미친 엄마는 마틸다를 ‘불량품’ 취급하는데 학대하는 방법이 우리와 정반대다. 책을 보지 말고 TV를 보라는 거다!
마틸다가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시작한 2018년이 영국서 이 뮤지컬이 태어난 지 30년 되는 해였다(마침 이 공연을 제작한 신시컴퍼니도 30년이었다^^). ‘말괄량이 삐삐’가 스웨덴 여자 어린이들의 영원한 롤 모델이듯(사실은 삐삐를 읽고, TV에서 보며 큰 여성들의 로망으로 봐야 한다), 마틸다는 영국 여성들의 어릴 적 꿈과 미래였고, 지금은 향수의 대상이 돼 있었다. 마치 내가 어릴 때 만화책 ‘캔디’를 보며 행복했던 것처럼.
‘마틸다는 지금쯤 무엇이 되어 있을까’라는 영국 가디언지 기사를 보면서 나는 ‘82년생 김지영’을 떠올렸다. 마틸다의 작가 로알드 달이 1986년 12월 막내딸 루시에게 “아빠가 눈으로 물건을 움직이는 꼬마소녀 얘기를 쓰고 있단다”라고 편지를 보냈고 그때 책 속의 마틸다는 네 살 반이었으니, 굳이 따지자면 마틸다도 1982년생이다(라고 나는 주장을 할 참이다).
김지영처럼 기죽지 않은 이유
가디언은 마틸다가 영재였으므로 30년 후인 2018년 천체물리학자가 되거나, 모험심을 따라 탐험가, 아니면 최소한 도서관 사서가 됐을 것이라는 재미난 기사를 썼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건 김지영의 부모처럼 마틸다의 아빠도 아들을 기대했고, 엄마 역시 아들과 딸을 차별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마틸다는 기죽지 않았다. ‘똘끼’라고 번역한 노래 Naughty를 보자.
“로미오와 줄리엣. 일찌감치 정해진 운명이었대…왜 쓰여진 대로 꼭 이렇게 살지?” 그러면서 주제가 나온다. “불평하고 또 부당할 때 한숨쉬며 견디는 건 답이 아냐…옳지 않아!…그 누구도 나 대신에 해주지 않지. 내 손으로 바꿔야지, 나의 얘기. 때론 너무 필요해. 약간의 똘끼!”
안타깝게도 우리의 김지영은 그렇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김지영이 살짝 벗고 있던 실내화를 남자 짝꿍이 냅다 걷어차 벌을 받게 됐는데도 김지영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 못하고 울기만 했다. “김지영이 아니라 남자짝꿍이 그런 것”이라고 말해준 건 다른 여자아이였다.
김지영이 마틸다만큼 똑똑하지 않았다거나, 책을 줄줄 읽지 않았다거나 같은 얘기는 하지 말자. 다만 마틸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어린이라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 꼰대 아니거든요…
이야기는 상상이다. 꿈과 기대, 희망이자 미래가 여기서 나온다. 아무리 현실이 남루해도 이야기를 꾸밀 줄 아는 사람은 부자다. 물론 과대망상까지 가면 위험하지만 반지하방에서 살아도 ‘여기는 궁전이야’ 상상할 수 있다면 그 아이는 여왕처럼 살 수 있다. 아빠의 모자에 접착제를 발라서 복수하고, 교장의 불의에 맞설 수 있는 마틸다의 힘도 여기서 나온다.
뮤지컬 ‘마틸다’는 경이롭다. 마틸다 역을 맡은 열 살 안팎 꼬마 여주인공의 당찬 노래와 연기를 비롯해 아이들(아이돌이 아니다) 뮤지컬 배우들이 무대를 장악하는 걸 보면, 쟤들이 자라서 전부 방탄소년단이 되는 게 아닐까 경탄을 금치 못한다.
▲뮤지컬 ‘마틸타’ 중 When I grow up
신시컴퍼니 제공
노래만큼 놀라운 건 번역이다.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가 만든 뮤지컬을 아시아에선 처음, 비(非)영어권에서 처음으로 공연하면서 혀와 귀에 찰싹 달라붙게 번역한 내공은 부러울 정도다. 아이들이 영어 알파벳이 적힌 큐브를 순서대로 교문에 끼워 넣으며 부르는 노래 스쿨송을 “오 그랬쩌요 에이(A)구. 근데 지금부터 삐(B)지고 울지는 마라. 반항할 시(C) 죽이는 블랙코메디(D)…” 식으로 우리말로 기막히게 바꿔냈다.
마틸다 부모도 아들을 기대했다
네 살 반부터 시작해 여섯 살짜리 초등학생으로 그려지는 마틸다는 세살 때 신문으로 글자를 배운 영재 소녀다. 사기꾼 기질이 농후한 아빠와 춤에 미친 엄마는 마틸다를 ‘불량품’ 취급하는데 학대하는 방법이 우리와 정반대다. 책을 보지 말고 TV를 보라는 거다!
그렇다고 기죽을 마틸다가 아니다. 마틸다는 동네 도서관에 다니면서 사서 선생님과 친해져 ‘동물농장’, ‘노인과 바다’, ‘오만과 편견’, ‘분노의 포도’ 같은 소설을 섭렵한다. 에너지 충만의 마틸다가 초등학교에서 맞닥뜨린 인물은 투포환 선수 출신의 폭군 교장 미스 트런치불. 마틸다는 초능력을 발휘해 교장을 물리치고 천사 같은 담임선생님을 구해낸다는 깜찍한 스토리다.
트런치불 교장과 마틸타. 신시컴퍼니 제공
마틸다가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시작한 2018년이 영국서 이 뮤지컬이 태어난 지 30년 되는 해였다(마침 이 공연을 제작한 신시컴퍼니도 30년이었다^^). ‘말괄량이 삐삐’가 스웨덴 여자 어린이들의 영원한 롤 모델이듯(사실은 삐삐를 읽고, TV에서 보며 큰 여성들의 로망으로 봐야 한다), 마틸다는 영국 여성들의 어릴 적 꿈과 미래였고, 지금은 향수의 대상이 돼 있었다. 마치 내가 어릴 때 만화책 ‘캔디’를 보며 행복했던 것처럼.
‘마틸다는 지금쯤 무엇이 되어 있을까’라는 영국 가디언지 기사를 보면서 나는 ‘82년생 김지영’을 떠올렸다. 마틸다의 작가 로알드 달이 1986년 12월 막내딸 루시에게 “아빠가 눈으로 물건을 움직이는 꼬마소녀 얘기를 쓰고 있단다”라고 편지를 보냈고 그때 책 속의 마틸다는 네 살 반이었으니, 굳이 따지자면 마틸다도 1982년생이다(라고 나는 주장을 할 참이다).
김지영처럼 기죽지 않은 이유
가디언 홈페이지 캡처
가디언은 마틸다가 영재였으므로 30년 후인 2018년 천체물리학자가 되거나, 모험심을 따라 탐험가, 아니면 최소한 도서관 사서가 됐을 것이라는 재미난 기사를 썼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건 김지영의 부모처럼 마틸다의 아빠도 아들을 기대했고, 엄마 역시 아들과 딸을 차별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마틸다는 기죽지 않았다. ‘똘끼’라고 번역한 노래 Naughty를 보자.
▲뮤지컬 ‘마틸타’ 중 Naughty
“로미오와 줄리엣. 일찌감치 정해진 운명이었대…왜 쓰여진 대로 꼭 이렇게 살지?” 그러면서 주제가 나온다. “불평하고 또 부당할 때 한숨쉬며 견디는 건 답이 아냐…옳지 않아!…그 누구도 나 대신에 해주지 않지. 내 손으로 바꿔야지, 나의 얘기. 때론 너무 필요해. 약간의 똘끼!”
안타깝게도 우리의 김지영은 그렇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김지영이 살짝 벗고 있던 실내화를 남자 짝꿍이 냅다 걷어차 벌을 받게 됐는데도 김지영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 못하고 울기만 했다. “김지영이 아니라 남자짝꿍이 그런 것”이라고 말해준 건 다른 여자아이였다.
김지영이 마틸다만큼 똑똑하지 않았다거나, 책을 줄줄 읽지 않았다거나 같은 얘기는 하지 말자. 다만 마틸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어린이라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 꼰대 아니거든요…
이야기는 상상이다. 꿈과 기대, 희망이자 미래가 여기서 나온다. 아무리 현실이 남루해도 이야기를 꾸밀 줄 아는 사람은 부자다. 물론 과대망상까지 가면 위험하지만 반지하방에서 살아도 ‘여기는 궁전이야’ 상상할 수 있다면 그 아이는 여왕처럼 살 수 있다. 아빠의 모자에 접착제를 발라서 복수하고, 교장의 불의에 맞설 수 있는 마틸다의 힘도 여기서 나온다.
소설, 그것도 답답한 여성현실을 사실적으로 다룬 소설이어서 그렇겠으나 82년생 김지영은 참 답답하다. 이렇게 쓰면 ‘꼰대’라는 소리나 듣는다는 걸 잘 아는데, 그래도 가슴에 손을 얹고 되짚어보라. 김지영은 무엇이 되겠다는 꿈도 없었고, 어떻게 극복하겠다는 의지도 없다. 그저 할머니 탓, 아버지 탓, 남편 탓, 사회 탓이다.
마틸다는 책을 보며 상상력을 키웠다. 담임선생님을 구한 뒤 마틸다의 초능력은 사라진대도 머릿소에 들어앉은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설령 30년 뒤 ‘미투’가 벌어지는 세상이 됐다 해도 마틸다는 그냥 당하지만은 않을 게 분명하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성난 황소 앞, 허리에 손을 척 올리고 맞선 소녀의 모습이 바로 마틸다 포즈다.
뮤지컬 마틸다 포스터와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있는 성난 소녀의 상. 신시컴퍼티 제공·동아일보 DB
김지영을 보면서 내 딸을 키우던 시절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현실이 가슴 아팠다. 여자가 살아가기 더 힘들어진 나라가 된 건 분노할 일이다. 그럼에도 수학영재였던 여의사가 집에서 ‘재미로’ 초등생 수학문제지를 풀며 살아야만 할까. 더 이상 쓰면 진짜 꼰대 소리 들을까봐 여기서 일단 멈춘다(딸은 내 코너의 간판을 ‘저 꼰대 아니거든요’라고 붙이라고 했었다). 지영아, 다음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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