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동아일보 독자들의 전화를 받는 원주 콜센터 송년회에서였다. 신문 배달이 늦거나, 비가 와서 신문이 젖었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사가 빠졌다며 화를 내는 독자들을 달래가며 절대 신문 끊지 않게 해주는 직원들이 고맙고 미안해서 나는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이들과 헤어지는 ‘프리 허그’ 시간, 키 작은 내가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고,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 하면서 꼭 끌어안자 따뜻함이 밀려왔다. 온몸으로 축복을 주고 싶은 서로의 마음이 동심원 퍼지듯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연애를 졸업한 뒤 내가 누구와 껴안아본 적이 언제였나 싶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좋아하는 딸과도 이렇게 마음을 다해 안아본 건 얼마 전 딸의 결혼식이 유일한 듯했다. 엄마는 내 손 잡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싫어서 엄마가 손을 잡으면 탈탈 털어내곤 했다(지금 내 딸이 그런다). 엄마가 살아있다면, 조그맣게 오그라든 엄마를 병원 침대 위에서라도 안아줄 텐데 엄마는 지금 없다.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껴안는 사이는 주로 연인, 아니면 부부다(진짜 부부끼리 껴안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안아본 게 언제였더라
마침 미국에선 ‘포옹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크게 늘었다는 뉴스가 지난 연말 뉴욕포스트를 장식했다. 혼자 살거나 오래 살거나 어떤 사연이든 외로움에 사무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포옹 서비스업체 커들리스트(http://cuddlist.com) 고객 예약 건수가 올 한 해 평균 대비 50%, 전년 대비 90% 늘었다는 거다.
전문 교육과정을 통해 양성된 400명의 ‘포옹 전문가’들은 고객과 편안한 장소에서 만나서는 서서 가볍게 포옹하기부터 포옹한 채 소파에 앉거나 침대 위에 누워있기, 스푼을 포개듯 뒤에서 안아주기,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울 수 있도록 대주기, 그냥 포근하게 안고 가벼운 대화를 하거나 어루만져 주기 같은 서비스를 시간당 80달러에 제공한다.
성적 접촉이 아니다. 대기만성(대기만 하면 성감대)이어서 의지와 상관없이 신체적 변화가 생기는 이들도 있지만 커들리스트를 찾는 이들이 진정 원하는 건 따뜻한 관심이다. 터치와 포옹은 수단일 뿐이라는 거다. 실제로 미국 고객들은 불안과 고독, 스트레스, 상실감에 시달리는 40~60대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술집에 가서 아가씨들과 놀면 될 듯한데, 남성이라고 모든 외로움이 섹스로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한다(맞나요?)
충조평판 없는 옥시토신 효과
친구나 가족과 함께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맞다. 하지만 그들도 각자 바쁘고 힘든 사람들이다. 친구가, 아내가, 부모님이, 심지어 아이들이 내 불안한 마음을 이해할 것 같은가? 너는 그게 문제다, 왜 마음을 고쳐먹지 않니, 같은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으로 내 가슴을 난도질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런 사람들한테 “나 좀 한번 안아줘” 한다는 건, 죽었다 깨도 못할 일이다.
커들리스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따뜻하게 안아준다. 한번 안겨보면, 안아보면 안다. 얼마나 마음이 가라앉고, 푸근해지고, 걱정이 사라지면서, 평화로워지는지. 한 타임에 우리 돈으로 10만 원, 괜찮지 않은가? (비싸다는 분들께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이 정도는 해야 ‘전문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명확하게 비용을 치러야 나중에 “미투” 소리가 나오는 걸 막을 수 있다. 그 밖에 성적 관계로 진행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혀두는 의미도 있다고 미국에서는 설명한다나…)
박항서 감독의 포옹 리더십
안을 포(抱), 낄 옹(擁), 포옹. 지금껏 내가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포옹의 장점은 무지하게 많다(미국 학자들은 참 쓸모 있는 연구를 많이 한다). 따뜻한 사람의 손끝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퐁퐁 솟구치게 해준다는 게 핵심이다.
옥시토신은 신뢰를 높여줘서 자신감이 생기고, 주위사람들도 믿게 해준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를 낮춰주는 건 물론이다. 그래서 포옹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치유의 행위가 된다. 많은 사람 앞에서 스피치하는 건 대기업 최고경영자도 떨리는 일인데 무대에 나가기 전 한번 안겨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퍼포먼스가 달랐다. 수학시험도 잘 봤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심지어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을 시켰는데 많이 안아주면 감기에 덜 걸리고, 일단 걸렸더라도 심해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나도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픈 주사를 맞는 날이었는데(무슨 주사인지는 묻지 마시라) 이 나이에도 아파서 눈물이 나오는 주사였다. 그런데 주사 맞는 내내 간호사가 내 손을 잡아주자 정말 신기하게도 훨씬 덜 아픈 것이었다!
베트남의 영웅, 박항서 축구감독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선수들 발마사지까지 해주는 휴먼 터치라고 나는 믿는다. 포옹이 스포츠 경기 성적을 올려준다는 연구결과도 미국서 진작에 나왔다. 버클리대 마이클 크라우스 교수의 2009년 미국야구 분석에 따르면 포옹이든 하이파이브든 공 한번 치고 나서 주르륵, 선수들과 신체 접촉도 많은 팀이 성적도 좋더라고 했다.
괜찮다…괜찮다…괜찮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친한 사람이 아니어도, 아니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따뜻한 손길은, 가슴의 체온은 같은 효과를 낸다는 사실이다! 2018년 10월 타임지는 카네기멜런대 스트레스와 면역, 질병연구소의 포스트닥터 연구원 마이클 머피의 연구결과를 통해 포옹이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을 훨씬 긍정적으로 극복하게 해준다고 소개했다. 성과 나이, 인종, 결혼, 친소여부와 상관없이 나온 긍정적 효과다. 대판 싸운 원수(친구든, 상사든, 동료든, 애인이든)를 꼼짝 못하게 만들고 싶은가. 다신 안 볼 것처럼 돌아서 가다 냅다 뛰어와서는, 꽉 껴안아줘 보라.
물론 진짜, 당장 내가 커들링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새해, 힘들고 어렵고 먹먹한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 될 만한 글을 써보고 싶었던 거다.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고, 극악한 말폭탄을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가는 세상이지만 우리 모두는 한때 엄마의 따뜻한 품에 안겼던 사람들이고, 그 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임을 말하고 싶었다.
외로운가. 가슴이 아리고, 아프신가.
괜찮다. 당신을 안아주며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사족 ;
아…그러고 보니 우리 대통령이 왜 김정은한테 꼼짝 못하는지 알겠다. 작년 4월 판문점에서의 포옹 장면을 보면 김정은이 먼저 대통령의 목을 끌어안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도권을 발휘한 것이다. 8월 판문점 두 번째 정상회담 뒤에도, 9월 평양공항에서는 심지어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이렇게 세 번 김정은이 대통령의 뺨에 자기 뺨을 대는 포옹을 했다(이때 대통령은 한 박자 늦게 대응을 한다. 미처 예상을 못했던 거다). 내가 강조하는 포옹은 아니다. 뺨을 뗀 김정은이 손을 뒤로 돌려 자기 등에 댄 대통령의 손을 뜯어내는 걸 보면 안다. 사회주의 국가 정상들의 의식(儀式)인 ‘사회주의 형제의 포옹’에 문재인 대통령을 끌어들였다고 나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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