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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문학과 첨단과학이 손잡고 가야 할 '포스트 휴먼 시대'

바람아님 2019. 4. 3. 07:21


중앙일보 2019.04.02. 00:19


과학·인문 융화, 학제간 융합하는
변혁기의 선제적 미래성찰 절실
김준영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기술 대변혁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인간·기계·사물과 현실· 가상 세계가 초연결·지능화하는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도 기술을 선점한 자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라고 설파했다. 첨단 과학기술로 촉발된 이 거대한 문명사적 변혁 앞에서 인문사회 분야도 변화의 물결에 휩싸여 있다. 인문과 첨단 과학기술은 분리되기보다 상호 연결로 지능화되고 있다.


일상의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내비게이션, 웨어러블 장비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으로 남긴다. 걸은 시간과 걸음 수, 통화와 문자, 자동차로 이동한 거리·장소·시간, 몸 상태 등이 기록된다. 이는 데이터로 저장돼 클라우드로 연결된다.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로봇, 뇌 과학 등이 인간의 기계화와 기계의 인간화를 실현해 가는 속도와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기술이 노동을, 인공지능이 인간 두뇌를 대체한다. 빅데이터가 새로운 자본이 된다. 증강된 인간이 출현하는 ‘포스트 휴먼 시대’로의 진입이다.


지금이야말로 바람직한 미래에 대한 선제적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그 중심에는 인문학과 첨단 과학의 상호협력에 대한 담론이 자리 잡고 있다. 과학기술과 인문학이 분절된 사회가 아니라, 이제는 공동의 미래가치를 창출해야 할 협력의 사회다. 과학기술 발달에서 인간과 사회가 직면할 실존적 허무를 극복하고, 첨단이 인문을 품고 소통하는 인간적인 미래 말이다. 우리는 인문을 도외시한 첨단이 초래한 역사의 비극을 2차 세계대전과 옛 공산권의 몰락에서 지켜봤다.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과학기술에 인간의 본성과 가치를 탐구하는 인문학을 접목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교육현장에서 문·이과의 골은 너무 깊다. 사회과학도와 자연과학도의 사고와 행동양식, 그리고 사회진출은 뚜렷이 대비될 정도다. 미래 생태계는 융합과 협업이 대세인데 교육과 인재는 칸막이의 경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인문학도가 과학기술과 소프트웨어의 기본 지식을 익혀야 하고, 자연과학도 역시 인문사회에 대한 이해와 지혜가 필요하다.


성공한 창업 기업인의 절반 이상이 공학도가 아니란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중국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은 영어를, 공유경제인 에어비앤비의 브라이언 체스키는 미술을 전공했다. 일론 머스크(테슬라)의 전공은 경제학과 물리학이었다. 세계 스타 기업들은 인문학도를 적극적으로 수혈해 창조적 DNA를 캐내고 있다. 삼성 등 국내 주요 기업들도 인문학도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회사 내부에 창의적인 창업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이렇듯 포스트 휴먼 시대에는 인문학이 첨단 과학기술의 사회적 동력을 뒷받침해 줘야 한다. 나아가 과학기술이 사회에서 선용 되려면 인문학에서 창조적 역량을 확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학적 상상력과 공감 능력, 예술적 감수성과 디자인, 심리학적 인지능력과 동기부여, 철학적인 윤리, 역사적인 사회진화에 대한 통찰력 등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협력의 역량을 넓힐 때 더 가치 있는 미래로 발전할 수 있다. 첨단 과학은 인문학이기도 해야 한다.


세종과 정조 시대는 과학기술뿐 아니라 인문학이 융성해 첨단과 인문이 함께 했던 민족 자긍의 시대였다. 세종의 한글은 애민(愛民)사상을 토대로 과학적·수학적 원리를 동시에 갖춰 인문을 넓힌 문자였다. 인문은 세상을 밝히고 첨단은 미래를 연다. 인문학은 자유와 자율을 토대로 창의적 발상을 쏟아내는 상상의 공간이다. 과학기술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문명을 펼치는 열쇠다.


인본주의를 내건 중세 르네상스에 이어 앞으로 첨단 과학기술 발전이 인간 중심으로 이뤄지는 기술 르네상스를 열어가도록 포스트 휴먼 시대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 핵심은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화(融和), 학제 간 융합(融合)을 이뤄낼 교육이다.


김준영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