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9.03.27. 03:01
아들은 자신을 온전한 인격체로 사랑하는 아버지가 발가락 통풍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마음에 새겼다. 화장실에 갈 때는 한쪽 발을 들고 기어가야 했고 얇은 시트에 눌리는 것마저도 고통스러워 밖으로 발을 내놓고 자야 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고통이 아들에게는 상처였다. 그는 아직도 빨갛게 부어 있는 아버지의 왼쪽 엄지발가락을 만지며 말했다. “착한 발, 괜찮아요? 정말 착한 발이네요!” 아버지가 아니라 발가락한테 건넨 말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병이 나은 후에도 왼쪽 발을 잡고 말했다. “착한 발, 착한 발, 괜찮아요? 잘 지냈어요?”
그는 두 개의 뇌를 갖고 태어나 수술을 통해 하나를 떼어내고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가 발한테 말을 건넨 것은 나이가 들었어도 영원한 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뭉클하게 느껴지면서도 의사소통이 온전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일이기에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이것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의 연작소설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에 나오는 일화다. 그런데 허구가 아니라 사실의 기록이다. 작가의 큰아들 얘기다. 심각한 장애와 간질까지 있는 아들이 그가 쓴 많은 소설들에 등장하는 것은 그것이 그에게 강박이었다는 확실한 증거다. 그런데 그 강박에서 위대한 윤리적 소설들이 태어났다. 아들이 아버지를 강박으로 내몰다가 결국에는 사유와 윤리의 세계로 안내한 것이다.
세상과 역사에 내몰린 타자들에 대한 오에의 애정과 관심은 장애를 가진 아들에 대한 관심의 연장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일본 제국주의에 유린당한 이웃 나라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일본 본토가 희생양으로 삼은 오키나와의 고통도 외면하지 않았다. 이웃의 상처를 위로하고 사과하기는커녕 식민주의 역사를 지우거나 정당화하는 데 골몰하는 일본이 그나마 도덕적 파산을 면할 수 있는 건 오에처럼 다른 사람의 상처와 고통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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