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4.03 정진홍 前 광주과학기술원 특훈교수)
미래의 생존과 번영을 지속하려면 '1억명의 한글 공동체'를 꾸려야 한다
연해주·카자흐스탄·베트남을 잇는 '제국 경영'을 과감히 도모해야 한다
정진홍 前 광주과학기술원 특훈교수
# 문화가 동력이 되려면 그것을 형성하고 꾸려가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이 갖는 일정한 세(勢)가 형성되어야 한다.
단언컨대, 우리의 문화를 동력화하는 데 제1의 요건은 한글 활용 인구를 1억명 확보하는 일이다.
언필칭 '1억 한글 공동체'를 형성하면 경제적으로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우리의 존재를 보위할 수 있는 가장 튼실한 안보 라인이 될 수 있다.
지금도 K팝, K뷰티, K컬처 덕분에 한글을 따라 하고 한글을 새로 배우는 젊은이들이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는 물론
유럽과 미주, 그리고 쿠바와 중남미 일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포진해 있다. 하지만 더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한국이 이들과 문화와 언어를 통해 어떻게 결합하고 협력하느냐에 우리 모두의 삶과 미래가 걸려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새로운 시장이 곧 한글을 따라 하고 또 배우는 그들의 위치 영역과
겹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1억 한글 공동체'가 순 한글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 한글이 표기할 수 있는 한
한자, 영어, 일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등 세상의 모든 언어를 품어가야 한다.
지금의 영어처럼 말이다.
# 물론 '1억 한글 공동체'를 우리 자체의 출산율 증대로 이루려면 불가능하다.
지난 2006년부터 자그마치 143조원 이상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은 곤두박질친 채 헤어 나올 줄 모르는 실정 아닌가.
남북한 인구뿐만 아니라 해외에 흩어진 한민족 구성원을 모두 합쳐도 8500만이 채 못 된다.
여기에 인구마저 급감하면 향후 50년 안에 한글을 쓰는 사람의 수는 6000만명 이하 수준으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크다.
향후 100년을 내다보면 거의 현재 수준의 반 토막 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안 되는 출산율만 붙들고 예산 쏟아부을 일이 아니고 생각의 꼭지를 확 돌려 '1억 한글 공동체'를 이루는 방향으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
# '1억 한글 공동체'를 형성하려면 더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그것도 반도의 반쪽, 정작 육로로는 오도 가도 못하는 맹지 같은 땅에서 50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요만큼의 수준으로나마 살아본 역사가 인류 역사 동서고금에 없었다.
어쩌면 우리가 직면하는 거의 모든 문제가 이런 맹지에 5000만명이 들썩거리며 살아야 한다는 데서 발원하는 것인지 모른다.
이대로는 안 된다. 맹지를 탈출하고 한반도를 넘어서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껏 해외로 진출했던 것과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좀 더 조직적이고 전략적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나는 이것을 감히 '제국 경영'이라고 천명한다.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1억 한글 공동체'를 형성하려면
'제국 경영'을 해야 한다.
첫째, 러시아 연해주를 식량 기지화하고, 둘째, 카자흐스탄을 물류 기지화하며, 셋째, 베트남을 생산 기지화해야 한다.
지도에서 이 세 지역을 이어보면 역피라미드형의 대삼각(大三角)을 이룬다. 그리고 그 안에 한반도가, 대한민국이 위치한다.
자고로 고립된 맹지나 섬과 같은 지정학적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치열하면 제국이 된다.
로마가 그랬고 영국이 그랬다. 일본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너무 엇나가 끝내 자폭하고 만 셈이다.
우리는 다른 의미에서 제국 경영을 해야 한다. 총칼과 대포를 앞세워 위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경제적으로 침탈하자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문화로 끌어안고 언어로 함께하며 경제적으로도 공생·공영할 방도를 찾는 방향에서 미래를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좁다랗게 안에 갇혀 온갖 영역에서 서로 물고 뜯다 공멸하고 말 것인가? 치고 나가야 한다!
# 실제 연해주의 우수리스크에서 한카호수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현대중공업이 운영하던 대농장
(지금은 롯데에서 인수)부터 종교 단체 대순진리회가 사모은 크고 작은 농장까지 즐비하다.
한반도로 이어지는 물류 인프라만 확보하면 우리의 식량 기지화가 충분히 가능하다.
카자흐스탄은 인도만큼 큰 땅덩어리다.
게다가 국적기의 기내지 제호가 '텡그리'('하늘'이란 뜻으로 '단군'은 텡그리의 한자 음차다)일 만큼 우리와
초(超)고대사에서부터 인연이 깊다. 심지어 지금은 현대판 실크로드인 일대일로(一帶一路)가 지나가는 요충지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제한점은 있으나,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이미 우리의 거대 생산 기지가 되었다.
이 세 축을 대삼각으로 이어 문화적으로 융통하고 한글로 소통하며 시장을 열고 함께 번영할 방책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컬처 엔지니어링'이 할 일이다.
# 대한민국은 정치가 일으킨 나라도 아니고, 금융으로 일어선 나라도 아니다. 엔지니어링으로 우뚝 선 나라다.
단지 그 엔지니어링의 범주와 수준이 토목과 건설, 전기와 전자를 넘어 문화와 예술의 영역으로까지 나아가야
우리의 지속적 삶과 번영이 가능하다. 엔지니어링의 라틴어 어원이라 할 '잉게니움(ingénĭum)'은
단지 엔진이나 공학이란 뜻에 갇힌 것이 아니라 사물의 성질, 성격, 본질, 그리고 사람의 품성, 본성, 천성, 기질,
더 나아가 천부적 재능과 창의력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쿨트라(cultura)'에서 연원한 컬처 역시 우리는 흔히 문화라고 말하지만 본래는 경작하고 재배하며 키워낸다는 뜻이다.
따라서 '컬처 엔지니어링'이란 인간의 품성(稟性)을 변화시키고 사물의 물성(物性)을 새롭게 하며 더 나아가
창의성을 발본적으로 키워내고 끊임없이 혁신하는 일이 된다.
'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은 이런 관점과 방향을 견지하며 쓰일 것이다. 기대하셔도 좋다! ㅡ컬처 엔지니어
[알립니다] 세계경제·AI·컬처… 오피니언면이 더 깊고 다양해집니다 |
조선일보 오피니언 면이 더 깊어지고 다양해집니다. 먼저 권위와 전통의 '朝鮮 칼럼 The Column' 필진이 보강됐습니다. 태영호(57) 전 주영 북한 공사와 마이클 브린(67) 전 가디언지 서울특파원, 이병태(59) KAIST 경영대 교수, 빅터 차(58)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 등이 새 필진으로 합류했습니다. 기존 ▲김대기(63·전 청와대 정책실장) ▲박병원(67·전 한국경총 회장) ▲박성희(56·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신원식(61·전 합참 작전본부장) ▲윤덕민(60·전 국립외교원장) ▲윤석민(56·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윤희숙(49·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전상인(61·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등과 함께 다양한 경험과 예리한 시각을 보여줄 겁니다. 세계경제·AI·컬처… 오피니언면이 더 깊고 다양해집니다
던지는 심층 칼럼을 새롭게 편성했습니다. ▲전광우(70·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세계 경제 읽기' ▲김정호(58·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AI시대의 전략' ▲강원택(58·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파워 & 폴리틱스' ▲임정욱(50·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스타트업 세계' ▲이성윤(51·미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교수) '新 한·미 통신' ▲인남식(51·국립외교원 교수) '新중동천일야화' 등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의 질서를 전달합니다. 정진홍(56) 전 광주과학기술원 특훈교수가 선보일 '컬처 엔지니어링(cul ture engineering)'은 4주에 한 번 수요일에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과학과 예술, 리더십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세상에 대한 또 다른 시각과 해설을 제공할 것입니다.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소설가 김규나(53)의 '소설 같은 세상'도 새로 연재합니다. 매주 수요일엔 본지 선임·전문기자들이 전문성에 시각이 담긴 글을 쓰는 '아웃룩(Outlook)' 코너도 신설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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