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4.11 김규나 소설가)
김규나 소설가
"오 로미오, 왜 당신은 로미오인가요? 당신의 이름만이 내 원수예요.
몬터규가 아닌 다른 성을 가졌다 해도 당신은 당신.
장미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달콤한 향기는 그대로 장미인 것을.
로미오 역시 로미오란 이름이 아니더라도 그 사랑스러움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윌리엄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중에서.
꽃의 계절이다. 나무마다 싹이 트고 거리마다 봄이 핀다.
아직 기온이 높지 않고 일조량이 적을 때 피는 꽃은 노란 개나리, 붉은 철쭉, 가지마다 팝콘처럼 터지는 벚꽃이다.
연인과 친구들, 뛰노는 아이들, 유모차를 밀고 나온 젊은 부부, 모처럼 여유를 누리는 중년과 잠시 세월의 무게를
내려놓은 노년의 미소가 꽃그늘마다 눈부시다.
향나무가 일제 잔재라고, 창덕궁 앞 가로수를 일본이 심었다고 죄다 뽑아버리자는 말이 들린다.
이건 제주산 벚꽃이고 저건 일본산 벚꽃이라며 편 가르고 눈 흘기고 손가락질한다.
그렇게 분류하자면 사과도, 고추도, 감자도 애초에 우리 것은 없다.
이건 내 것 저건 네 것, 이 나라하고는 친하니까 오케이, 저 나라하고는 꼬인 게 많으니 노, 하며 사사건건 따져야 한다면
식물 족보라도 들고 다녀야 할 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첫눈에 반해 사랑하게 된 로미오와 줄리엣은 대대로 원수 집안의 아들딸인 것을 알고 서로의 이름을 탓한다.
부모가 결코 그들의 결합을 허락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 연인들도 이내 깨닫는다.
장미의 이름이 무엇이든 그 아름다움과 향기가 변함없듯, 몬터규든 캐풀렛이든 그대는 변함없이 사랑스러운
나의 줄리엣이고, 당신은 목숨 다해 사랑할 나의 로미오인 것을.
이 봄, 잠시라도 꽃구경을 나가면 좋겠다. 세상이 어지러운데 무슨 철없는 소리냐 하겠지만,
겨울 잘 이겨낸 우리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 뜨거운 여름 잘 이겨내라고 우리 스스로에게 주는 응원이라면 어떨까.
무엇보다 이 땅의 나무와 꽃들이 슬픈 운명의 주인공,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지 않기를 소망하며 대견하다,
대견하다, 쓰다듬어 주는 마음도 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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