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4.09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장융 '대륙의 딸들'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지난 3일 제주도에서 열린 4·3 사건 71주년 기념식에서 배우 유아인이 자신이 4·3 사건을 몰랐던 것이
부끄럽다면서 '왜 (자신이) 몰라야 했는지도 몰랐다'고 비장한 어조로 술회했다. 그는 4·3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세력이 있다고 의심하는 듯한데, 민주국가에서 자유민으로 30여 년 살아온
청년으로서는 '쪽팔리는' 말이 아닐까?
그러나 그가 배운 교과서, 받은 교육이 무식자를 양산하는 것은 사실이다.
교육부 선발 필진이 집필한, 사실상 '국정교과서'인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의 '대한민국 정부수립' 장(章)은
해방 후 남한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으로 기술해서 대한민국은 불완전 국가,
북한은 완전 국가라고 시사한다.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은 4·19~ 5·18~6·10 항쟁~촛불혁명 서술이 거의 전부다.
이 필진이 유아인의 추모사를 들으면 4·3 항쟁을 민주화투쟁으로 윤색해서 포함시킬걸, 하고 가슴을 칠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장은 '1950~ 2000년대 경제성장 모습'이 8쪽 분량인데 '경제성장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4쪽이다.
우리의 차세대에게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강의 기적'의 가슴 벅찬 드라마는 감추고 경제발전의 부작용만을 인식시키려는
것일까? 이 교과서의 경제지수 그래프를 보면 마치 우리 경제가 1985년까지는 거의 수평으로 이동하다가 1985년 이후에
급상승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 경제는 1960~70년대가 처절하고 비장한 드라마였는데. 1960~70년대 세대의 피와 땀과
기도를 안다면 젊은 세대가 우리나라를 '헬조선'으로 생각지 못할 텐데.
이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동학농민운동 때 전봉준이 작성한 사발통문을 모델로 '사발통문'을 만들라는 과제를 준다.
"우리는 _________ 때문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행동하려 한다! ____________."
초등학생들에게 이 빈칸을 채워 넣으란다.
장융의 '대륙의 딸들'에서 '문화혁명' 혁명위원회가 어린 학생들을 부추겨 선생들을 가두고 폭행하게 만든 수법과
유사하지 않은가? 그나저나 현 정권이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은 나라 꼴을 보면 초등학생들이라도 참지 못하고
'행동'하려 할 것도 같다. 이제 곧 또 하나의, '최연소' 시민혁명이 추가되려나?
대륙의 딸. (상,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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